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리뷰를 씁니다. 이번 리뷰도 목적은 같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통해 저 자신을 반성해 보기 위한 리뷰입니다. 따라서 이 글 자체를 다루는 리뷰가 아닐 수도 있으며, 이 점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작품 리뷰를 기대하셨을 작가님이나 독자님들께 미리 사과 말씀드립니다.
어디까지나 제 리뷰의 테마가 자기반성인 탓으로, 리뷰를 적을 작품이 쉽게 골라지지 않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혐수의 자기반성에 적합한 작품이라 함은 무엇일까요? 막연한 기준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구체적으로 적어보려 했더니 생각의 정돈이 다소 부족하더군요. 어떤 기준으로 자기반성을 하게 되는가? 저에게 있어서는 상당히 흥미로운 문제이고 생각을 구체화해 보고도 싶습니다만, 본론에 도달하기도 전에 서설만 너무 장황해질 것 같아(안 그래도 너무 장황하게 쓰는데…)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아무튼, 저 스스로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신비로운 선정 기준에 의해 이번 작품 리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제가 탐정소설을 무척이나 쓰고 싶다는 점이(그러면서도 변변한 플롯과 트릭을 떠올리지 못해 n년째 쩔쩔매고 있다는 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도 싶습니다.
이슈1. 살인 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딸이 이래도 되나?
「장님의 소망」은 문제 풀이에 집중해 보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라는 것이 첫인상이었습니다. 독자와 작가의 대결이라는 추리소설의 뿌리를 지향하는 느낌이었달까요.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어린 시절 보았던 “추리 퀴즈 모음” 책을 펼친 기분이었습니다. 잠시 향수에도 잠겨보았습니다.
아주 빠르게 사견 현장으로 향하는 탐정 때문이기도 했지만, 특히 사건의 개요를 설명해 주는 인물 때문에 그런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 인물은 의뢰인이자 살인 피해자의 딸인데, 설명이 너무나 차분하고 잘 정돈되어 있어 마치 추리물의 설명 담당 조수 혹은 부하 형사의 사건 개요 브리핑을 연상케 하거든요.
흐음. 추리소설이라 리뷰글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하 내용은 스포일러 방지용으로 묶어두겠습니다.
이 작품에서, 살인사건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이 되도록 범인은 감도 못 잡고 있는 상황에 놓인 딸… 을 재현하려는 의사는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작가와 독자의 추리 대결만을 담백하게 남겨놓겠다는 의지가 느껴졌고, 그래서 추리 퀴즈 책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겠죠.
그래도 소설로서 쓰인 작품인데, 이래도 괜찮은가? 라는 생각은 조금 들었습니다. 이 사건을 전하는 딸과 아버지의 관계라는 것이 있었겠죠. 딸이 아버지의 죽음을 원통해한다면 원통해 하는 대로, 무감정하다면 무감정 한 대로 이유와 드라마가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현실적이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딸에게서 여러 가지 드라마가 가능할 텐데, 이를 살려서 긴장감을 형성하는 것도 가능하겠죠.
가령, 딸은 학자금 마련과 관련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설정이라, 입장만 따지고 본다면 보험금을 노린 친부 살인을 저지른 것 아닌가? 라는 의혹이 생길 법도 했습니다. 작가의 의도만 있었다면 딸을 향한 의혹이 더 짙어지도록 해 놓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물론 딸이 탐정을 고용한 만큼 용의선상에 놓기는 애매하긴 합니다만, 아무튼 독자를 낚아서 정답 맞히기에 실패하도록 한다면, 추리작가의 노림수로서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반대로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딸을 절절하게 묘사하여, “아, 빨리 범인을 잡아야겠어!” 라는 공감대를 형성해 볼 수도 있었겠습니다.
이 작품은 둘 중 어느 쪽도 취하지 않고, 딸은 “설명용 캐릭터”로 못 박아 버리며 담백하게 넘어갔습니다.
다시 또 직설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설명 담당 부하 형사처럼 브리핑하는 피해자의 딸…은 핍진성 측면에서 상당히 어색할 수도 있습니다. 비현실적이고 부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되죠. 등장인물을, 지나칠 정도로, 노골적으로, 이야기 진행을 위한 기능적 장치로만 머물게 했으니까요. 현실 세계에 기능적 장치로 머무르는 인간은 없습니다(픽션에서는 필요악일 때도 있습니다만).
저는 늘 그랬듯 “나라면?”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딸의 비중을 적정하게 유지하면서도, 증언 태도가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딸에게 나름의 성격을 부여하고, 그런 성격을 가진 인물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어떻게 증언할지를 고민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제가 딸에게 이런저런 드라마를 보충해 주는 꼴을 상상하고 있으려니, 아니 어쩌면 이거 부질없는 짓 아닌가? 라는 회의감이 살짝 들더라구요.
작품을 작가와 독자의 순수한 대결로 작성하고 싶다면, 딸이 기능적인 역할만 수행하고 퇴장하더라도 별로 상관 없는 것 아닐까? 가난한 환경에서 대학 갈 결심을 하고 학업을 하는 여성, 그런데 그녀의 아버지는 떠돌이 말티즈를 무단 도축해서 먹어버리는 야만성을 벗어나지 못한 구세대의 인물이다… 라는 이야기를 두툼한 페이지에 걸쳐 풀어낼 계획이 아니라면 말이지… 사건 개요 정도는 설명적으로 풀어 빨리 넘어가도 되는 것 아닌가?
그러니까 어쩌면, 기획 의도에 따라서는 인물이 현실성을 갖추는 것이 그저 독자를 지루하게 하는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을까? 예를 들자면 좀비 장르에서 좀비 사태가 터졌을 때 “으악!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으헝헝!” 하고 패닉에 빠지는 인물(=좀비물이라는 장르가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에서 성립되는 인물)처럼? 1
그렇다면 탐정이 사건 현장으로 향하겠다고 결심하는 시간을 최소한도로 줄이고, 딸의 드라마를 보충하느니 추리 문제를 빨리 제시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더 좋은 판단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은 다른 분들하고 둥글게 둘러앉아 이야기라도 나눠보고 싶은 부분입니다. 좀비 사태를 목격한 인물이 어떻게 당황해야 하는가? 불필요한 드라마를 건너뛰고 독자들이 풀어야 할 추리 문제에 집중하기 위해, 아버지를 잃은 딸이 부하 형사처럼 브리핑을 해도 괜찮은가?
이슈2. 재미있고 매력 있는 탐정을 위하여
아무튼 딸의 브리핑 때문에, 이 작품은 문제 풀이에만 집중하려는구나…. 라고 단정 지을 찰나 뜻밖의 반전이 일어납니다. 이 작품이 캐릭터의 형성에 아주 신경을 쓰지 않는 건 아니라는 점이 어필되거든요.
탐정의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다음과 같이 공개됩니다.
– 탐정의 신체적 특성 공개 : 탐정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점이 드러납니다.
– 탐정의 특이한 말투 공개 : “아, 죽고 싶다”
– 탐정의 배경설정 공개 : 과거에 경찰이었음.
이 점은 제게 꽤나 흥미로운 고민거리를 던져 주었습니다. 탐정의 캐릭터 어필이 등장할 타이밍은 언제가 좋은가? 라는 문제를 떠올려 봤거든요.
반성해 보니 저는 일단 작품이 시작하면 냅다 캐릭터 어필부터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어떤 식으로든).
하지만 이번 작품을 읽고 깨달은 점이 있엇습니다. 때로는 작품에 대한 소개를 먼저 진행하고(「장님의 소망」의 경우에는 추리 문제에 우선 중점을 두고 진행), 캐릭터 이야기는 그다음에 차차 해 나가는 수도 있구나, 하고, 새삼 저의 경직된 자세를 인지했달까요.
또 하나의 이슈는, 탐정 캐릭터의 매력에 관한 고민이었습니다.
추리물, 스릴러에서는 필시 탐정 역할의 주인공이 나오겠습니다만, 다들 아시다시피 이 사람이 꼭 직업적으로 탐정일 필요는 없습니다. 근래 작품에선 오히려 주인공이 탐정이 아니라, 사건에 휘말리고 그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 당사자로 등장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탐정 캐릭터라면 직업 탐정 주인공인 쪽이 더 좋다.. 라는 취향입니다만, “당사자 탐정” 쪽에는 굉장한 장점들이 있습니다.
먼저 주인공이 작중의 문제 상황의 당사자이므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굉장히 곤란해지는 처지입니다. 이 설정은 독자들의 이입과 흥미 유발을 유도하기 좋습니다.
둘째로 캐릭터의 매력도 훨씬 자유롭게 구성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 인물은 의도치 않게 어떤 상황에 굴러 떨어졌을 뿐이므로, 요리사건 학생이건, 귀엽고 소심한 성격이건, 낙담한 귀차니스트건, 어떤 설정이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의뢰받는 탐정”이라면, 마치 정형시처럼 “규격” 같은 것이 생겨버리는 느낌도 있습니다. 워낙 오래된 장르라서 그럴까요?
그 규격이란 무엇인가…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탐정 캐릭터라면 어떤 식으로는 초탈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고, 그게 어떤 식으로든 신비로운, 즉 말하자면, 현시대의 도사님 같은 느낌이죠. 어딘가 미심쩍은데 난제를 해결할 능력을 틀림없이 갖추고 있는, 말하자면 힘숨찐인 겁니다.
『빙과』의 오레키(절전모드 생활이라며 겉보기엔 무성의하고 설렁설렁한 태도를 보이죠), 『체육관의 살인』의 우라조메(오타쿠로서, 오타쿠질에 전념하고 싶고 다른 일은 방해처럼 여깁니다),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수첩』의 시노카와(활동성이 적은 헌책방 주인으로 세속적 세계에서 이탈해 있는 이미지입니다) 등등, 보자면 일상생활을 평범하게 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거나, 누군가의 보조가 없으면 곤란한 사정에 처하기가 십상일 사람들입니다. 탐정-조수 페어의 클리셰를 차용한 TRPG 『둘이서 수사』에서도 괴짜 탐정을 작성하도록 룰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왜 탐정은 구태여 괴짜여야 하는가… 천재형 인물을 향한 선입견이나 클리셰? 분명 그런 것도 있겠습니다만.
본인이 사건에 휘말려 원치 않게 탐정 역할을 맡는 캐릭터라고 하면, 다양한 캐릭터 설정을 활용 가능하고, 상황에 휘말린 주인공이란 데에서 오는 감정이입을 쉬이 노릴 수 있다고 앞서 제 의견을 전달해 드려 보았습니다. 반면에 “의뢰받는 탐정”이라면? 다루어야 하는 사건이 사실상 “남의 일”입니다.
작중의 핵심 사건이 “자기 일”인 “당사자 탐정”과는 대비됩니다. 즉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건을 통해 독자의 이입이나 흥미를 유도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사건에 휘말리는 “당사자 탐정”과는 달리, “의뢰받는 탐정”의 경우 작품의 중심 이야기는 의뢰인의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전달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겪는 일이 아니라, 줄줄 설명되는 사건 개요를 듣게 되는 방식으로 사건을 접하기 때문에 긴장감이 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의뢰받는 탐정” 주인공은 남의 수라장에 발을 담금으로써 이야기에 비로소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사무실(혹은 아지트)에서 노닥거리다가 의뢰인을 맞이하고, 탐정이 이야기에 발을 들이는 건 그때부터입니다. 심지어, 처음 의뢰인이 탐정에게 맡기는 의뢰는 이야기의 중심 소재가 아니라, 탐정이 이야기에 발을 들이게 하는 사소한 발단일 경우도 있습니다(이후 탐정은 양파껍질 벗기기 과정을 진행하며, 서서히 사건의 중심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저는 이런 점이 “의뢰받는 탐정” 캐릭터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만(“의뢰받는 탐정” 캐릭터는, 생판 알지 못하던 사람의 삶에 첨벙 들어가 온갖 인연에 연결되어 버리는 사람입니다), 어쨌든 사건에 당사자성이 적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조치가 필요하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또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명탐정 캐릭터의 매력이 가장 빛나는 순간은 언제일까요? 그것은 역시 추리 해설 부분이겠죠? 마치 묘기처럼 정연한 논리를 보며 입이 떡 벌어지게 해야, 비로소 독자는 탐정 캐릭터의 팬이 됩니다.
이게 왜 문제냐? 추리 해설은 추리물의 특성상 극후반부에 나올 수밖에 없어서입니다. 탐정의 매력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 작품 결말부까지 유예되므로, 극 초반부에 탐정의 매력은 절반도 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제 생각에, 탐정이 조금 미심쩍은 모습으로 묘사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추리 해설 장면을 더욱 빛낼 준비이기도 하면서, “이런 이상한 녀석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까?” 라는 호기심도 자극할 수 있습니다. 추리 해설에 도달하기 전에 미리 탐정을 좋아해 줄 수 있도록 재미있는 캐릭터성을 마련해 두는 것이죠.
이에 덧붙여서, 탐정이 극의 시작 부분에 등장하지 않도록 연출하기도 합니다. 범인의 시점에서 범행 순간을 묘사해 긴장감을 조사하거나, 독자의 아바타 격인 조수 캐릭터의 시점에서 출발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으스스한 미스터리를 먼저 목격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의뢰인이나 조수의 시점에서 시작되고, 이들이 탐정에게 사건을 의뢰함으로써 탐정은 비로소 주인공 포지션에서 활약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상황에 휘말리는 데서 오는 감정이입과 흥미 자극” 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의뢰받는 탐정 주인공”의 약점을 보완하게 됩니다). 그런 다음, 뭔가 미심쩍고 이상한 탐정을 등장시켜,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 호기심을 자아내게 합니다.
탐정이 “과연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미심쩍음을 자아내는 것. 이것은 어쩌면 탐정극의 전반적 분위기를 작성하고, 다른 작품과 차별되는 개성을 구성하는 요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가 바로 이 지점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탐정들이 많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괴짜는 이미 다 세상에 선보이지 않았나 싶거든요.
그렇다고 괴짜 탐정을 추구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 어떤 작품에서는 탐정을 괴짜로 어필하려 너무 애쓴다는 안쓰러움이 발생하기도 하는 듯합니다. 작품의 재미와는 별개로요.
물론 이 부분은 취향의 문제가 걸리는 지점이라, 제가 “이러저러하면 너무 억지 개성이 되니 주의하시오”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작가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무척 어려운 문제라는 것은 틀림없지 않나 싶습니다.
가령 『체육관의 살인』은 작가와 독자의 추리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정말 혀를 내두르며 봤습니다만, 탐정의 성격 어필은 다소 괴짜이기 위한 괴짜…처럼 보였습니다.
『알리바이를 깨드립니다』도 마찬가지였죠. 재미있는 알리바이 트릭들이 가득한 즐거운 작품입니다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었습니다…” 라는 멘트는… 일단 제 취향에는 영 아니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마사토끼 작가에게도 그랬던 것 같더군요).
특정 작품과 작가를 저격하려는 것이 아니라, 짜잔! 하고 탐정을 내밀었을 때 “어? 이거 괜찮은데?” 라는 반응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니 작가는 여기서 골치가 썩게 될 거고요).
길고 긴 변설을 돌아 드디어 「장님의 소망」으로 돌아옵니다.
이 작품의 초반부에서는 ①사건 당사자(범인 혹은 목격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이입을 유도하는 연출도 사용하지 않았고 ②탐정의 괴짜성을 도드라지게 어필하지도 않았습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장님의 소망」은 추리 퀴즈 내듯이 사건의 개요부터 쭉 정리하면서 시작하죠.
물론 탐정의 괴짜성 어필이 도드라지지 않았을 뿐, 약간 울적하고 소극적인, 마치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하는 느낌의 독특한 개성이 넌지시 전달되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워낙 문제 제시에 집중하는 초반 전개에 약간 묻히는 감이 있죠. 그리고 저도 이 작품이 “이야기의 재미나 캐릭터의 매력은 미뤄두고 문제풀이에 집중하려는가 보구나”하는 섣부른 판단을 내리게 되었고요.
그런데 놀랍게도, 피해자 딸의 사건 브리핑이 완료된 시점부터 탐정의 괴짜성 어필이 은근슬쩍 나타납니다.
이 작품의 좋았던 점이 바로 이거였고, 리뷰를 써봐야겠다, 라고 결심하게 된 것도 이 부분 때문이었습니다.
브리핑 이후 탐정이 시각장애인이었음이 드러나는데, 독자로서는 제법 놀라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입견을 활용한 괜찮은 반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죽고 싶다…” 라는 말버릇도, 사실은 시각장애인이라는 반전이 나오기 전에도 언급됩니다만, 이것이 입버릇이라고 진작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맥락상 그런 말을 쓸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요. 오히려 적극적으로 조사 활동을 벌이면서 “죽고 싶다…”라고 연신 중얼거리니 묘한 재미가 생깁니다. 현대 한국인들이 공감할 만한 한탄이라 그런 걸까요?
이 정도 개성 어필이면 탐정의 행보를 궁금해하며 따라가 볼 만하고, 해설 파트의 추리쇼가 펼쳐질 때까지 기대감을 갖고 탐정을 지켜볼 만합니다.
본질적으로 이 작품은 캐릭터 어필이나 드라마틱한 플롯보다는 추리문제 풀이에 비중을 두고 있는 작품입니다. 따라서 캐릭터들이 자신의 개성을 어필하려고 “저요 저요!” 하는 분위기는 거의 없죠. 그런 담백함이 묘하게 매력적이었고, 저에게도 좋은 참고 사례가 되어주는 듯합니다.
저는 이 작품의 실용적 구성에 감명받았고, 이런 측면에서 스스로를 반성해 보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의 실용적 측면이란 ①딸이 현실적인 인물상을 포기하고 추리 문제 브리핑 역만 맡는 것(=불필요한 드라마가 군더더기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 ②문제 제시에 집중하는 지점까지는 탐정의 캐릭터성 어필을 유예하는 것 ③유예한 후에는 본격적으로 캐릭터성을 드러내는 것.
구체적으로 무엇을 반성했느냐고요? 저의 경우는 픽션을 쓸 때 ①어쨌든 어색하지 않게 인물의 모습을 서술하려고 노력하면서도 그것이 군더더기가 될까 봐 노심초사함. ②캐릭터 어필은 해당 캐릭터가 등장한 시점에 해내야 한다면서 어떻게든 뭔가 하려고 꾸역꾸역 씀 ③캐릭터성 어필을 유예하거나 필요 지점마다 분산하지 못하고, 한 번에 다 해내려고 함. ④그 결과 캐릭터 어필이 군더더기가 된 건 아닐까 불안감에 휩싸이며 실제로 군더더기일 확률이 높음….
제가 앞서 우라조메와 토키노의 과도한 캐릭터 어필을 비판하긴 했습니다만, 이들 캐릭터가 제게 불편한 까닭은 싫은 저의 약점을 들추기 때문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부분은 저에게 굉장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작품 진행을 위해 특정 인물이 기능적 역할만 수행하고 퇴장하게 한다던가, 캐릭터 설명을 일단 모호하게 남겨두었다가 나중에 처리하는 것, 이번 장면에서 묘사될 캐릭터 개성에 강약 조절을 하는 것 등등… 저에게는 각오가 필요한 일이고 대체로는 강하게 마음먹지 못하는 편입니다.
이슈 3. 담백하면서도 맛있는 탐정 어필
앞서 탐정의 매력은 추리 해설에서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장님의 소망」은 어땠을까요? 일단 추리파트 자체는 무난했다고 생각합니다. 가능성을 하나하나 제외하며 진행하는 추리 논증 과정은 대체로 무난하다는 인상이지만, 이 작품만의 특출난 점도 있습니다.
작품 초반에 류조령은 한국 경찰은 매우 유능하다, 그러므로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의 활약은 기대할 수 없다, 라는 자조적인 발언을 합니다. 탐정은 경찰이 남긴 찌꺼기를 탐하는 구더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대사는 하드보일드하고 멋지기까지 하죠. 이것을 역으로 사건 해결에 힌트로 삼는 점은, 확실히 기발했습니다.
그냥 기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류조령 특유의 음울하고 의기소침하고, 자기비하적인 인상까지 주는 성격과 맞물려서 탐정의 개성을 더욱 살려주는 효과도 얻고 있습니다.
덧붙여 “경찰의 유능”을 근거로 추리를 해내는 장면은 본격적인 추리 해설 파트가 아니라, 일종의 몸풀기 추리처럼 등장합니다. 슬슬 탐정의 개성이 어필되는 즈음해서 이지요. 이런 구성도 제게는 귀감으로 삼을 만했습니다.
그렇다고 아쉬운 점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닌데, 사실 이런 아쉬운 점도 저에게는 반갑죠.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반성을 해볼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아쉬운 점은, 저에게 있어 류조령의 괴짜성은 잘 받아들여졌는데 우라조메의 괴짜성 어필은 과잉으로 느껴졌는가… 하는 궁금증과도 연관이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빙과』의 오레키, 『체육관의 살인』의 우라조메는 서로 성격이 판이한듯해 보입니다만, 기본적으로 남 일에는 무관심하고 탐정 일을 수행하는 건 별수 없어서 한다- 라는 태도인 점에서는 비슷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레키의 절전모드 설정은 괜찮았지만, 우라조메는 “나 만화 봐야 해서 사건 해결 같은 건 하기 싫어요” 하는 식의 태도가 (반복해서 지적하지만) 과도한 자기 어필이라고 느꼈거든요. 오레키와 우라조메 사이에 왜 차이가 생겼을까 생각해봤는데, 물론 이유야 다양하게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오레키에게는 치탄다가 있어서 그랬던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매력적인 탐정은 너무 많고, 시도해 볼 만한 괴짜 캐릭터는 이미 나올 대로 다 나온 것 같습니다. 탐정 캐릭터를 그 자체로 특출난 괴짜로 만들려면 상당히 자극적으로 밀어붙여야 할 것이고, 여기에 한계는 명백하죠.
만약 오레키 곁에 치탄다 같은 캐릭터가 없고, 그에게 절전모드 설정만 남겨두었다면 어땠을까요? 그의 캐릭터 어필을 절전모드 설정으로만 밀고 나가야 했다면 오레키도 우라조메처럼 자기어필이 과도해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의욕 제로 절전모드 소년 곁에 씩씩한데 아방한 미소녀가 있다”라고 하면, 절전모드 요소를 너무 과도하게 어필하지 않고도 오레키는 인상적인 캐릭터가 됩니다(이는 트위터리안 냥말가게님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본작의 주인공 류조령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류조령은 설정상 시각장애인이고, 시각장애인이 탐정으로 활약하기 위해 조수의 보조가 필요합니다. 시각장애인 설정 덕분에 탐정 곁에 필수적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조수의 존재가 부각되고, 이것 자체로 탐정의 개성이 형성되기 때문에 틈틈이 “죽고 싶다”고 자조하는 것 이외에 더 과도하게 개성을 밀어붙이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캐릭터성이 생성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있습니다. 탐정의 활약에서 시각장애인이라는 특성을 더 부각시켜 개성으로 승화시키려면, 조수에게 역할이 좀 더 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2 장애인들의 생활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는 기예처럼 보이는 이들의 콤비플레이가, 실상 류조령과 조수에게는 일상에 불과하다고 한다면, 이를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멋드러진 연대로 표현해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저는 조수 캐릭터가 류조령의 조사와 추리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 즉, 류조령이 추리를 전개하는 데에 있어 긴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도구”역할이었다면 꽤 멋졌을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거든요.
여기에 대해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나열하는 것은 작가님께 감놔라 배놔라 참견하는 일이 될 것이므로 생략합니다.
다만 이 지적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 조수는 없어도 되는 인물에 불과했던 것 같습니다. 조수가 극중에서 뭔가 한 것이 있다면 “류조령이 사실은 시각장애인이다”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해서 의뢰인과 독자를 놀래켜주는 것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작품 결말부에서, 탐정에 대해 잘 아는 만큼 그의 심리적 약점(우울감과 초조감을 견디지 못하는)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기능을 하죠. 이 음울한 결말부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정말 멋드러진 여운을 만들어주고, 문제 풀이에 집중하는 작품이었음에도 캐릭터의 후속 활약을 기대하게 해주는 훌륭한 작품구성을 완성해준다고 여겼거든요. 그래서 저는 조수가 탐정의 조사에서 비중있게, 확실하게 활약하는 인물인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수가 실제 작품에서 차지하는 정도의 역할 비중이라면, 그럴 바에야 차라리 조수 역할을 의뢰인에게 맡겨버리는 편이 나았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류조령이 의뢰인에게 보조를 요청하는 장면을 넣으면 “앗! 탐정님 시각장애인이셨어요?” 라고, 자연스럽게 시각장애인임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작중에서는 조수가 “장님이 무슨 눈을 뜬다고..” 라는 빈정거리는 농담을 하여 드러났죠.
오히려 조수를 빼버리고 의뢰인에게 조수 역할을 맡겼다면, 류조령과의 협력을 통해 인간관계가 형성되고, 이 과정에서 사건 브리핑 기능에 불과했던 의뢰인에게도 나름 생생한 캐릭터성을 부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음…결국 작가님께 감놔라 배놔라 하고 만 것 같습니다…죽고 싶다…
하지만 덕질이란 것에는 어쩔 수 없는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류조령을 좋아하게 된 것 같고, 뇌내에서 이래저래 망상하며 류조령 덕질을 하게 되는군요.
잘 만들어진 캐릭터란, 이렇듯 다각도로 살펴보며 (2차창작이나 새로운 창작에 영향을 줄) 영감을 줄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닐까요.
우선 추리 문제로 빠르게 넘어가고, 문제풀이에 본격적으로 돌입할 때에 탐정의 개성을 드러낸 다음, 캐릭터를 확실히 풀어내면서 여운을 형성하는 작품 구성은, 저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어주었습니다.
덕분에, 작품 구조에 있어 경직된 매뉴얼이 생겨버렸다는 자각을 하고 반성해볼 기회를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