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저도 총각의 말에 홀라당 넘어갔지만요…
이유도 대지 않고 무작정 산을 넘겠다는 수찬을 부추겨 총각은 자신만만하게 호랑이가 산신령으로 있다는 산으로 안내합니다. 총각은 산세가 험하고, 그 험한 산의 호랑이가 잡아 먹힌 귀신인 창귀를 아주 부대로 데리고 다닌다는데도 신경쓰긴커녕 콧방귀나 뀌는 게 믿음직스러운 한편 미심쩍기도 하죠. 큰소리를 떵떵 치는 게 특히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 정체에 대해 의심하던 차에 제목에 나온 것도 까맣게 잊고 있던 호식총이 나오는데, 수찬은 홀린 듯이 안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형태나 유지하던 호식총을 아주 박살을 냅니다. 오래 타국살이를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수찬에게 총각이 해 주는 설명인지 호들갑인지가 불길하면서도, 이런 주제를 좋아해서 재밌었습니다. 왜 나쁜 짓을 함께하면 그 사람이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걸까요? 그렇게 해서 터놓은 이야기는 어쩌다 두 사람이 여기에 이르게 됐는지 설명해 주려다 수찬이 퍼뜩 정신이 들면서 멈춥니다.
맨처음부터 시작하는 회상이 꼭 주마등 같았습니다. 어릴 적부터 시작해서 그저 금기를 깨트리는 게 즐거웠던 철부지 무렵을 지나, 머리를 세게 맞고 본 꿈결 같은 그 시절의 귀여운 아이는 꿈인지 생신지 아마 내내 진동하고 있었을 피 냄새 속에서 긴가민가했겠지요.
산 속에서 예쁘장한 모습으로 등장한 아이는 터진 자리의 피처럼 왈칵왈칵 솟구치는 기억 속 난아와 똑같고, 뽀얀 생김새와 다르게 푹 젖은 머리에서는 악취가 나는 끈적한 액체가 나오고 걸음걸이는 아무리 다쳤대도 젊었을 때 힘 좀 쓰던 수찬보다 빠릅니다. 거기다 손은 차갑지, 뒤에서 어른들이 드잡이를 하든 자길 안고 장도를 휘두르든 꿈쩍도 하지 않는 걸 보면 정체를 유추하기는 어렵지 않죠.
하지만 어째서요? 뒤통수가 얼얼해질 만한 얘기를 듣고 난 수찬이 가진 패물을 다 주면서 아이 없는 부부에게 맡겼는데요. 미심쩍긴 했어도 사람임을 의심하지 않은 총각이 창귀로 돌아왔다는 충격 이후로, 드디어 모든 것이 밝혀집니다. 노린내가 심하게 나는 호랑이의 걸음걸이는 사냥을 못하는 야생동물이 사람을 잡아먹는다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실감나게 느껴졌어요.
잊으려 노력한 끝에 정말 잊어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잊지 않은 소문에 파랑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수찬의 상황과는 전혀 다르지만요! 한탄 같기도, 넋두리 같기도 한 마지막 장면은 정말 가물가물해지는 수찬의 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굉장히 취향이었습니다. 토씨 하나 잊지 않은 소문이, 그 소문을 들은 그때의 수찬이 얼마나 사무쳤는지, 어떤 마음으로 조선 땅을 떠나 이역을 떠돌다가 다시금 돌아와 울게 했는지를 말해 주는 것 같았거든요.
더는 존재하지 않는 참조 링크도 이 이야기에 색을 더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비슷한 내용의 다른 링크는 있는 게 꼭 소문 같지 않나요? 수찬의 세상은 인터넷과 달라서, 소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엔 소문의 근원지에 도달하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아직도 가늠하기가 힘듭니다.
아마 수찬은 기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게 대신 창귀가 되어 아이를 호랑이로부터 자유롭게 해줘서인지, 기나긴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되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