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싹한 괴담에서 할머니의 사랑을 읽다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불청객 (작가: 이시우, 작품정보)
리뷰어: HY, 17년 7월, 조회 139

<전체가 스포일러. 스포일러 있음>

<다시 말하지만, 전체가 스포일러. 아, 근데 저 혼자 그냥 망상하듯 해석해본 거라서 딱히 스포일러가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언뜻 미쓰다신조가 떠올랐다.
미쓰다 신조의 괴담 단편 중에도 자식에게 일어난 괴이를 할머니가 막아주는 작품이 몇 편 있었다. 왜 할머니일까. 아무래도 오래 살아와서 지혜가 풍부하고, 어머니는 아니지만 어머니 못지 않은 모성을 가지고 있다. 자식(손주)를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초개처럼 바칠 수 있는 모성 말이다.

(물론 박수무당 같은 건 남자지만) 대개의 무당은 여성이다. 서양호러영화에서도 강령술 같은 거 하는 거 보면 여성 영매가 주관하더라. 일본에서도 주신이자 태양신• 천황가의 시조는 아마테라스라는 여신이다. 일본 신사 가보면 아르바이트로 무녀를 하고 있는 젊은 여성들 많은데 참 보기 좋습니다.

왜 여성일까… 는 모르겠다. (나는 그걸 알만한 교양은 없다.)
잠깐 생각해보면, 여성은 뭔가 음의 기운으로 상징되고 있고, 음의 기운은 달, 달은 밤… 어쨌든 그런 신비 또는 괴이와 어울리는 건 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질투(공포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감정)와 정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도 여성이므로 죽어서까지 그 감정을 끌고 갈 것 같다.(죄송..남녀차별ㅜㅠ) 한국의 대표귀신은 처녀귀신 아닌가. 일본 하면 떠오르는 무서운 귀신괴담도 요쓰야괴담, 접시세는 오기쿠 등 모두 여자귀신이다. 어쩌면 전통적으로 여자가 약자의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그 복수에 대한 남성의 무의식적 불안감이… 아 뭐라는지 모르겠다.

 

이 작품에서도 화자인 석이 빼고는 다 여성이다.
동생인 진이도 여성, 할머니도 여성.

그리고 그 여성들은 화자인 석이보다 ‘감’이 좋다.
할머니가 방에 들어왔을 때 진이는 그것이 순수한 할머니가 아님을 바로 알아챈다. 그리고 ‘할머니 아니야!!’라고 외친다.(음… 할머니가 아니라기보다 반은 할머니, 나머지 반은 집 밖의 괴이와 합쳐진 것일 것이다.)

할머니는 또 어떤가. 아예 바깥의 괴이한 무언가와 통해버린다.
할머니이면서 동시에 바깥의 괴이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바깥의 괴이가 동시에 할머니가 되는 건 아니다. 아무래도 할머니는 할머니일 수밖에 없고, 바깥의 괴이는 인간보다 스케일이 큰 무언가일 테니까 말이다.)

 

바깥의 괴이는 어쩌면 석이의 바램이 불러온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학생.. 할머니랑 동생이 밉지? 할머니 때문에 이런 시골에 내려오고, 동생 때문에 밖에 놀러 다니지도 못하고 어린 여동생 끼고 다니는 오빠라고 놀림이나 당하고.”
할머니이자 바깥의 괴이인 그 무언가가 석이한테 한 말이다. 석이의 감춰왔던 내면의 원망이 괴이의 입을 통해 나온 것 뿐이다.

석이는 그래도 착한 아이였다. 자신의 어깨에 짊어진 짐(할머니와 여동생)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기를 바란 것 뿐일지 모른다. 짐이 가벼워지려면 짐을 조금 덜어내면 된다.

괴이는 석이에게 말한다. 뉘앙스는 다르지만 결국 ‘할머니를 내려놓을래, 아니면 여동생을 내려놓을래?’ 이다. 그리고 석이의 양심을 지켜주기 위해 ‘할머니도 여동생도 안 되면 학생(석이)을 데려가겠다’고 말하지만, 그 말을 뒤집어보면 석이는 결국 우선순위 3위라는 말이다. 3명이 있는데 우선순위가 3위면, 결국 가장 안전한 포지션 아닌가? 석이는 그렇게 안전 속에 있었다.

 

석이는 말한다.
“…아무도 못 데려가! 당신은 나도, 할머니도, 동생도! 아무도 못 데려가!”
그건 석이의 의식이 한 말이다. 대뇌전두엽이 한 말이다. 하지만(—할머니와 여동생 때문에 노는 날에도 집에 틀어박혀서 게임이나 해야 하는 석이의 원망에 이끌려 온—) 괴이는 의식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 석이의 바램이자 무의식이다. 의식은 무의식을 이길 수 없다.

 

“너! 집에 있을 때 안 보이는 데서 아는 목소리가 너 이름 부르면 내가 어쩌라고 그랬어!!”
이 말. 문밖의 목소리와 너무나도 비슷한 할머니의 이 말이 곧 석이의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절묘하게 나타낸 말이라고 생각한다.

 

괴이는 석이의 바램대로 할머니와 여동생 둘 중 하나를 데려가려 했다. 그런데 이때,

여동생은 커튼을 쳤고,
할머니는 커튼을 열었다.

여동생은 괴이를 거절했고, 할머니는 받아들였다.
할머니가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랑하는 손자의 짐을 덜어주었고, 정신이 약한 손녀의 목숨을 지켜주었다.

할머니는 죽음을 받아들였다.(이 부분은 ‘할머니의 온화한 목소리가 감정 없는 다른 목소리와 나지막하게 대화 하는게 들렸다’는 부분에서도 알 수 있다. 할머니는 괴이에게 자신을 내어준 것이다.)

 

그래서 죽기까지 마지막 이틀을 가장 평온하게 보낼 수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죽음이니까 평온하지 않을 리 없다. 오히려 ‘다 끝난 일’이라며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라며 손자를 위로하고 손자의 죄책감을 어루만져준다.

 

석이는 결국 이계의 왕을 무찔렀다.
할머니가 주신 사탕을 먹으며 게임의 끝판왕을 깬 것이다.
게임은 가상현실이다. 가상이 끝을 보았다면, 이제 남은 건 문을 열고 현실로 나아가는 것 뿐이다.

 

그것은 할머니가 석이에게 남긴 값진 선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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