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의 여왕 : 온화한 언어로 조각된 냉혹한 현실 공모(비평)

대상작품: 우리 엄마는 눈의 여왕 (작가: 조제, 작품정보)
리뷰어: 안병규, 57분 전, 조회 5

들어가기에 앞서…

예술은 결국 주관에 의해 감상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리뷰는 객관적인 것 같으면서도 결코 객관성을 띌 수 없습니다.

제게 예술은 경험을 전달하는 매체 혹은 행위, 따라서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 받았다면 좋은 작품으로 취급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작성된, 지극히 편협한 리뷰임을 염두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환상으로 여기고만 싶은 잔혹한 현실

‘비밀이 하나 있어요. 우리 엄마는 눈의 여왕입니다.’

작품이 시사하는 바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첫 문장입니다. 작가는 처음부터 차분하고 부드러운 문체로 포문을 열어, 작품에 동화적인 분위기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죠?

화자인 11살 ‘오은수’는 어머니에게 정서적 학대를 당하고 있습니다. 어린 딸의 시선에서는, 어머니가 가정폭력범보다는 아무래도 눈의 여왕처럼 보이기 마련이지요. 엄연히 보호받아야 할 아동이 처해있는 상황, 그리고 홀로 이겨내기에는 벅찬 현실을 동화처럼 표현하여 주제를 단박에 제시하고, 독자를 이야기에 끌어들입니다.

‘나는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다, 여긴 해리 포터의 세계가 아니다’

뒤이어 나오는 자조적인 문장은 이야기의 비극성을 더욱 강조합니다. 맞아요, 이 이야기는 잔혹 동화입니다. 눈앞에 저항할 수 없는 마술적인 것이 놓여있음에도, 그게 현실이 아님을 인지하고 있는 오은수. 작품의 화자는, 아이가 결코 어른을 이길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여태껏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며 현실을 살아왔음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초록 난쟁이가 등장하면서 오은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됩니다.

 

난쟁이 아로의 말을 ‘아로’새기며

초록 난쟁이가 등장하면서 작품의 동화적인 분위기는 더욱 고조됩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얘기해서 이 이야기는 동화가 아니죠, 그렇게 쓰여졌을 뿐 분명히 잔혹한 현실입니다. 심지어 이야기의 끝에 난쟁이가 연기 같이 사라지면서 오은수는 지난 며칠이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헛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까지 합니다.

하지만 분명 헛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난쟁이를 통해 눈의 여왕에게 저항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난쟁이는 오은수에게 마법의 핵심이 상상력과 말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능숙히 사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습니다.

만약 오은수가 현실에 굴복했다면 그녀의 앞길은 변함 없이 서리 껴있었을 겁니다, 상처 입은 채로 얼음판을 영원히 아슬하게 걸어가겠죠. 하지만 아로의 말을 아로새겼기 때문에, 오은수는 눈의 여왕이 쏟아내는 얼음 파편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수 있게 되었고, 자신의 앞길을 스스로 닦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극히 드물지만, 현실에서도 동화 같은 일이 펼쳐지곤 하죠? 오은수는 난쟁이 아로를, 스스로를 믿음으로써 동화를 현실 속에 구현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언어의 중요성을 시사하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사소한 단어조차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이 떠오릅니다. 그럴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스스로를 괴물로 만드는 게 바로 ‘말’이죠. ‘우리 엄마는 눈의 여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은수의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내뱉습니다. 그것이 날카로운 창이 되어 제 딸을 찌르고 베어내고 있다는 걸 전혀 알지 못하죠. 하지만 오은수는 난쟁이의 말을 되뇌이며, 봄바람 같이 따뜻한 말로 제 심장을 채워 스스로 상처를 수습합니다. 그럼으로 깎여나간 자존감을 회복하고, 눈의 여왕의 폭정에 대항할 힘을 얻습니다.

말의 속성이라는, 작품을 관통하는 시상으로 하여금 작가는 언어의 방향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질문합니다. 동시에 무뎌 보이는 어른들의 언어가 아이들에겐 얼마나 위협적인지, 독자들을 되돌아보게 만들죠. 앞서 언급한 ‘괴물’과 같이 말의 중요성을 강조한 작품은 꽤 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 보이’ 또한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들과는 궤를 달리 한다는 점에서, ‘우리 엄마는 눈의 여왕’은 잘 설계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잘 설계되긴 했지만…

여기서부터는 아쉬운 점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말로, 이 작품의 설계는 훌륭합니다. 현실적인 문제를 아이의 시점에서 잘 풀어내었거든요. 앞서 얘기했듯이 첫 문장으로 작품의 방향성과 시사하는 바를 명확하게 드러내어 독자를 작품의 세계로 확 끌어들였습니다. 하지만 막상 건물 안에 들어와 보니, 조금 허한 느낌이랄까요?

이러한 감상의 가장 큰 요인은 오은수의 이야기가 미완성처럼 느껴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오은수는 초록 난쟁이의 원조 끝에 불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 여기서 차갑게 얼어붙은 눈의 여왕의 마음을 녹일 수 있을 것처럼 보입니다, 저 또한 그걸 기대하고 있었고요. 하지만, 아닙니다! 눈의 여왕은 녹지 않습니다.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죠, 오은수는 그녀의 투쟁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만약 작가님이 이것으로 현실을 표방하려고 하셨다면 더 할 말은 없습니다, 다만 작중의 핵심 갈등이 해소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고, 미결의 찝찝함이 작품의 동화적인 성격을 빛바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는 디테일의 부족함입니다. (분명히 강조했지만, 제 기준에서입니다!)

글이 짧을수록 많이 덜어내야 합니다, 응집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죠. 또 그렇기 때문에, 살려야 할 부분은 확실히 살리고 넘어가야 구조가 탄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은수 너 내가 집안정리 좀 똑바로 해놓으라고 했지? 엄마는 힘들게 일하는데 그런 것도 못해?’

오은수의 어머니는 눈의 여왕입니다. 얼음을 내뱉어야 하죠. 하지만 이 문장은 제게 차갑다고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뜨거운 응어리를 토해내는 느낌입니다. 제게 차가움이란 시상은, 무감정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은 조금 감정적이죠? 좀 더 짧고, 무심하게 읊조리는 게 화자의 가슴에 서늘히 박히지 않았을까요.

‘그럼 엄마 앞으로 말 좀 가려서 해. 난 엄마 화 쏟아내는 데가 아니라고.’

오히려 이 대사가 눈의 여왕이 할 법합니다, 정작 이건 불과 봄의 마법을 사용하는 오은수가 하는 말이죠… 여태껏 쌓아 놓은 중심 인물들의 캐릭터성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나쁜 글이 아니다

아쉬운 점을 마구 늘여 놓고도 나쁜 글이 아니라니! 하지만 그렇습니다, 저는 나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좋은 작품이라고 여기는 편입니다.

리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강조했듯 제게 가장 중요한 건 전달하고자 하는 바, 시사하는 바를 명확히 하는 겁니다. 저열한 재미나 얄팍한 사랑, 심오한 철학이나 거국적인 사상 뭐든지 간에 작품에 핵심이 존재하고, 그게 확실히 느껴진다면 저는 좋은 예술로 여깁니다. 중요한 건 본질을 잃지 않는 겁니다.

다시 생각해볼까요? ‘우리 엄마는 눈의 여왕’에는 지향하는 바가 분명히 존재하고, 놓치기가 힘듭니다. 또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아쉬웠던 것보다 아무래도 작품의 주제가 먼저 떠오르죠. 계속 곱씹어보게 만들고요. 따라서 이건 잘 설계되고, 설계한 대로 잘 쌓아 올린 글입니다. 따듯함과 차가움의 대비, 냉혹한 현실을 온화한 언어로 써 내린 잔혹 동화, 크게 어긋나는 부분이 없으니 저는 분명히 그렇다고 얘기할 겁니다.

 

마무리하며…

어… 그렇습니다. 이 정도 써 놓고도 마무리 짓는 게 참 어렵네요. 사실 첫 리뷰인지라 부족한 부분이 많을 겁니다, 제가 집어내지 못한 작가님의 의도도 분명 존재하겠죠. 그럼에도 모쪼록 작가님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리뷰를 마무리해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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