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네비게이션 없이 운전을 못 합니다. 저와 같은 사람이 여러명일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초행길을 네비 없이 가는 운전자는 요즘 같은 시대에 찾아보기 힘드니까요. 아무튼. 네비게이션이 있어 처음 가는 길도 겁 없이 가는데 가끔은 얘가 나를 엿 맥이고 있구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가령 최단거리로 10키로미터 거리의 길이 분명히 있는데, 네비는 그 길 대신 돌아돌아 20키로미터 거리의 길로 가라고 추천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고민하지만 결국 네비의 말을 따릅니다.
‘아, 얘는 내가 볼 수 없는 전체적인 교통상황을 보고 그 쪽이 더 빠르다고 판단해서 알려주는 거겠지? 그래 믿는다 네비야’ 하고 추천하는대로 따라갔다가 막히는 도로에서 오줌보 터질뻔한 적도 많고 인간한테도 안 하는 욕을 네비한테 퍼부은 적도 있습니다.
위에 든 예에서 네비는 적어도 악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파록소는 악의가 있어보입니다. 그 악의는 인간이 프로그래밍 했다기보다 저 스스로 인간들을 학습한 결과겠지요. (결국, 아무튼, 인간이 문제네요.) 인간으로부터 ‘못된 것만’ 학습한 파록소와 같은 AI들은 결국 현재의 인간들처럼 인간 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듯 보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죠.
저는 결말보다 주인공의 태도에 더 놀랐습니다. 그와 대화하는 파록소가 인공지능임을 알고서도 주인공은 그에게 의지합니다. 나중에는 유료결제를 앞두고 전전긍긍하기까지 합니다. 인간끼리 소통하는 일에도 AI에게 의지하는 순간입니다. 있을법한 일입니다. 인간들은 인간의 나약한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발명품들을 세상에 내놓았고 AI도 다르지 않죠. 결국은 인간의 외로움을 덜기 위해 AI까지 동원 되는거죠.
갑자기 윌 스미스 주연의 영화 아이 로봇이 생각나네요. 많은 사람들이 로봇에게 기댈 때 윌 스미스는 되도록이면 뭐든 자신의 힘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네. 나중에 AI에게 험한 꼴 당하지 않으려면 저부터 네비 끄고 운전하는 버릇을 들여봐야겠습니다. 서울 가려다 부산 갈지도 모르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