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다현은 미술관의 3년차 학예사다. ‘살아 있는 사람보다 죽은 사람을 더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로 역사 속 인물들의 자취를 쫓는 것을 좋아하고, 그래서 결국 학예사가 되었다. 죽은 이를 사랑하는 다현이 뱀파이어 로맨스의 주인공이 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뱀파이어란 흔히 ‘언데드’로 묶이는, 한 번 죽었던 존재이니까.
다른 주인공 하진은 뱀파이어다. 21세기에 가장 유명한 뱀파이어 로맨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유행 이후, 뱀파이어가 특정한 사람의 피에 더욱 끌림을 느끼다가 결국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대중적인 스토리가 되었다. 하진도 뱀파이어로서 다현에게서 달콤한 향을 느끼고, 우여곡절 끝에 다현을 사랑해버리고 만다.
이 로맨스의 숨은 주인공은 일제 강점기의 화가 민완선이다. 살아서는 하진의 연인으로 사랑받고, 죽어서는 역사에 남은 예술가로 학예사 다현의 사랑을 받는 이 인물에게 얽힌 비밀을 풀어나가는 것이 ‘사랑해, 송곳니’의 메인 플롯이다. 다만 이 플롯에 로맨스뿐만 아니라 ‘스릴러’라는 키워드가 붙은 것은, 하진과 민완선의 사랑이 유혈사태로 끝났다는 신문 기사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유혈이 낭자한 현장에서 두 사람이 모두 사라져 행방불명된 것이다. 하진은 뱀파이어가 되었을지도 모를 옛 연인을 추적하기 위해, 다현은 미스테리로 남은 화가의 행적을 더듬기 위해 민완선이 남긴 마지막 그림인 ‘만월과 백자’ 연작의 네 번째 작품 앞에서 모인다.
수명이 무한한 자와 유한한 자의 사랑에도 끝이 있기 마련이다. 생의 속도가 달라 빚어지는 갈등으로 갈라설 것인지, 혹은 한 쪽의 수명을 줄이거나, 다른 쪽의 수명을 늘리거나, 끝내 한 쪽의 죽음으로 마침표를 찍을 것인지. 하진은 살기 위해 뱀파이어의 길을 택했지만 연인에게는 같은 운명을 주고 싶지 않았고, 뱀파이어의 연인은 같은 뱀파이어가 되어서라도 영원히 함께 하기를 바랐다. 그렇게 하진은 완선을 잃었고, 백여 년 뒤 다시 찾아온 사랑 앞에서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 몸부림친다. 그 결말을 보고 뻔한 해피엔딩이라 말할지, 신선한 클리셰 파괴라고 말할지는 독자의 몫이다. 하지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에필로그까지 아주 만족스러운 엔딩이었다.
아슬아슬하고 매혹적인 분위기의 뱀파이어 로맨스릴러를 만나게 되어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