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 없이도 살고자) 서로를 구한 여자들 감상

대상작품: 바닥 없는 샘물을 한 홉만 내어주시면 (작가: 김아직, 작품정보)
리뷰어: 뇌빌, 7월 11일, 조회 18

저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어서 흥미진진하게 읽었는데, 돌이켜 생각하니 더 알았더라도 역시 흥미진진했을 것 같습니다. 초반 전개가 다소 짧아서인지 글라우케의 생사를 오가는 고난이 조금 덜 와닿았던 것 같은데 (어쩌면 제 생물학적 성별 탓도 있겠습니다…) 두려움과 갈증에 찬 진퇴양난의 순간에 정신 바짝 차려 아버지의 유언을 기억하고 “바닥없는 샘의 물을 한 홉만” 청하는 모습에 참 마음이 쓰였습니다. 이 순간의 인내와 지혜가 스스로를 구하는구나, 싶었어요. 처음에 히드라조차 비웃었던 “마음을 드리겠다”는 것도 보통 마음 건강한 아이의 언사가 아니다 생각을 했습니다. 게다가 그 밑도 끝도 뭣도 없는 약속을 평생과 시간을 되돌리면서까지 지키기도 하고요.

많은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에서 주연이던 헤라클레스가 정말 도구적으로 스쳐 지난 점도 재미있습니다. 주로 괴물/악당이던 히드라의 고독과 외로움을 글라우케의 지혜와 용기, 신의로 달래고 끝내 살려서 함께하는 이야기라 감동적이고요. 신화 이야기에서 보이는 축약된 이야기와 현대 소설 같은 대화, 묘사가 어우러진 점도 조금 긴 편인 이야기를 즐거이 읽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무엇보다 글라우케라는 인물의 성격이 몹시 인상적인데, 어떤 상황에서도 더 나은 선택을 하고자 용기를 내는 점, 그러기에 충분히 지혜로운 점, 낸 말을 지키고자 거의 모든 것을 (꾸어서라도) 거는 점이 참 멋졌어요. 아직 어리지만 저희 아이도 이런 모습을 닮아 자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앞부터 읽어 보니 글라우케는 아버지의 유언 “그늘과 물을 가진 자에게 의탁하고”, “신성한 곡식을 항아리에 퍼 담고”, “만새기와 보릿가루를 나누며”, “살아라” 모두를 이루고 지킨 효녀(?)이기도 했네요. 곧은 마음 하나로 마침내 신들의 서사와 시간까지 꼬이게 하였으나 큰 감동을 주고 간 글라우케와 작가님께 고맙습니다. 글라우케 아빠 엄마도 무척 자랑스러우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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