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발달한 공권력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 공모(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피어클리벤의 금화 (작가: 신서로, 작품정보)
리뷰어: 루주아, 17년 7월, 조회 806

읽기 전에는 분량에 압도되어서 이걸 다 읽을 수 있을까 했는데, 기우였습니다. 재밋네요. 정신을 차려보니 78화의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것입니다. 으음, 하지만 감상에 더 가깝겠내요. 1부 정도는 읽고 리뷰를 읽으시는걸 추천합니다.

 

피어클리벤의 금화는 판타지 장르입니다. 현대 도시를 기반으로 한 어반 판타지등 다양한 판타지의 하위 장르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판타지라고 하면 용과 마법이 있는 중세 유럽풍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들이죠.

중세 유럽과는 다릅니다. 중세 유럽과는!

중세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인가요? 중세의 시작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로 잡느냐는 복잡하고 지루한 문제고, 이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중세가 실제로는 10세기, 약 천년 가까이 존속된 시대이며, 초기와 중기, 후기에 따라 절대 서로 같다고 말할 수 없는 기나긴 스펙트럼이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중세가 아닌 중세풍인거죠.

그렇지만 몇가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강력한 왕권은 아직 확립되지 않은 봉건제 국가일 것이며, 신분의 고하가 명확하고, 영주는 자신의 영지에서는 왕처럼 군림합니다. 또한 중세풍의 판타지니까 마법과 주술과 같은 신비가 남아있고, 어쩌면 용이나 엘프같은 인간과 다른 이종족도 기대 할 수 있겠죠. 물론 고블린이나 오우거, 오크 같은 것도요 뭐든지 가능할 것입니다.

판타지의 문제는 이 뭐든지 가능하단 것에서 나옵니다. 그러니 반대로 생각해 보죠. 우리가 이 세계에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기대해선 안되는게 있다면 뭘까요? 아마도 그건 공권력일 것입니다. 예 ‘공권력’이요. 중국의 중세 이야기 삼국지를 떠올려 보세요. 혼란의 시대, 황제의 명령이 지방 현령들의 행정력으로 변환되어 태평성대를 이루는 그런 상황을 원하나요? 위와 촉의 싸움이 송사를 통해 법정에서 해결되는 상황은요? 아뇨 우리는 그런걸 전혀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건 우리의 선택지가 아니에요.

자 그럼 드디어 피어클리벤의 금화 이야기를 시작해 보죠. 방금 전 우리가 절대로 기대해선 안될게 뭐라고 했죠? ‘공권력’이요! 그런 우리를 위해 작가는 공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해 왔습니다. 정확히는 공권력을 확립하는 이야기죠.

용, 드래곤, 어떤 생각이 드나요? 마법의 종주, 비대칭무기, 궁극의 생명체, 막대한 부, 이런저런 속성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 특징적인게 바로 ‘맹세를 어기지 못한다’ 는 특징이죠. 궁극의 생명체이자 마법의 종주, 막대한 부를 지닌 위대한 존재가 보증을 서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심지어 그는 이뤄진 모든 보증에 대해 자신의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그렇게 태어난 생명체니까요.

인감도장을 떠올려 봅시다. 막도장과 인감도장의 차이는 뭘까요? 국가는 인감도장을 관리하고, 인감도장이 찍힌 문서에 대해 그것은 개인의 약속임에 틀림없다는 것을 보증해 주죠. 따라서 인감도장은 철저하게 관리됩니다. 하지만 그게 우리나라 바깥에서도 통할까요? 아마도요. 그럼 다른 종족하고는요? 글쎄요.

중세라면 어떨까요? 우리의 작은 영지 피어클리벤이라면요? 피어클리벤 영주의 말은 누가 보증하나요? 누구의 위세를 빌릴 수 있나요? 그 보증이 인간 외의 종족에게도 통할까요? 다행히 이 세계는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입니다. 작가는 피어클리벤에게 충분한, 어쩌면 과할지도 모르는 신용을 제공하는 인감도장이 주었죠. 린트부름의 올바른 적생자. 빌러디저드. 예 드래곤이죠.

싸움을 위해서는 강건한 육체가 필요합니다. 강건함의 스케일이 커지면 전설이 되겠죠. 고려시대의 소드마스터 척준경을 아시나요? 그의 활약상을 들을때, 그가 지녔을 검술의 고강함이나 육체의 대단함을 상상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교섭과 협상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신뢰겠죠. 절대적으로 지켜지는 신뢰가 있다면, 그 교섭과 협상은 전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SF팬이 아니라도 한번쯤 충분히 발달한 과학기술은 마법과 구분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을 것입니다. 다른 판타지에서는 이 충분히 발달한 마법을 물리학, 내지는 화학으로 치환시켜 이야기를 진행하곤 합니다. 하지만 물리학이 과학인 것 만큼이나 사회과학도 과학입니다. 행정학, 정치학, 경영학, 법학 좀 더 범위를 넓힌다면 인문과학까지도요. 그렇다면 드래곤을 이러한 과학으로도 구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절대적인 신뢰를 공급하는 공급처로요.

충분히 발달한 과학기술이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면, 충분히 발달한 마법 또한 과학기술과 구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드래곤은 충분히 발달한 마법이이죠.

자 그럼 그렇게 드래곤이 보증을 해주는 이 세계에서 울리케, 나아가 피어클리벤가 어떤 끝을 맺을지 기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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