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여우를 사랑하면 어떻게 될까요?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찔레와 장미가 헤어지는 계절에 (작가: 번연,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1월 20일, 조회 18

호랑이를 좋아하고 동양 판타지를 좋아하며 설화에 미친다. 특히 애절한 멜로는 ‘나의 최애’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소설 <찔레와 장미가 헤어지는 계절에>를 읽기 시작했다. 소설 설명에 이렇게 적혀 있거든. ‘지아비를 보겠다 찾아오는 여우가 그저 불쾌하고 답답한 호랑이 수문장의 옛날 이야기. 여우가 찔레라면, 호랑이는 장미겠지요-’라고.
찔레꽃이라면 가지에 예리한 가시가 있는 들장미일 터. 야생의 기운이 깃든 자유로운 이가 여우고, 호랑이는 조금 더 화려하고 기운이 장대하다는 의미일까. 제목을 보며 궁금했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 작가의 말에서 의문이 풀렸다. 그 이야기를 여기에 옮기지는 않겠다. 궁금하면 소설을 한번 읽어봐 달라는 의미다.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호랑이가 장미라는 데는 동의가 되지 않았다. 이 소설 속 호랑이는 꽃보다는 관목 같았다. 덩굴로 이뤄진 작은 키 나무, 자기만의 영역을 꽁꽁 싸매고 지키고 있는, 강한 듯 여린 나무의 이미지여서다. 내게 장미는 화사하고 관능적인 꽃과 같아서 더 그렇겠지만, 이건 읽는 이에 따라 다를지도 모르겠다.

스토리를 짧게 정리하자면 죄인을 가두는 ‘곤륜의 감시자’ 호형랑(이하 호랑이)이 죄인의 부인인 천호(신선이 된 여우)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자신보다 앞서 천호의 반열에 오른 지아비가 하늘의 약초를 훔친 죄로 처형될 위기에 놓이자 여인은 간곡하게 지아비의 소식을 알고자 하지만, 호랑이에 의해 거부당한다. 간곡한 방문과 단호한 거절이 반복되는 가운데 호랑이의 마음속에 여인에 대한 ‘호기심’이 싹 튼다.

잘 들어가지도 않던 곤륜 안으로 가서 내부의 소식을 확인해 본 바, 여인의 사연은 더 기구했다. 일부일처로 해로하는 여우의 습성과 다르게 여인의 지아비는 자기 첩을 천호로 올리고자 무리해서 약초를 훔치다 걸린 것이었다. 여인은 지아비의 배반에도 제 할 도리를 다한다. 제 가슴털을 뽑고 머리카락을 섞어 지아비의 수의를 만들고, 제 목숨보다도 지아비의 안위를 더 신경 쓴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갑갑해하는 감정이 잘 전해졌다. 호랑이의 시점에서 쓰이다 보니 여인을 바라보는 절절한 마음이 잘 느껴져서 좋았다. 특히나 문장이 유려한 편이어서 더 잘 읽을 수 있었다. 지아비만 바라보는 여인과 그 여인을 바라보게 된 호랑이의 결말에 대해서는 적지 않겠다. 여러 번 설명하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게 더 좋을 테니 말이다.
소재가 좋았고, 잘 읽혔던 만큼 아쉬운 점 역시 남았다. 첫째는 호랑이가 여우를 왜 사랑하게 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일인칭 시점인 만큼 아주 사소하게라도 여우에게 마음이 가는, 부정했다가 끝내 긍정하게 되는 감정의 곡절을 더 담아낼 수 있었을 거 같은데 이 소설에서는 여인을 바라보는 절절한 마음은 많이 담겨 있지만, 그 여인을 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부족해서 마지막까지 ?로 남았다. 단 한 번도 누군가를 담아본 적 없고, 세상만사 무료하기만 했던 호랑이가 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하다못해 쓰러지는 여인을 끌어안을 때 훅 끼치는 살내음, 풀꽃 냄새가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던가 ‘핵심적 장면’이 있었다면 좋을 거 같다.
둘째로는 감정에 대한 묘사는 디테일한 편이었는데 공간에 대한 묘사가 아쉬웠다는 점에 있다. 판타지적인 공간 배경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인물이 이동할 때나, 중요한 장면을 그려낼 때는 공간도 눈에 그려지듯 보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그런 부분들이 흐릿하게 그려져서 여기가 어떤 곳인지, 누가 있고, 어떠한 형태로 머물러 있는지, 그 공간과 이 인물들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감이 잘 오지 않아서 몰입에 어려움을 겪었다. 때로는 공간이 바뀌었는데도 어디가 어딘지 헷갈릴 때도 있어서 아쉬웠다.
좋아하는 소재이고 감수성을 가진 소설이어서 좋았고, 아쉬운 점도 남았다. 동양 설화적인 스토리를 이만큼 유려하게 풀어내는 것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재미있게 읽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