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및 시신, 동물 학대, 생물의 내장과 잔인한 비유가 포함된 리뷰입니다. 열람 시 주의해 주세요.
글 소개는 주인공인 염지아의 물리적인 설명밖에 없고, 시작하자마자 지아는 다른 사람의 손등을 연필로 뚫어 버리곤 다짜고짜 혜수를 욕합니다. 저는 영문도 모른 채 적나라하고 악의에 가득 찬 것 같은 묘사에 몇 번이고 얻어맞는 기분이었어요.
인간은 원래 뼈에 달라붙은 살덩입니다. 그 사이에 근육도 내장도 지방도 있고, 또 뇌도 있어서 이 모든 걸 모아 한 사람, 지아의 경우엔 두 사람을 이루죠. 지저분한 게 맞아요. 특히 스스로 씻거나 더러움을 분리할 수 없다면 더더욱이요. 매일 먹고 마셔야 하는데 그걸 소화해서 세상에 내놓는 건 찌꺼기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오물이니까요.
그렇지만 작품에서도 굳이 이렇게까지 묘사해야 할까 싶을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육체적인 것도 있지만, 정신적으로도 제 코앞에다 갓 도살한 가축의 내장을 들이대는 것 같았어요. 물론 모든 글이 친절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지아의 인생은 꽃밭이 아니고 화창한 봄날도 아닙니다. 익사체가 나온 저수지의 어린날 이후로,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폭력은 지아의 인생에서 그친 날이 없죠. 심지어 자신과 분리 불가능한 존재까지 악의 화신처럼 괴롭혀대요.
초반부에 나오는 지아의 일대기는 읽는 저도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런 과거가 있어서 지아가 더는 견디지 못하고 무려 19년동안 의식을 잃고 혜수로 지낸 거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꼼짝없이 묶여서 괴롭힘당하는 개를 유리벽 너머로 보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요.
그런 부분을 넘어야 나오는, 지아와 병준이 묵진에 내려와서 그간 혜수의 행적을 되짚는 이야기는 정말 흥미로웠습니다. 전혀 관련없을 것 같은 단어와 사람이 이어지고, 지금도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지아를 혜수로 착각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단지 사악한 반쪽으로만 여겨지던 혜수의 또다른 모습도 알아가면서 끝내 결말에 이르죠. 재채기 한 번, 총성 한 번이 어디까지 왔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로 인해 고통받았는지를 세어 보면 아득하기까지 합니다.
이중인격은 해리성 정체성 장애라는 정신질환으로, 다른 인격은 몸 밖의 삶이 있는 타인이 아닌 분리된 자신입니다. 사람은 하나의 원자로만 이루어진 분자가 아니기에 굉장히 복잡하고 다면적이죠. 그러니 혜수는 사실 지아의 다른 일면입니다.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했어요. 시대 배경상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아도, 아이가 고통받는 작품에서는 다정한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그 사람이 제대로 알았더라면 하고 바라게 되네요.
묵진에서 있었던 일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야기도 여기서 끝납니다. 거울을 보며 시작하고, 거울을 보며 끝나죠.
문득, 저는 어떤 존재인지 궁금해지는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