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어떻게 추억할 것인가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저승길을 걷는 (작가: 1713,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7월 24일, 조회 21

<드픽 검색어 큐레이션: 영혼> 선정작입니다.

https://britg.kr/reviewer-novel-curation/196906

 

“영혼은 추억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인간은 자신이 언젠가 죽을 존재임을 인지하고 수용함으로써, 지금 여기 존재하는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깨달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죽음은 단순히 심장이 멎고 뇌가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나를 규정하고 나를 살아가게 하는 방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죽음을 직면했을 때 그동안의 삶을 후회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즐거운 것으로 추억할 수 있고 관조할 수 있으며, 그리하여 내가 지금 죽더라도 두렵거나 후회하지 않는 것. 이것이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삶의 방식이고 죽음입니다. 입관 체험이나 유서나 회고록을 쓰는 행위처럼 제 죽음을 직면하고 자신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혹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되짚어보는 행위 역시 이러한 맥락에 닿아 있다고 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자신의 삶을 후회하지 않고 즐겁게 추억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사람은 늘 선택의 기로에 있으며, 늘 기회비용을 셈하다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마다 죽음을 떠올릴 수도 없습니다. 죽음 그 자체가 두려운 것이기 이전에, 막연한 미래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순식간에 찾아옵니다. 불의의 사고라는 말은 그래서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어느 시점부터는 일상적으로 죽음을 생각하고 최선의 선택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의 삶마저 추억으로 긍정할 수 있을까요? 이는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저승길을 걷는>의 주인공 성아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처음 깨달았을 때는 이를 무서워합니다. 이는 갑자기 다가오는 죽음을 직면한 생명이라면 느끼는 당연한 반응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조금씩 사고의 각도가 달라집니다. 평생 앉아만 있었는데 그마저도 못 하게 된 처지를 서러워합니다. 성아는 학교에 가고, 얼음 땡 놀이를 하고, 분식점에서 슬러시를 사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련과 한으로 작용할 만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더 이상 할 수도, 꿈꿀 수도 없게 됨을 점차 받아들입니다. 제 손을 놓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미안함을 느낍니다. 어머니의 회한이 섞인 말에 따가움을 느끼며, 어머니가 잠든 사이에 떠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아가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였을 때 저승사자가 나타나 그를 거둬갑니다.

저승사자는 그 영혼이 가장 좋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아를 거둬가는 저승사자의 모습은 다름 아닌 성아 자신이지요. 다리를 마음대로 움직이며 저승길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생전의 성아와 다른 점일 뿐이고요. 그리고 지금의 성아 역시, 육신의 고통과 제약에서 해방되었기에 저승사자를 따라 저승길을 자기 마음대로 걸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성아가 자기 자신을 가장 좋아했음을 뜻합니다. 비록 부자유한 몸, 특이한 눈, 다른 이들과 많은 대화를 해본 적 없는 삶이 전부였지만요. 그런 삶마저 긍정하고 죽음을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저승사자마저도 놀랄 정도였고요.

성아와 똑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저 역시 일반적인 사람들보다는 신체의 부자유가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제가 성아가 그러했듯 삶을 긍정하고, 자기 자신을 가장 좋아하며, 죽음마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살 수 있는 경지에 오르고 싶네요. 죽음을, 자신에게 더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한 이정표로 삼으면서요. 그래서 언젠가 삶이 끝나는 순간에, 제 삶의 전부를 즐겁고 좋았던 것으로 추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를 써주신 1713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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