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후기를 말씀드리기에 앞서, 사실 저는 판타지 장르에 대한 독서 경험이 거의 없는 편입니다. 때문에 랑다를 읽으면서 느껴졌던 개인적인 생각들을 나열해가는 중에, 판타지 소설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거나 동일 장르의 타 작품들과 견주었을 때 본 작품만이 가지는 개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작가님의 서사 전개와 세계관 설명의 조화]
우선 판타지 소설을 거의 처음 접해본 입장으로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작가가 중심 서사를 풀어나가며 랑다에서의 세계관과 설정들을 자연스럽게 독자에게 납득시켜간다는 점이었습니다.
판타지 소설 속 세상, 문화, 기치관 등은 독자가 살아가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입니다. 때문에 이것에 대한 적절한 설명 없이 서사가 진행되면, 독자는 현실 세상과 이질적인 장면을 마주하게 될 때 의아하거나 납득되지 않는 부분, 혹은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점이 발생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독자는 글에 대한 몰입이 깨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흔히 말하는 ‘설명충’처럼 독자를 이해시키겠다고 소설 속 세계관에 대한 설명만 쭉 늘어놓게 된다면? 작가는 설명만 하면 되니 편하겠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소설을 읽다가 정보 전달 성격의 설명문을 읽게되니 흥미가 반감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랑다에서는 요나에 관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도 자연스럽게 소설 속 세계관에 대한 설명들이 독자에게 전달되면서, 독자는 사건 장소에 대한 배경지식을 충분히 제공받고 글을 읽어나가며 이해를 더해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진행을 위해 설명이 부족하지도, 그렇다고 설명을 위해 이야기가 심하게 끊기지도 않았다는 점을 볼 때, 랑다의 작가님이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시는 서사와 정보의 밸런스 사이에서 얼마나 고심하셨는지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암투 속 인물들의 얽힘과 배신, 욕망이 부여하는 반전의 개연성]
랑다에서는 ‘암투’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이해관계속에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며 얽히게 됩니다. 어제의 협동자가 내일의 배신자가 되기도 하고, 서로 마음을 모아 모략을 하나의 목적을 위해 모략을 짜는듯 하지만 각자의 마음 속에서는 자기만의 또 다른 계획이 숨어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여러 인물들이 부딪히고 협력과 배신으로 상황이 뒤집어지는 가운데 독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개인적으로 그것은 개연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반전만을 목적으로 너무 욕심을 부린 나머지, 해당 반전이 배경이나 이유도 없이 뜬금없이 나타나거나 혹은 도리어 작품 속 배경과 복선에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들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랑다에서는 서로의 협동과 모략, 배신의 행위에 대한 개연성을 ‘개인의 욕망’으로써 부여해줍니다. 그리고 그 욕망 또한도 작가님께서 설정하신 세계관 속에서 인물들이 겪었던 과거의 경험과 생각들로부터 비롯됩니다.
가령 신의 힘이 권력이고 사회적 신분을 결정하게 되는 작중 배경 속에서, 신의 힘이 없이 태어나 생존을 위해 매춘을 하고 아버지까지 살해당한 요나는 카누다가 되겠다는 욕망을 지니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때로는 협력하기도 때로는 배신하기도 합니다. 딘과 란테 또한 이러한 세계 속에서 신의 힘이 없는 자로 태어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망을 지니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암투의 현장 속에 뛰어들어가 있습니다.
이렇듯 랑다의 세계관에서부터 인물의 욕망, 그리고 이로 비롯되는 상황의 전개와 반전이 모두 그 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독자인 저로서 펼쳐지는 반전들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개연성을 느낄 수 있었으며, 작가님이 그려가시는 암투극을 실감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암투 소재와의 차별점, 사회 체계와 자연의 질서에 대한 도전]
사실 잘 생각해보면 암투를 바탕으로 서로 배신하며 권력을 쟁취해가는 소재는 생각보다 흔하긴 합니다. 그러나 랑다에는, 인물들끼리 싸우고 갈등을 겪는 일반적인 암투 소재와는 차별화되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표면적으로 요나는 인물과 인물간의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면에서 요나는 랑이 없었지만 계약령을 통해 힘을 얻은 랑다들이 걷게 되는 의무 혹은 운명을 거스릅니다. 또한 랑이 없는 자들은 귀족이 될 수 없는 사회 체계의 질서를 거슬러 카누가 되고 카누다의 자리까지 노리고 있으며, 그러한 과정 속에서 요나는 조화신의 섭리 즉 소설 속 자연의 이치까지 거슬러가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갑니다.
요나는 인물간의 갈등을 넘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운명과 사회, 자연과도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암투를 소재로 한 본 소설에서 누가 어떻게 권력을 얻어낼 것인가는 분명 독자로서 궁금증을 자아내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랑다에서는 이에 더해 요나의 행적에 따라, 그리고 갈등의 진행에 따라 사회와 세계에 어떤 결과를 불러오게 될지도 독자에게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쥰의 말처럼 모두가 당연하게 여겨왔던 진실의 이면은 무엇일지, 제네바의 원대로 사회 질서가 새롭게 정립될지도 주목되는 부분입니다.
[요나와 티네의 복잡한 감정, 그로 인한 불분명함]
제가 글을 읽어나가며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일 수도 있긴 합니다만, 한편으로는 다소 의아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바로 요나와 티네, 둘 사이의 감정선이었습니다.
2화 마지막에 티네가 요나에게 협상을 제안하며 죽더라도 요나의 후원자이고 싶다고 하는데, 이러한 티네의 심리가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였습니다. ‘생존’은 사람의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욕구입니다. 이러한 생존 욕구를 넘어서까지 자신의 생존을 위협한 요나를 후원하고 싶다는 건, 사랑의 감정이 티네에게는 그만큼 더 컸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보여지는 티네의 행적은 오히려 요나를 위험으로 몰아가게도 합니다. 이러한 전개 속에서 티네가 어떤 본심과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가닥이 잘 안잡히기도 했습니다. 연인이며 동시에 반역자이기도 한 요나에게, 티네는 단순한 양가 감정인지, 아니면 더 복잡한, 혹은 더 간결한 감정과 욕망을 가지고 있는지 개인적으로 좀 더 알고 싶은 부분입니다.
한편으로는, 죽이고 싶을 만큼 사랑한다는 감정, 다른 말로는 티네를 향한 요나의 감정이 어떠한지도 더 이해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과거에 대한 티네의 발언 이후로 요나는 티네에 대한 마음이 돌아서기 시작하지만, 요나는 또한 여전히 티네를 향한 연인의 마음이 남아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카누다’ 라는 자리를 향한 요나의 욕망, 그리고 그 심연 속 깔려있는 아버지에 대한 복수, 랑다들을 모두 무릎 꿇리고 싶은 마음 등은 쉽게 읽어집니다. 그러나 카누다 자리에 있는 ‘티네’를 향한 요나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티네를 사랑하고 그를 닮고 싶어하지만 한편으로는 닮고 싶기에 카누다가 되고 싶고 그 욕망을 위해 티네를 없애고 싶은 마음인 것인지 추측해보고 사려해보게 됩니다.
본래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이고 때로는 명확하게 하나로 정리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도 합니다. 또한 여러 감정들이 상충하며 때로는 어느 하나가 우세했다가 또 다른 때에는 반대점의 감정이 우세하기도 하며 서로 엎치락 뒤치락 하는게, 오히려 자연스러운 사람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한편으로는 제가 티네와 요나 서로를 향한 서로의 마음을 너무 단순하게 명료화하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글을 마치며]
판타지라는 낯선 장르, 거기에 인물과 배경 숙지에 시간이 걸리는 저의 개인적 특성 탓에 외국어 고유명사가 등장할 때부터 긴장을 좀 하긴 했습니다. 그러나 서사가 진행되며 등장하는 적절한 배경 설명은 이런 우려를 잠재워주었습니다. 또한 암투 속에서 느껴지는 갈등과 긴장감, 그 안에서 보여지는 인물들의 욕망과 개연성있는 반전은 저로 하여금 랑다를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아울러 암투의 결말은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그리고 요나를 둘러싼 자연과 사회가 어떠한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판타지를 처음 입문한거나 다름 없는 저에게,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발을 들일 수 있도록 해주신 작가님의 역량에 놀라움을 표현하며, 작품의 결말까지 무사히 완주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랑다와 늘 함께하며 마무리되는 그날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