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절한 이야기였습니다. 문체부터가 긴 세월 잊지도 놓지도 못한 정에 대해 아쉬움 눌러 담겨 있고요. 갖춘 것 뭣도 없으나 그저 곧은 마음 하나 (거기에 더해 그걸 드러내기 충분한 눈빛…) 가진 이를 보고 반해서는 수 차례 그를 구하고 그도 모자라 내 모든 걸 (말 그대로) 던지는 여우 어르신이라뇨. 시간을 돌려서라도, 그게 내 삶을 갉아먹더라도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을 대략 짐작하니까 참 마음이 아프고, 이런 마음을 이용해 먹는 나쁜 너구리도 막판에 응징 당하니 다행이기도 합니다. 너굴아 너는 어떤 욕심으로 그렇게 다른 이들을 괴롭힌 거니? ㅠㅠ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너구리의 계략쯤 꿰뚫어 보고 구해 줬지만 사랑에 빠지면 눈이 멀긴 하나 봅니다.
중간중간 슬며시 드러나는 우스개도 역시 좋습니다. 여우한테 조상님 들먹였다가 혼나는 부분은 다시 봐도 웃기고 조금 쓰고요. 이 미련한 지아비는 한 번쯤 꺾여 여우와 행복할 법도 한데 뭐 준 것도 없는 나랏님 위한다고 목숨을 던져 속이 탔지만, 애초에 여우 어르신도 그런 모습을 꿰뚫어 보고 마음을 준 것이겠지요. 두 사랑의 화살이 조금씩 겹쳤더라면 좋을 텐데, 그러면 또 이야기가 이렇진 않았겠죠?
꼬리 여럿 달린 오래 산 여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되돌리는 것도 처음 봤는데, 그 속에 역사 속 전쟁이 나오고 그 유명한 장면까지 재연되니 감동이 더욱 컸습니다. 혹여라도 헛갈리지 않도록 복수의 목적을 밝혀 주는 여우 어르신의 기개도 멋졌고요. 몸을 던지기 전에 한 번 뚫어주는 액션도 통쾌합니다. 그럼에도 지아비는 돌아오거나 만날 수 없으니 ㅠㅠ 역시 있을 때 잘해야 한다… 말 잘 들어야겠다… 되뇌여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