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네킹이 주인공인 소설도 매력적이군요! 감상

대상작품: 삼호 마네킹 (작가: 황모과,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7월 24일, 조회 17

마네킹은 참 신묘한 물건이다. 철저히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인공물인데다 몹시도 ‘이상적’이다. 소두에 8등신, 들어갈 때 들어가고 나올 떼 나온 라인은 이따금 ‘생명’ 한 줌 없는 그들을 동경하게 한다. 백화점 매대를 스치듯 지나갈 때도 “옷걸이 죽이네?” 괜히 훑어보게 하고, 그림 같은 몸매를 지닌 사람을 보면 ‘마네킹 같다’라고 찬탄한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마네킹보고는 “사람 같다”러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니까. 24시간 365일 단 한번의 휴식도 없이 매대에 서 있다가 어느 순간 폐기되어도 별 탈 없는, 자동차 충돌 테스트 등의 실험체로 사용되다 산산조각나도 괜찮은, 보여지고 만져지고 관음되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지 못하는 ‘철저히 목적에 순응하기’ 위해 만들어낸 존재가 바로 마네킹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 마네킹이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대체로 마네킹이 말하거나 움직이면 ‘호러물’이지만 이 소설은 놀랍게도 ‘멜로물’이다. 다소 황당한 설정이 그럴싸하게 느껴졌던 건 마네킹이면서 ‘자아’를 분명히 갖고 있는 ‘나’의 목소리가 매력적이어서다.

남성 의류 브랜드 A의 강남 매장, 배치된 지 4개월 된 마네킹인 ‘나’는 자신을 삼호라고 불러주는 매장 관리자 민정을 짝사랑하며 그녀의 센스에 감탄하고, 그녀의 괴로움을 어루만져주고 싶어하며, 마네킹으로 전시된 일상에 쓸쓸함을 느낀다.

 

– 나는 불 꺼진 플로어에 남겨져 녹색 비상구 안내 조명에 반사된 얼굴로 그녀를 배웅했다.

– 마네킹 따위에 그녀가 저렇게 신경을 써주는 것이 나로선 송구할 따름이었다.

 

이렇듯 자아를 가진 마네킹 ‘나’의 세밀한 감정이 느껴지는 담담한 문장들이 좋았는데, 이 문장들 덕에 나는 ‘삼호 마네킹’에 이입한 상태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이 소설은 크게 세 덩어리로 나뉘는데 내가 민정을 짝사랑하는 이야기로 시작해, 동료 마네킹이 온 뒤로 ‘사람 같다’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되어 다른 마네킹으로 인수인계되는 이야기, 계약이 만료되어 마네킹에서 벗어나 인간으로 돌아온 뒤 민정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렇다. 삼호 마네킹은 실로 마네킹이 아니라 ‘마네킹으로 일하기로 계약한’ 인간 이상호였다. ‘실은 마네킹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라는 발상 자체는 특이하지 않을 수 있지만 풀어내는 방식이 흥미로워서 흐뭇하게 읽었다. 이 소설에는 사람을 마네킹으로 만드는 것이 어떠한 기술인지, 해동은 어떻게 하는지 등의 기술적인 부분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다만 ‘그럴 수도 있겠군’하고 생각하게 하는 선에서 멈춰선다.

SF적인 상상력으로 스토리를 풍성하게 하되 결국은 인간의 이야기로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게 요즈음 SF 소설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 아닐까 해서 짧은 분량이었지만 흥미롭게 읽기 좋은 SF였다. (아, 물론 기술적인 측면이라던가 과학적인 서사가 더 들어가는 SF 장르도 있지만 그쪽은 내 취향이 아니기도 하다…) 다만 아쉬웠던 건 민정과 삼호가 맺어지는 마지막이 ‘갑자기 분위기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는 데 있다. 개인적으론 급작스러워서 다른 형태의 결말이어도 좋았을 것 같지만, 이대로도 괜찮았다.

궁금하다면 쭈욱 읽어보도록. 아, 진짜로 이런 일자리가 있다면 해보려나… 생각해봤는데 나는 안 할 것 같다. 마네킹이 됐을 때 내가 어떻게 될지, 나는 전혀 통제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하지만 동시에… 마네킹으로 비유했을 뿐, 현실의 일자리와도 같단 생각이 든다. 돈을 받고 사는 이상 일이란 거부할 수 없는 일이고 비인간적인 일도 겪으며 꾸역꾸역 버텨가는 게 인생사니까… 다만, 금융치료나 간혹 받으면서.

비인격적, 비인간적 대우가 자행되는 업무 환경들을 떠올려보면 마네킹과 크게 다르지도 않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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