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리셋된다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비평

대상작품: 지구리셋설 (작가: 다쓴공책,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월 27일, 조회 80

한마디로 “정말 잘 읽히는 소설”이다. 이 소설 <지구리셋설> 말이다. 3월 25일 지구를 초기화시키겠습니다라는 장난문자처럼 보이는 ‘문자메시지’에서 시작돼 정말 지구가 멸망하고 단 한 명의 생존자가 남기까지 이 소설은 거침없이 나아간다.

어느날 갑자기 날아든 메시지, 곧이어 벌어지는 지구 멸망 스토리는 내게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으로 익숙하다. 이 소설이 히트를 친 이후로 여러 소설들이 비슷하게 쏟아졌기에 혹여 그와 비슷한 내용이지 않을까 하면서 봤는데 결론적으로 완전히 다른 내용이어서 좋았다. 이 지구가 ‘누군가’에 의하여 만들어졌고, 지켜보는 이들이 있으며 중계자도 있다는 설정은 유사하지만 풀어가는 방식이 다르다고 해야할까. 중반 이후쯔음 되니까 결말이 살짝 유추 가능했지만 (메타 소설 분위기가 풍겼음) 아는 맛이어서 더 맛있었고, 마무리까지 완성도 있었다.

특히 지구를 초기화시키겠다는 예고 문자로 시작해 처음엔 통신망, 그 다음에는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동물… 순서대로 지구의 ‘것’들이 사라질 때마다 벌어지는 재난이 설득력 있었다. 현장감이랄까, 내가 그 재난에 휘말린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무드가 좋았는데 아무래도 그 부분을 한번 더 봐야 할 거 같다. 보면 알겠지만 특히 건물을 다 없앤다고 문자가 나오자마자 건물이 삭제되고 그 안의 사람, 사물들이 떨어지면서 추락사하는 사람들의 살풍경을 그려낸 부분이라던가, 바다가 없어지고 중력이 빨려가는 배를 그려낸 표현들이 인상 깊었다.

또 하나, 이 소설을 이야기하면서는 문장에 대해 꼭 한번 짚고 싶었다. 이러한 역동적인 분위기를 짤막하면서도 스피디한 문장으로 어쩜 이렇게 잘 표현해내는 걸까 감탄하면서 보았다. 설명, 묘사가 많고 긴 문장보다 짧고 스피디한 문장이 더 쓰기 어렵다는 걸 안다. 많은 이야기를 내포한 채로 덜어내고 또 덜어내진 문장이 이 소설에 속도감을 더했다. 중반부 즈음에는 나도 지구 멸망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것처럼 주인공과 함께 도피했고, 절망했으며, 자꾸 날아드는 문자에 진저리를 내게 됐으니, 이만한 몰입감이 또 있을까.

나는 본디 허무맹랑한 상상력에 그럴싸한 전개 그리고 스피디한 사건의 연속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 소설 <지구리셋설>은 그러한 내 취향에 딱 맞았다. 허니 이건 어쩌면 지극히 사심이 담긴 리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상력이 발칙하면, 전개가 엉성하고, 사건이 스피디하면 설득력이 떨어지게 마련이라 이 모든 게 잘 어우러진 소설을 만난다는 건 쉽지 않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지구리셋> 이 상상이 이미 특이하기 때문에 이 리뷰를 읽어봐도 소설이 잘 그려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1화만 보면 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긴가민가하면서, 약간은 긴장어린 시선으로 1화를 읽고 나서 나는 단숨에 마지막 화까지 내달렸다. 역시 첫 문장, 첫 화가 중요하다는 걸 여실히 느낀 어제였다. 회사에서 숨 가쁘게 일하고 집에 들어와 따끈하게 씻고 나서 나는 브릿G를 켰고, 고민 끝에 이 소설을 택했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누워서 핸드폰으로 스스슥 보면서 빨려들 만큼 흥미로웠던 소설, 당신의 하루의 끝에서 혹은 하루의 시작에, 때론 지옥철에 끼인 상태로 봐도 재미있을 것이다.

다만, 하나 아쉬웠던 건 ‘일리 있는 결말’이었지만, 앞서의 에너지가 증폭되면서 기대했던 것보다는 살짝 김 빠지는 결말이었다. 갑작스럽게 위아더 월드가 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지구가 리셋되는 풍경을 관음하듯 바라보던 자들이 주인공을, 사람들을 살리는 선택을 한 이유를 나는 잘 모르겠다. (약간의 스포이긴 하지만 오히려 흥미있을 이야기라 오픈해 본다)

만약에 내가 그들이라면, 단지 재미로 대재앙이 일어나는 것을 지켜보고 때론 재앙을 더하기까지 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면 우리 입장에서 인류애적인 결말을 선택하더라도 그들의 입장에선 ‘다른 유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서다. 어쩌면 이 글이 분량이 경장편 정도의 분량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한 끗이 아쉬웠다. 그 존재들의 ‘의도’나 ‘생각’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는 건 그만큼 내가 몰입했다는 뜻일 터. 느닷없이 멸망하는 지구, 그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구 밖’ 흑막 세력이 궁금하다면 지금 스윽 읽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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