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이라는 서글픈 저주 감상

대상작품: 코스모노미콘의 추억 (작가: 대혐수, 작품정보)
리뷰어: 글 쓰는 빗물, 18시간 전, 조회 12

어째서 우리는 학교 괴담에 열광하는가. <여고괴담>은 현대 한국 공포 영화의 시작점이 되었고,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괴이한 일은 공포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인기의 답은 어쩌면 질문을 바꿔보아야 나올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우리는, 학교를 그렇게나 증오했으면서 동시에 그 시절을 벗어나지 못하는가?

<코스모노미콘의 추억>은 오컬트와 증강현실이라는 소재가 합해진 학교 괴담이다. 학교 괴담이 주소재가 되는 공포물이 흔히 그렇듯 작중 학교에 떠도는 괴담이 주요 서사와 맞물리는 구조를 갖고있다. 고대의 주술과 가장 현대적인 기술이 부딪쳐 만들어내는 공포, 작품 속과 바깥의 괴담이 엮여들어가며 빚어지는 파국. 소설 속 고등학교는 이 이질적 요소들을 이어주는 장소가 된다. 모든 공간은 그곳에서 일어난 일들의 숨죽인 목격자이자 그것을 기억하는 주체다. 그러니 오래된 건축물의 벽면 하나하나, 마룻장 하나하나에 셀 수 없이 많은 집단기억이 잠들어있는 것도 당연하다. 그렇다면 학교는 어떨까. 소설은 주술이란 일상에 비일상이 침투한 결과라고 거듭 강조한다. 학교란 학생들이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보내는 일상적 공간이면서 동시에 알 수 없는 기이함과 위화감이 넘실대는 곳이기도 하다. 수없이 다양한 욕망과 배경과 기질을 가진 아이들이 같은 책상에 앉아 같은 칠판을 바라보는 곳. 이 강렬한 부딪침은 우리의 학교, 그리고 학창시절을 거대한 저주이자 주술 그 자체로 변모시킨다.

<코스모노미콘의 추억>에서 지오맨시라는 주술이 갖는 무작위성은 별의 관측, 코딩, 그리고 학교의 복잡한 설계와 맞물려 이야기를 끌어간다. 어떤 의미도 없는 점의 배열은 주술의 조건이 갖춰진 순간 전혀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연다. 이것은 다름아닌 학교가 우리에게 행했던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다른 이들의 학창시절 악몽을 전승받고 또 전승한다. 이 과정은 무의식적이고 잔인하다. 다만 우리는 저주를 끊지는 못해도 잠재우기 위해 발버둥칠뿐이다. 그러기 위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기억을 의도적으로 재구성하고, 주술의 규칙을 파악해 역이용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주 의도적인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숱한 뒤틀림이 겹치며 일어나버린, 점처럼 산재한 아이들의 접촉이 불러왔던 학창시절의 어떤 저주. 소설의 ‘글쓴이%는 그곳에서 잃어버린 얼굴들을 위해 그 위에 어떤 마음과 활자를 덧칠하고 또 덧칠한다. 그렇게 이야기는 우연성과 불규칙의 세계에 서글프게 맞선다.

목록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