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의 작품 소개는 이렇습니다. ‘진짜 블랙홀 탐사대 이야깁니다.’ 진짜라고 강조하는 걸 보면 가짜인 것 같은데, 선우가 글을 쓰는 이유를 말한 후에는 곧바로 우주선을 배경으로 블랙홀을 맨눈으로 관측합니다. 탐사대를 들어간 계기도 나오고, 다른 대원도 한마디씩 합니다. 왜 굳이 진짜를 붙여서 의심스럽게 하나 싶을 만큼 확실해서 더 의심스럽더라고요.
아슬아슬했지만 잘 풀리나 했더니 귀환은 물 건너 가고, 그럼에도 모두 뜻이 맞아 블랙홀에 진입했을 때, 이 모든 게 사실 시뮬레이션이었다는 게 밝혀집니다. 그런데 대원 중 한 명인 우진이 없고, 우진에 관해 질문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죠. 그가 나오는 꿈을 꿨다기엔 혼자 꾸지 않았고, 가상의 인물이라기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부터 알던 사이입니다. 그러니 이 프로젝트를 추진한 위원회에서 숨기고 있으리라 여겼건만, 이조차도 거짓인 게 밝혀져 진짜 미쳤나 싶어집니다.
정보 삭제 이론이라는 게 흑체도료기술처럼 여기서 나오는 가상의 이론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있더군요. 정보가 기억일 수 있나는 아직도 긴가민가하지만, 기억도 결국 물질을 기반으로 하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블랙홀에 들어가는 순서로 세상에서 잊힌다는 거죠. 그래서 가장 가까웠던 우진의 존재가 사라지면서 실제 탐사는 시뮬레이션이 되고, 다음 사람이 삭제되면서는 아예 탐사가 취소되고, 그렇게 과거로만 가고 그들은 함께 우주선을 탄 우리밖에 기억을 못 하는 줄 알았는데 다른 누군가도 기억한다는 얘기가 나오며 다중 우주 가설도 나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게 위로가 아닌 피로로 다가오는 게 신기했어요. 나와의 싸움은 어디로 도망쳐도 피할 수가 없어설까요?
계속 어려져서 중독 이전으로 돌아가리란 제 기대와 달리 선우는 마지막에 미래로, 그것도 상태가 더 나빠진 미래로 간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 풍경에서 세진도 나오고, 메노도 나오고, 우진과 대장이 아닌 아들과 남편의 이야기도 나오니 1편을 읽으면서 그럼 이게 진짜지 가짜겠어요? 코웃음을 치던 저도 블랙홀에 들어간 것 같았어요. 진짜…? 다시 읽어도 우왕좌왕 헷갈리는데, 세상은 잊고 선우는 잊지 않은 동료의 기억처럼 작품 소개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혹시 작가님도 블랙홀을 탐사하러 가셨나요? 작품 소개가 끊임없이 진짜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블랙홀도, 거기에 다함께 뛰어든 것도, 우주의 섭리와 삶에 대한 경이로움도요.
그러니 곧 사라지더라도, 결국 파멸하더라도, 다른 우주에서 이어질 내 삶은 이보다 덜 고달프도록 정성들여 살아가겠다는 선우의 기대도 분명 진짜겠지요. 아무리 블랙홀이 모든 걸 빨아들이더라도, 미래로 이어지는 희망만큼은 붙잡지 못한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