멋지게 기획된 ‘바디 스내처’의 공식 <악취> 감상

대상작품: 악취 (작가: 녹희재, 작품정보)
리뷰어: 소나기내린뒤해나, 2시간 전, 조회 2

 

‘바디 스내처(body snatchers)’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기 시작한 이래, 그 특유의 ‘인간’이라는 존재를 이질감의 대상으로 바꾸는 공식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 갈래로 흩어지고 변주되는 공식들을 도식화하기는 힘들지만, 개인적으로는 그것을 세 가지로 정의해보곤 합니다.

 

첫째, 화자의 입장에서 인식하지 못 하는 존재의 개입

둘째, 내부에서부터 시작되는 신뢰의 파괴

셋째, 인간과 환경으로 이뤄진 공간의 축소

 

주목할 점은 이 장르에서 보여주는 공격과 파괴의 방향입니다. 기본적으로 인간과 사물을 파괴하는 것은 바깥에서 시작되는 적대와 경계입니다. 하지만 이 장르에서는 그런 불온한 마찰들을 최소화하며, 파괴는 시작과 함께 내부에 존재하며, 마치 증상이 없는 전염병처럼 움직이며 삶을 공격합니다. 때문에 화자의 시선에서 주위에 도사리는 이질감을 인식했을 때는 이미 많은 것들이 무너진 뒤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악취>는 누군가 생각하는 ‘바디 스내처(body snatchers)’의 가장 이상적인 공식을 대입한 작품이라는 것이 자명합니다. 어느 흉악하게 토막 난 시체를 조사하게 된 최설진 형사의 시선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수사물의 형태를 띠면서도 그 안에서 발견되는 비상식적인 이질감들로 인해 한 꺼풀씩 벗겨져가는 일상의 참모습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역시 주목할 것은 제목에서도 강조하는 ‘악취’입니다. ‘체취’는 형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오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가장 선명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작중에서 ‘악취’는 주인공의 일상에 침입하고 있는 불청객을 감지하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것은 인식하지 못 합니다. 오히려 형태로 구분할 수 없는 ‘불쾌한 냄새’뿐이기에 반응하기 어렵다는 식입니다. 손에 잡히지도 거둬내지도 못 할 ‘악취’는 이미 그의 일상 곳곳을 침범합니다. 냄새, 특히 체취라는 것은 스며들면 쉽게 빠지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그 형태에서는 거리감을 취하면서도, 차마 벗어날 수 없는 우리처럼 작용하는 그 특유의 이미지를 ‘내부에서 파괴를 기획하는 미지의 존재’에게 적극적으로 대입시키며 활용하는 셈입니다.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형태를 감지하는 것에서도, 이 작품은 탁월한 솜씨를 뽐내고 있습니다. 소설의 전반부는 한 몸처럼 붙어 다니던 오랜 후배로부터 느끼는 이질감들을 묘사하며, 가까운 존재가 한 걸음씩 멀어지는 감각들은 느릿하지만 명확하게 포착합니다. 습관, 행동, 말투 등. 주인공이 당연하다고 인식했던 누군가의 표면으로부터 하나 둘씩 의심을 품어가는 동안, 그 존재는 곧 고요한 위협으로 변질되어 갑니다. 그 과정은 느릿하면서도 명확합니다. 직장 동료이자 친한 동생이라며 정을 주던 존재의 변질은, 그가 의지하고 있던 버팀목을 하나둘씩 잘라내는 듯한 상실감으로 다가옵니다. 그 과정이 반복되던 끝에 주인공의 일상은 다리가 없는 의자처럼 바닥에 주저앉습니다. 그것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앞서 설명했던 장르의 특성상, 주인공이 인식한 이질감은 이미 파괴가 중턱에 이르렀다는 암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작품도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얼굴이 없는 시체의 등장으로 시작했던 소설은 그 미지의 두려움을 포착하려는 시도로 보이지만, 종국에는 그 미지를 스스로 파괴하는 듯한 방식으로 변주됩니다. 특히 두 번째 시체가 발견되고 그 정체가 드러나는 부분에 다다르면, 흐릿함과 모호함으로 인상을 주던 결을 완전히 포기하는 듯한 인상마저 줍니다.

 

시체에서 ‘얼굴’이 없다는 것은, 말 그대로 정체를 숨기겠다는 선언입니다. 그 정체야말로 작품에서 의도하고 있는 공백이며, 그 공백에 밑그림과 빛깔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주인공의 역할로 부여된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작품 전체로 놓고 보면 그 공백 또한 주인공을 옥죄기 위한 흑막의 술수였다는 것이 드러나며, 주인공의 역할 자체는 처음부터 무의미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때문에 후반부의 주인공은 거의 기계적으로 반응하고 움직이는 무언가처럼 느껴집니다. 물론 이런 방식에서 대적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여실히 표현되고 있으나, 그 존재의 전능함이 곧 해답처럼 제시되는 소설의 구성은 다소 게으르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작품은 ‘바디 스내처(body snatchers)’ 공식만을 재현한 무언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 공식들을 제외하고 보이는 것들을 따질 때면, ‘인형을 닮은 눈’과 ‘부패하는 손목’과 같은 시각적인 요소들과 더불어, 차마 이 글에서 적을 수 없는 거대한 결말까지, 오히려 드러날수록 작품의 색채를 상투적으로 만드는 불순물처럼 느껴지는 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로 그려지는 한 편의 호러로서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기에는 충분한 작품이었다는 것이 제 감상입니다. 그리고 저야말로 그렇게 마음에 울림을 받은 독자 중 하나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죠.

 

인상적인 작품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즐거운 작품을 만나 가슴이 뛰었어요. :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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