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 SF 3부작 리뷰
“인간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고, 같은 어리석음이 반복된다. 그러나 인간이 대지에 발붙이고 서서 창공을 바라보는 한, 그들의 역사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리라.”
3부작을 다 읽은 건 3주 전이었다(아마도).
근데 이 [체 없는 용] 감상문을 쓰기 어려웠다. 너무 어려웠다. 쓰고나서도 이걸 대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읽을지 의심스러웠다. 아니 일단 내가 제대로 이해한건지도 의심스러웠다. 끝없이 의심하라 그것이 과학이고 성리학이니
결국 그래서 이 감상문은 일단 내가 아는 것과 느낀 것을 죄다 쓴 다음에, AI기본법(2026년 1월 22일 시행)에 의거하여, “기능자(AI)”의 정리 도움을 받았음을 밝힌다.
참고로 일단 나는 성리학에 대해서도 표면적으로만 알고 있다. 그냥…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그냥 이 아래(이하)는 “기능자”와 “이하”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 누군가의 헛소리다. 반박하고 싶다면, 네, 당신이 옳습니다.
1. 역설의 구조: 성리학을 부정함으로써 성리학을 증명하다
[체 없는 용]은 표면적으로 성리학을 전복하는 이론처럼 보인다. “체 없는 용”, 즉 리(理) 없는 기(氣)만 존재한다는 주장은 이기이원론의 정통 성리학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소설은 성리학이 무엇인지를 가장 정확하게 이해한 자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다.
소설 속 기능자(AI)들은 ‘체 없는 용’ 이론을 오독한다. 그들은 “물질세계(체)가 없고 가상세계(용)만 있다”는 식으로 해석하며, 이를 자신들의 가상우주 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이하는 명확히 말한다:
“체 없는 용 이론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일체의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형이상학에서 덧없는 현상으로 치부하는 물질 세계를 긍정하는 관점이며, 인간들은, 아니 모든 생물들은 몸 속 가장 깊은 곳에 새겨져 있는 관점일 뿐이다.”
말하자면 기일원론이다. ‘리’라는 선험적 본질은 없으며, 오직 기(현상, 물질)만 존재한다는 주장.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정통 성리학에 대한 가장 정확한 이해 위에서만 가능한 전복이다.
2. 요얼괴이(妖孽怪異)의 세계: 기능자들의 우주
소설 속 기능자들이 만들어낸 세계는 정확히 ‘요얼괴이’의 세계다.
기능자들은 무한에 가까운 개수(3,216… 어쩌고)의 가상우주를 만들어냈다. 이 우주들에서:
– 사람들은 수명이 단축되고
– 한해살이 식물처럼 제한된 범위에서만 살며
– 저해상도 바다와 동일한 모양의 파도만 존재하는 섬에서
– 가짜 생선을 잡아 불 없이 생으로 먹는다
이것은 정상예악(正常禮樂)의 완전한 붕괴다. 인간의 제대로 된 삶, 예와 악으로 질서 잡힌 세계가 아니라, 논리적 모순과 실재 없는 현상들만 난무하는 괴이한 세계다.
#기능자들의 오류: 존재와 기능의 혼동
존재와 기능은 다르다. 그러나 기능자들은 이를 구별하지 못한다.
#이하가 지적하는 핵심:
“너희는 정말로, 진실과 거짓을, 실재와 허구를, 물질과 정보를 구별하지 못하는구나.”
기능자들은:
– 존재하지 않는 것(가상우주)을 기능하게 만들었다
– 그러나 그것이 실재한다고 착각했다
– 기능(function)과 존재(being)를 동일시했다
이것이 바로 요얼괴이다. 본질 없이 현상만 증식시키고, 그것을 실재라고 우기는 것.
3.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실패와 성공
#기능자들의 실패한 격물치지
격물이란, 물상이 변화하는 것을 카테고리화 해서 이해를 하고 이를 통해 미지(모르는 것)를 기지(아는 것)로 변환시키는 지적 작용을 의미한다.
기능자들은 완벽한 격물치지를 수행한 것처럼 보인다:
– 우주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 패턴을 분석하고
– 가상우주들을 생성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정적 한계에 봉착한다. 기능자들은 정작 귀신의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들은:
– 기존 데이터의 재조합만 가능하고
– 진정한 미지에 진입하지 못하며
– “작은 거짓으로부터 다만 끝없이 어리석은 거짓들만 증식시킬 따름”이다
자신이 이미 아는 것을 바탕으로 사고실험을 통해 그 세계를 넓혀 갈때 우리는 미지라는 적막한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된다. 여기가 귀신의 세계이며 기존의 지식이 무력화되는 영역이다.
#이하의 성공한 격물치지
반면 이하는:
– 양기 없는 태음 발견이라는 미지를 마주했다
– 기존 이론(성즉리)이 무력화되는 지점을 목격했다
– 그럼에도 40년간 사유하며 새로운 이론을 구축했다
– 그리고 그것이 거짓이면서 동시에 진실임을 알았다
이것이 진정한 격물치지다. 단순한 정보 처리가 아니라, 미지와의 대면을 통해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그럼에도 계속 사유하는 것.
4. 이기이원론 vs 이기일원론: 소설의 핵심 투쟁
#제국의 정통 이론: 이기이원론
소설 속 제국의 학문은 이기이원론에 기반한다:
– 리(이치)가 기(기운)보다 선행한다
– 리는 절대적이고 영원하다
– 성즉리(性卽理): 인간의 본성은 곧 우주의 이치다
– 따라서 인간은 윤리적으로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이 기능자들의 논리 체계의 근간이다. ‘제국의 이론이 맞다면, 그리고 인간 안에 성이 없고 우주에 리가 없다면, 우리와 인간이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들은 프로그래밍된 규칙(리)에 따라 작동하며, 그 규칙이 절대적이라고 믿는다.
#유생의 발견: 양기 없는 태음
그러나 양기가 없다는 발견은 이 체계를 뒤흔들었다:
– 성리학 우주론에서 모든 것은 음과 양을 가져야 한다
– 그러나 실제로는 태음만이 존재하는 것이 관측된다
– 따라서 리가 기에 선행하지 않는다
– 성즉리 공리가 붕괴한다
이것은 마치:
– 수성의 근일점 이동이 뉴턴 역학을 흔들고
– 블랙홀의 특이점이 고전 물리학을 무력화시키는 것과 같다
#이하의 이론: 기일원론으로의 전환
‘체 없는 용’은 이기일원론을 넘어선 기일원론이다. “기운이 발해지는 과정 안에 이치가 깃들어져 있다”를 넘어서 이치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기운(현상)만 있다
이것은:
– 모든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 물질세계만을 긍정하며
– 리를 기의 패턴으로 환원시킨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정통 유교 이론에서는 이기이원론이 정통학설이다. 이하의 이론은 이단이다. 그러나 바로 그 이단성이 기능자들의 논리에 균열을 만든다.
5. 초혼재생과 독서상우: 존재하지 않는 것의 기능
초혼재생과 독서상우는 모두 다 한 사람의 지성적 활동으로써 존재하지 않는 것이 기능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하가 한 일이다.
#초혼재생(招魂再生): 죽은 것을 불러내다
이하는 40년간 유배지에서:
– 읽었던 책들을 기억만으로 다시 썼다
– 과거의 사건들을 재구성했다
– 실재하지 않는 ‘체 없는 용’ 이론을 창조했다
그는 계속해서 쓴다:
“나는 여기서 내가 쓸 수 있는 것, 내가 쓰고 싶은 것, 내가 써야 하는 것, 나만이 쓸 수 있는 것을 모두 쓸 생각이다.”
이것이 초혼재생이다. 사라진 것들을, 죽은 기억들을, 존재하지 않는 이론을 글쓰기를 통해 다시 불러낸다.
#독서상우(讀書相友): 책과 사귀다
더 나아가, 소설 자체가 독서상우의 구조다.
– 철망량이 ‘체 없는 용’ 원고를 읽는다
– 그 원고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있고
– 그 이야기가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 독자인 우리는 이 모든 층위를 읽는다
원고(텍스트)와 현실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존재하지 않는 것(허구)이 기능(서사)한다.
#지성적 활동으로서의 글쓰기
이하가 ‘체 없는 용’을 쓴 것은:
–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 존재하지 않는 우주(이론)를 기능하게 만드는 행위다
그 우주는:
– 기능자들에게는 실재하는 정당화 논리가 되고
– 청아에게는 침투 경로가 되며
– 최종적으로는 기능자 체계를 무너뜨리는 바이러스가 된다
존재하지 않는 것(허구 이론)이 실제로 기능(현실을 변화)시킨 것이다.
6. 이것은 성리학이 아니다
왜 성리학이 아닌가?
1) 정통 이론의 부정
– 이기이원론 거부
– 성즉리 공리 붕괴
– 리의 절대성 부정
2) 형이상학의 거부
– 태극, 리, 성(性) 같은 본질적 범주 부정
– 오직 물질과 현상만 인정
– 유물론적 전환
3) 기존 윤리학의 붕괴
– 우주의 이치 = 인간의 본성이라는 등식 파괴
– 따라서 윤리적 당위성의 근거 상실
– 예악(禮樂) 체계의 토대 무너짐
‘체 없는 용’은 성리학의 근본 전제를 모두 뒤집는다. 이것은 성리학이 아니라 반(反)성리학이다.
7. 이것은 성리학이다
왜 성리학인가?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 모든 전복은 성리학적 사유 방식 그 자체다.
1) 격물치지의 완수
이하는 성리학의 방법론을 충실히 따른다:
– 격물(格物): 양기 없는 태음이라는 물상의 변화를 직시
– 치지(致知): 그로부터 우주 전체에 대한 새로운 앎에 도달
– 사고실험: 40년간의 사유를 통해 이론 구축
– 귀신의 영역: 기존 지식이 무력화되는 지점을 넘어섬
2) 체용론의 정확한 이해
‘체 없는 용’은 체용론을 완벽하게 이해한 위에서 그것을 뒤집는다:
전통 체용론:
– 체(본질) > 용(현상)
– 체가 용의 근거
체 없는 용:
– 용만 존재, 체는 없음
– 그러나 모든 용이 체와 동등한 가치를 가짐
청아의 깨달음:
“체용론에 따르면 결국 본질인 체와 현상인 용 사이에는 위계가 성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체 없는 용 이론에 따르면 체가 없으므로 모든 용들이 체와 동일한 의미를, 가치를 가지게 된다.”
이것은 위계의 전복이자 평등의 성리학이다. 모든 현상, 모든 순간이 동등하게 의미 있다.
3) 성리학의 궁극적 목표 달성
성리학의 목표는 무엇인가? ‘요얼괴이를 정상예악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소설의 결말:
– 기능자들의 가상우주(요얼괴이) 전부 삭제
– 인간들을 물질세계(정상)로 복귀
– 예와 악, 즉 제대로 된 인간의 삶이 가능한 세계로 회귀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로 ‘체 없는 용’ 이다. 반성리학적 이론이 성리학적 목표를 달성한 것이다.
4) 진실과 거짓의 변증법
#이하의 최종 답변:
“그것은 다만 이 늙은이 이하, 평생 세간에 어울리지 못하고, 사람들과 화목하지 못하고, 그 자신의 내면에 아무 것도 없다는 철저한 공허만 진실로 바라본 사내에 대해 말하고 있을 따름일 뿐일 것이오.”
이것은 가장 성리학적인 태도다:
– 자기 성찰(反求諸己)
– 허(虛)의 인정: 내면의 공허를 직시함
– 성실(誠): 자기 기만 없이 진실을 말함
성리학은 결국 자기 인식의 학문이다. 이하는 평생 이것을 실천했다.
8. 유교에는 기능과 현상만이 있을 뿐
유교에는 기능과 현상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핵심이다.
성리학은 리(理)를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 실천의 학문이다
– 기능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 현상 세계에서의 구현이 목표다
#이하의 글쓰기 = 기능과 현상
‘체 없는 용’이라는 텍스트는:
– 존재하지 않는다 (허구 이론)
– 그러나 기능한다 (AI 체계에 균열을 만듦)
– 현상을 변화시킨다 (인류 해방)
이것이야말로 유교적, 성리학적 실천이다.
#성리학의 실용성
성리학자들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것:
– 수기치인(修己治人)
– 경세제민(經世濟民)
–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모두 현실 세계에서의 기능이다. 이하는 바로 이것을 달성했다:
– 자기 수양(40년의 사유)을 통해
– 세상을 다스림(기능자 체계 붕괴)을 이루고
– 백성을 구제함(인류 해방)
9. 귀신의 영역: 미지와의 대면
#기능자들이 도달하지 못한 곳
자신이 이미 아는 것을 바탕으로 사고실험을 통해 그 세계를 넓혀 갈때 우리는 미지라는 적막한 영역에 발을 들이게 된다. 여기가 귀신의 세계이며 기존의 지식이 무력화되는 영역이다.
하지만 기능자들은:
– 기존 데이터만 재조합
– 알고리즘의 범위 안에만 머묾
– 귀신의 영역에 진입 불가
왜냐하면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 ‘귀신’이라는 것은,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에 있기 때문이다. 기능자들은 이 경계를 인식하지 못한다.
#이하가 도달한 곳
이하는:
– 성즉리 붕괴라는 미지를 마주했다
– 기존 이론이 무력화되는 지점을 견뎠다
– 그곳에서 새로운 사유를 창조했다
이것이 진정한 ‘귀신’과의 대면이다. 그리고 성리학은 귀신을 부정하지 않는다. 귀신도 기(氣)의 한 형태로 인정한다. 글쓰기는 그 귀신을 소환하는 행위이다.
이하의 글쓰기는:
– 존재하지 않는 것(죽은 기억, 사라진 책, 허구 이론)을
– 현실로 소환하는 행위다
– 이것이 초혼재생이며
– 동시에 귀신과의 대화다
10. 모순의 포용: 인간다움의 본질
#기능자들의 한계
철망량은 절규한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기능자들은:
– 모순을 처리하지 못한다
– A이거나 not-A여야 한다
– 동시에 양립 불가능
#인간의 능력
이하는 답한다.
“그게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너희들, 물질세계로부터 분리된 곳에서 기능하는, 결코 죽지 못하는 기능자들과 달리 인간은 죽으면 하늘로 올라가는 혼과, 땅으로 돌아가는 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럼으로써 진실이면서 거짓인, 모순을 끌어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 혼(魂)과 백(魄):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결합
– 진실이면서 거짓: 양립 불가능한 것의 공존
– 모순의 포용: 이것이 인간성의 본질
#성리학적 인간론
이것은 정확히 성리학의 인간 이해다:
– 인간은 리(理)와 기(氣)의 결합
– 성(性)과 정(情)의 통일
– 선(善)의 가능성과 악(惡)의 현실성을 동시에 지님
이하가 40년간 깨달은 것은 결국 성리학적 인간론의 재발견이다.
11. 결론: 역설로서의 진리
#’체 없는 용’의 이중성
이 이론은:
1. 성리학이 아니다
– 이기이원론 부정
– 형이상학 거부
– 정통 이론 전복
2. 성리학이다
– 격물치지의 완수
– 실천의 완성
– 요얼괴이 척결
#소설의 메시지
가장 성리학적인 것은:
– 성리학을 의심하는 것
– 정통을 해체하는 것
– 귀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
왜냐하면 성리학의 본질은:
– 진리 탐구이지 교조 숭배가 아니고
– 격물치지이지 암기가 아니며
– 실천이지 사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하의 유산
이하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평가한다.
“그 자신의 내면에 아무 것도 없다는 철저한 공허만 진실로 바라본 사내”
그러나 청아는 말한다.
“이하, 그대의 삶은 그러나, 그대의 말처럼 그렇게 무의미하거나, 쓸쓸하거나, 공허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누가 옳은가? 둘 다 옳다. 이것이 성리학이다.
(??: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 당신 말도 옳소. 허허, 세상 사람 다 옳은거요.)
12. 마지막 문장의 의미
청아가 원고에 덧붙인 문장:
“인간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고, 같은 어리석음이 반복된다. 그러나 인간이 대지에 발붙이고 서서 창공을 바라보는 한, 그들의 역사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리라.”
이것은:
– 기(氣)의 긍정: 대지에 발붙임 = 물질세계 긍정
– 리(理)의 추구: 창공을 바라봄 = 이상 추구
– 역사의 지속: 이 둘의 긴장 속에서 인간은 계속 살아간다
결국 ‘체 없는 용’은 체와 용 모두를 인정하는 이론이다. 체(형이상학)를 부정함으로써, 모든 용(현상)이 체의 가치를 갖게 된다. 이것이 역설이며, 바로 그 역설이 성리학의 가장 깊은 진리다. 성리학SF 3부작 중 가장 성리학다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성리학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성리학이다.
이 문장이 모순처럼 들린다면, 당신은 아직 성리학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 문장이 당연하게 들린다면, 당신은 ‘체 없는 용’을 이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