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컬트 광인의 <현대 마녀학 입문>에 대한 주석 의뢰(감상)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현대 마녀학 입문 (작가: 비티,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23년 7월, 조회 507

이 리뷰는 2023년 7월 29일 연재분인 제11장 약초학 3 (작성예정)까지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대에 이르면서, 오컬트 세계에도 크나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흐름이라고 하면 크게 두 가지. 카오스와 네오패가니즘, 그리고 솔리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카오스는 논리입니다. “정해진 것은 없다.”라는 논리에 따라 기존의 경직된 마법 체계, 문화권에 따라 달라지는 주술 체계 등을 넘나들며 그것들을 효율적으로 혼합하고 때로는 즉흥적이고 개인화된 논리에 따라 마법을 이어 나가는 흐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르게는 절충주의로 나타납니다. 무작정 섞고 체계를 무시한다기보다는, 여러 체계를 적절한 수준에서 동시에 운용하는 것에 가깝지요.

네오패가니즘은 사조입니다. 네오패가니즘을 직역하자면 근현대에 이르러 재조명된 새로운 패가니즘, 즉 ” 새로운 이교도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 및 중세 시대에 교회의 확장으로 인해 사라진 유럽 각 지역의 민속 풍습, 신화, 그에 기반한 다양한 전통 주술과 마법을 되살리고자 하는 움직임이 크게 하나일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파괴되거나 왜곡된 각 세계의 민속 풍습, 신화, 전통 주술이나 마법 등을 재현하고자 하는 움직임입니다. 네오패가니즘으로 규정할 수 있는 하위 사조는 매우 다양하여, 위에서 소개한 절충주의는 물론 경직된 재건주의의 양상 또한 포함됩니다.

솔리터리는 발현 양상입니다. 특정한 코번(마녀회)이나 마법 단체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각자 스스로 체계를 학습하고 수행함으로써 마법이나 주술 등을 행하는 움직임이지요. 물론 솔리터리를 추구하는 사람들끼리도 집합을 이룹니다. 그러나 기존의 황금여명회라든, 동방성당기사단, 프리메이슨처럼 특정한 목적을 따르거나 체계를 수행하는 단체를 구성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점조직 형태의 움직임에 가깝습니다.

 

리뷰의 도입부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저 역시 이러한 현대 오컬트 세계에 관심이 많은 오컬트 광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점에서 비티님의 <현대 마녀학 입문>은 꽤 흥미로운 소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소설이 아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현대 마녀학 입문>의 완성본을 손에 넣은 누군가가 이를 진지하게 믿는다면 그것 역시 하나의 마법 체계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카오스 논리라는 게 원래 그렇습니다.

 

 

흥미롭게 읽었던 파트 몇 가지를 소개하며 이 서적의 오컬트적 실용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제1장 마녀에서 이야기해볼만한 부분은 마녀를 정령 신앙으로 정의했다는 점입니다. 중세 교회의 영향으로 인해 악마 숭배자라는 이미지가 굳어지긴 했으나, 실제로 마녀들은 각 문화권의 신들과 다양한 정령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닌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존재로 보기 때문입니다. 정령이라는 이름을 빌리고 있지만, 사실 주변의 동식물, 그리고 자연현상 전체가 하나의 “이웃”이자 “형제자매”, 때로는 “스승”이나 “부모”로도 불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마녀학의 체계화와 현대마녀학의 태동 역시 위에서 소개한 카오스 논리, 네오패가니즘 사조, 솔리터리 양상과 궤를 같이합니다. 특히 아마나르의 “파싸즈는 무의미해질 것이다”라는 예견은 여러모로 현대 오컬트 세계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첫째, 마녀들의 정체성이 통합되고 수많은 마녀술이 결합하고 있는 것은 카오스 논리와 절충주의적 네오패가니즘과 맥락이 유사합니다. 둘째, 본래 나모 하우항이 없었으나 스스로를 마녀로 규정하는 현대 마녀는 전통적인 조상이나 단체의 내력 없이 스스로를 오컬트에 내던지는 솔리터리 양상과 비슷합니다.

 

제5장 주술과 마녀술에서는 제가 파악한 바와 같이, 마녀의 영창이 개인의 감흥과 의도에 따라 원형의 변형을 허락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마녀나 마법사는 관점에 따라 신의 대리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신은 유일신 신앙이 아니라 다신교, 혹은 자연숭배의 관점에서 일컫는 신입니다. 신의 힘을 후광으로 둔 마법사는 신에 대한 존중, 본 작품의 언어를 따르자면 정령에 대한 존중이 있는 한 얼마든지 실제로 존재했던 설화나 원형을 자신에게 재현하거나 적절히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10장 빗자루 비행술에서는 환각이 발생할 것만 같은 수준으로 고난도의 비행을 요구하는 면허 시험에서 나체 상태에서 신체와 정신을 트랜스 상태로 만드는 스카이글라드 리추얼과학적으로 꽤나 신빙성 있는 환각 물질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러한 비행술이 미풍양속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마녀들의 빗자루 비행술을 재현하는 네오패가니즘적 움직임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제11장 약초학에서는 상응이론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삼거리 비보호 좌회전 표지판의 요소를 하나하나 따져보면 실제로 투명마법의 재료로 쓸 법하다는 인상이 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삼거리’라는 요소는 그리스 신화에서 마법의 여신이자 메데이아나 키르케처럼 이름난 마녀들의 신앙 대상인 헤카테의 상징입니다. 헤카테는 하늘, 바다, 지하라는 세 통치권 모두에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곱씹어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한 부분은 ‘비보호 좌회전’에 대한 상응 체계 분석을 끝낸 뒤였습니다. 다시 보니 그것만큼 투명 포션이 가지고 있는 속성을 대변하는 것이 없더군요. 보호받기 어려운 상황을 의도적으로 만들고 좌회전, 즉 좌도의 길을 걷겠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감과 은밀함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좌도라고 하면 생각나는 악마에 대한 서적 중 유명한 게티아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바알의 권능이 바로 투명화 마법입니다.

마지막으로 ‘표지판’은 땅에 세워진 것이라는 점에서 식물이라는 개념 자체를 대체할 수 있습니다. 콘크리트로 된 뿌리와 쇠 파이프로 된 줄기, 그리고 표지판 부분은 잎과 꽃인 셈이지요.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삼거리 비보호 좌회전 표지판은 참으로 적절한 투명 포션 재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상응이론의 활용은 콜라를 만드는 장면에서도 이어집니다.

 

제12장 룬마녀술은 실제로 현대에도 통용되는 룬 점이나 바인딩 룬 마법에 대한 개론서를 읽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특히 시대나 지역에 따라 다르게 파생된 룬문자의 체계화 시도, 룬의 다양한 결합방식과 각 결합방식에 따른 효과를 수치화하려는 시도는 그 공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다면 실제 바인딩 룬 술자들에게 시연을 부탁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제13장 가구술과 저주술은 약초학과는 또 다른 상응이론 활용 가능성을 시험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위에서 그러하듯, 아래에서도 그러하다”라는 격언은 단순히 신의 대리인으로서 마법을 행하는 마법사, 정령과 교감하여 자연현상을 재현하는 마녀라는 전통적인 이미지를 포함하면서도 더욱 확장된 시각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를테면 자신이 다스리는 집이라는 공간과 그 안의 부속품인 각종 가구를 신이 다스리는 우주와 그 구성품으로 치환할 수 있고, 인공물인 가구에 대한 개인적 애착과 가구를 작동시키는 본인의 행위를 마법을 통해 재현한다는 점에서 상응이론을 활용한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장 미지학에 대해서는 마법의 여러 금기이기도 한 ██나 ██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직접적인 거론은 힘듭니다. 하지만 제12장 룬마녀술 5에서 등장한 하글라즈 결합룬의 언급에서 언뜻 드러나는 ██와 같은 존재에 대비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마녀술을 다루는 사람들은 미지학에 대해 이론적으로나마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한 점에서 저자는 정신 오염이 발생하지 않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이 내용을 집필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마녀들의 공통적인 신앙 대상인 정령들은, 사실 현실 세계에 물질을 얻고 현현할 때에나 교감 내지는 명령이 가능한 존재이지, 실제로는 █을 비롯한 █나 다름없는 존재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제 마법사들도 함부로 이러한 존재들을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형태로 접하고 몸과 정신이, 시공을 초월하여 망가지기도 합니다.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세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는 일상 부분에 대해서도 짧게나마 이야기를 해봐야겠지요. 이론의 실제 활용 혹은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담겨 있어서 사실 이론적인 게 어려우신 분들은 스크롤을 조금 내리고 일상 파트에 집중하셔도 크게 무리는 없으실 것으로 보입니다. 아니면 일상 부분을 먼저 읽고 이론 내용을 읽으시면 뭔가 감이 오는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침대였던 레나가 등장함에 따라 이야기가 꽤 초보자 친화적인 이론의 실제 예시로 변한 것 같아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봅니다.

또한, 계속해서 책을 집필해 감에 따라 미지학에 의한? 류샤의 변화 역시 소소한 즐거움으로서 눈여겨볼 만하다고 봅니다. 이러한 변화는 사실 레나가 침대에서 사람으로 변하기 전부터 단서가 있었는데, 레나의 등장 이후 좀 더 심해졌지요. 특히 마술쇼를 보고 온 다음이라거나, 프랑스계 한국인 친구와의 대화 후 느끼는 혼란스러움은 류샤가 앞으로는 또 어떻게 될지 염려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기대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소피, 루나, 카린느 등 다양한 방면에서 어딘가 나사가 나간 것 같은 멋진 마녀 친구들과의 일상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앞으로도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기대됩니다.

 

 

이야기 자체보다는 이론적인 부분에 주석을 달고 해석하는 데에 집중한 리뷰이긴 하지만, 그만큼 저는 진심으로 과몰입해서 읽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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