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이 작품에 타임리프가 등장한다는 설정 자체가 일종의 스포일러라는 점 때문에 제목을 어떻게 정할지, 그리고 리뷰 내용을 어떻게 전개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음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타임리프가 작품소개 태그에도 당당히 붙어있다는 점, 그리고 타임리프공모전수상작이라는 점을 고려해서, 본 리뷰의 제목에도 시간여행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었습니다만……. 혹시 작가님의 생각이 다르시다면 제목을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글라우케의 험난한 여정을 노래한 하나의 짧은 서사시입니다. 신들의 시대에 별다른 능력없이 태어난 소녀 글라우케는, 노예장에게 쫓기고 먼 길을 홀로 여행하는 등 다양한 시련을 겪습니다. 글라우케는 자신의 의지를 이루기 위해 시간을 되돌리기까지 합니다. 줄거리에 대한 보다구체적인 내용은 리뷰에 적기보다는 작품을 직접 읽어보시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신화 시대를 배경으로 펼치지는 그 생생한 이야기를 짧은 리뷰에 옮겨담기에는 제 글솜씨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신화와 시간여행은 둘 다 아주 매력적인 소재입니다. 이 둘의 결합 또한 대단히 흥미로운 전개를 이끌어내는 것 같습니다. 다소 편협한 시각일 수있지만, 신화나 옛이야기의 배경은 주로 과거 시대이고, 시간여행의 경우 많은 작품이 미래 (내지는 현재)를 배경으로 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이둘을 결합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속성을 가진 재료들로 요리를 해 내는 일과 비슷한 인상을 제게 줍니다.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는 도전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그 요리를 아주 맛깔스럽게 해냅니다.
두 요소의 결합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역시 시간을 돌리는 방법이 아닐까 싶은데요. 작가님은 아주 신선하고 감동적인 방식으로 그 방법을 풀어냈습니다. 작품 내에서 시간을 돌리는 방법은 시간의 신 크로노스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상당히 신비롭고 낭만적입니다. 사실 작품 태그와 초반 전개를 보고 시간의 신이 등장할 거라 어림짐작했던 제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오기까지 했지요. 물론 독자분들에 따라‘이건 말이 안돼!’라고 외치는 분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이 작품은 하드 SF가 아니라 판타지니까요.
이 작품이 그리는 그리스 세상은 아주 생생합니다. 작가님은 날품팔이, 만새기, 아욱, 둥굴레, 아고리, 상수리 열매, 암포라 등 현대에는 사용이 줄어든 단어들을 적극 활용하여 우리를 그리스 시대로 던져넣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은 작품을 읽는 독자 분들이 정말로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로 흠뻑 몰입하게 도와줍니다. 옛 그리스의 사회상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시느라 심혈을 기울이셨을 작가님의 노력에 박수를보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리스 시대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철저히 글라우케의 시선으로 시대를 바라봅니다.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인 시선에서 헤라클레스는 영웅이었지만, 글라우케의 입장에서 헤라클레스는 스스로의 가족들을 때려죽이고 은인인 히드라까지 살해한 미치광이에 불과합니다. 현대의 여러 매체들이 구축한 헤라클레스의 영웅적인 이미지를 고려하면 신선한 캐릭터 해석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더 좋았던 점은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구해주는 것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구원하는 소위 ‘쌍방구원서사’를 맛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글리우케는 히드라에게 목숨을 빚졌지만, 많은 신들을 만나는 노력 끝에 자신의 은인인 히드라를 죽음으로부터 구원합니다. 약자가 피나는 노력 끝에 세상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켜 내는 서사는 그 자체로도 손에 땀을 쥐게 만듭니다. 하물며 그 결과가 쌍방구원서사라. 소설의결말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애틋함과 짜릿함을 동시에 느낄 수 밖에 없죠.
좋은 작품을 읽게 해 주신 김아직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건필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