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을 종종 맞닥뜨리곤 한다. 그러한 일들은 한 순간의 선택으로 벌어지기도 하고 혹은 세월이 점진적으로 쌓이다 어느 순간 그렇게 되기도 한다.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에 등장하는 준호네 가족들은 저마다 최소 한가지 이상씩,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찬우는 ‘그것’과의 내기를, 지연은 찬우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것과 선택을 미루는 것을, 준호는 가정에 무심한 것을 각각 선택했다. 지연과 춘화의 다툼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처음에는 단순한 층간소음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 같았으나, 읽을수록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층간소음, 아동학대, 사이비종교, 인신공양 등 굵직굵직한 소재가 얼기설기 얽혀 극중 이야기를 흡입력있게 이끌어간다. 소재 하나하나가 작품 하나당 메인 주제로 활약할 수 있는만큼 자칫 잘못하면 이야기가 중구난방이 될 수도 있는데, 작가님이 중심을 잘 잡고 스토리를 이끌어나가 그런 일은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의 중심은 제목처럼 돌이킬 수 없는 일과 관련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주인공들에게 중간중간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고 보았다. 준호가 춘화와 지연의 싸움을 보고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었더라면, 지연이 자신의 상태를 자각했을 때 보다 적극적으로 주변에 도움을 구했더라면 어쩌면 결말과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준호는 피곤하다는 한마디로 모든 일에 무관심했고, 지연은 지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했다. 그들의 선택은 하나하나 쌓여가다 시간이 지나면서 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변했다. 업보라면 업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들, 특히 준호와 지연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분명 바뀔 계기가 있었다. 특히 춘화나 찬우가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요청했을 때, 준호가 좀더 신경써서 그들을 바라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을 부양한다는 한마디로 회사일에만 매달리고 정작 그 가족은 내팽개친 준호의 모습이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지. 준호의 그런 무심한 태도는 그래도 적응해서 살아보겠다고 다짐한 지연을 낭떠러지로 내모는 처사가 아니었을까. 물론 지연의 행동이 정당했다고 옹호하는 것은 아니나, 한번쯤 해볼 수 있는 생각이라 본다.
이러나저러나 부모에게 버림받은 채 사이비 종교가 모시는 ‘그것’의 제물이 된 찬우만 안됐을 뿐이다. 마지막까지 준호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한 찬우를 보면 아이에게 부모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제물이 되어버린 찬우가 갈 곳은 없을 것이라 보여지지만 그래도 좋은 곳으로 갔으면 하고 바란다.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버림받은 아이란 얼마나 안타까운 존재인지.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는 요소들과 오컬트(사이비 종교와 ‘그것’이 등장하는 관계로 오컬트라 칭했다)적 요소가 재밌게 어우러져 앉은 자리에서 후루룩 읽을 수 있어 즐거운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