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나 산뜻한 악마라니, 자칫하면 계약하겠는데?!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사탄실직 (작가: Mik,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4월, 조회 47

“실직했습니다”라는 다소 뜨악한 대사로 시작하는 이 소설 <사탄실직>.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사탄이라 불리는 ‘악마’ 가빈이 구조조정으로 해고될 위기에서 인간 ‘강을현’에게 찾아온 걸로 시작된다. 커뮤니티나 각종 댓글에서 ‘사탄실직’을 유행어처럼 많이 말하고 다니던 시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렇게 소설화된 것을 보니 신선했고 내용도 꽤 탄탄했다.

 

요지는 이렇다. 인마물산 제 46부서 과장인 악마 가빈은 본인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피할 수 없는 계약을 통해 사람의 영혼을 빼앗고, 정갈한 영혼을 타락시키고’ 그런 일을 하면서 인간의 ‘사악’ 정도를 높이는 업을 하는 자들이다. 더 많은 인간이 사악함에 노출될 수록 입지가 돈독해지는 게 바로 악마들이 근무하는 회사였으나, 최근에는 인간의 ‘악의’가 악마를 넘어서, 100명의 악마가 있어도 한 명의 인간을 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 버린 거다. 즉, 자동화 시스템으로 돌아가도 될 법한 상황에서 각종 회사에서는 구조조정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가빈도 구조조정 대상자가 됐다. 엄밀히 말하자면 ‘실직한’ 상태가 아니라 ‘실직 위기’, ‘조건부 실직’ 정도라고 해야할까.

 

인간의 악의, 인간이 만들어낸 사악이라는 건 악마 세계에서 통제할 수 없고 그게 양질이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악마 가빈을 비롯한 악마들이 인간계로 내려온 이유였다. 양질의 악의를 퍼트리는 인간을 찾아, 그 인간과의 계약을 통하여 질 좋은 ‘악의’를 꾸준히 다수의 사람에게 내뿜는 것을 목표로 하며, 악마들이 주목하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SNS! SNS 만큼 인간의 감정이 요동치는 공간도 없으니 말이다. 즉, 악마 가빈이 인간 강을현을 찾아온 이유는 단순하다. 강을현이 운영하는 SNS가 사람들의 감정을 분노 혹은 악의로 요동치게 만들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간단하게만 봐도 트렌디하다. 구조조정 위기에 처한 사탄이 인간과 계약하고자 한다. 다름 아닌, 그 인간의 SNS가 인간 세상에 악의를 퍼트리기 최적의 환경이어서다. 더구나 강을현이 운영하는 SNS가 여기서는 트위터로 이야기되지만 나는 인스타그램에서 그런 유형의 것들을 많이 보았다. 네이트 판이나 각종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고민썰, 사이다썰을 단순하게 캡처하여 올리는 계정 말이다. 저작권이나 그 글쓴 사람의 정보 보호에는 관심 없이 조회수와 좋아요를 노리는 계정의 댓글에는 꼭 유저들간의 싸움이 일어나곤 했다. 사실 SNS를 사탄이 눈 여겨보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성별간의, 지역간의, 계층간의, 연령간의 갈등이 끝도 없이 벌어지고 심지어는 난독증이 있는 사람들이 싸움마저 붙이는 공간이니까. 어째서 글을 다 읽지 않고, 심지어 댓글도 읽지 않고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늘어놓는지 그런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본 일도 있었다. 역시, SNS여야 겠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 였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3가지 정도가 있다.

 

첫째, 악마들에겐 왜 인간의 ‘사악함’이 필요한가. 인간계를 닮은 모습으로 세팅되어 회사를 다니는 악마들은 흥미로웠는데, 어째서 악의가 가득한 인간을 찾아서 계약하고 따박따박 돈을 넣어줘야 하는지는 설득되지 않았다. 돈이라는 건 정말 벌기 어려운 종류의 것인데… 고민썰을 복붙하는 것 말고 좀 더 확장했다면 어떨까. 이를 테면 각종 커뮤니티 활동이나 댓글 활동 같은 거? 난독증이 있는 척하면서 싸움의 붙이는 종류의 것도 있을 것이고 싸움은 다 붙여놓고 현피 뜨자고 난리칠 때 자기혼자만 빠지는 케이스도 있을 테다. 거기다 ‘양질의 악의’를 받는 것이 중요해서 인간과 계약을 한다는데, 그게 왜 중요한지 나와 있어야 조금 더 몰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둘째, 악마적인 사건이라기엔 빌드업이 약했다. 스포를 막기 위하여 결정적인 사건은 말하지 않겠지만, 주인공이 행한 일의 결과로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있다는 모호한 부분이 이 소설에선 매력도가 떨어졌다. 순하디 순하다고 생각했던 주인공의 혈육이 살인사건을 저질렀다면, 그 혈육에게 어떤 일이 있고 어떠한 사고 과정을 거치게 되었는지, 그때 주인공의 말이나 행동, SNS가 위력을 발휘했는지 보여줬어야 하는 게 아닐까. 즉, 주인공의 악의가 초래한 걸로 추측되는 그 사건과 관련하여 서브텍스트가 좀 더 깔려 있다면 임팩트가 있었을 거란 생각에 아쉬웠다.

 

셋째, 주인공이 별로 잃는 게 없다. 금기를 건드렸는데 살인자가 된 것은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의 동생이다. 돈을 벌기 위하여 악의적인 선택을 계속 해야하는 게 주인공이 받은 벌이라고 하기에는 원래도 계속 하던 행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주인공은 원래도 타인의 불행을 퍼오는 SNS 계정을 운영했고, 그 대가로 돈이 추가됐지만 무언가 많이 달라지진 않았다. 지금 잃은 것도 ‘잃은 거’긴 하겠지만, 나는 악마와의 계약을 통하여 기존에 살던 세상 그대로에서 잃을 것보다 더 큰 걸 잃길 바란다. 어쩌면 앞의 내용과 연결되는 말이긴 한데 그 혈육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주인공과의 감정선이 잘 보이지 않아서 이렇게 생각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명백하게 ‘잃어야 하고’ 그 사건은 ‘뜨악스러울 만큼 내/외면적으로 잔혹해야 한다’라는 게 나의 니즈다. 다른 사람은 다를지도 모르겠다.

 

사탄실직이라는 단어에 충실하면서도 SNS, 악마의 세계관을 재치 있게 그려낸 소설, 트렌디하고 흥미로웠다. 하지만 너무나 라이트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아쉬웠다. 개인 취향일지도 모르겠지만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조금 더 휘몰아칠 수도 있었을 거 같다. 주인공에게 좀 더 큰 딜레마를 주고, 선택을 하게끔 유도했다면, 마지막의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있기 이전에 주인공이 좀 더 갈등하고 스스로 괴로워하는 장면이 좀 더 있었다면 나는 더 저릿하고 복잡한 마음으로 이 소설을 오래도록 곱씹어보았을 거 같다. 지금도 좋지만, 조금 더 좋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말이 길어졌다. 담백한 문장과 빠른 전개, 현재에서 진행되는 사건 위주의 서사가 매력적이었던 이 소설! 재밌고 좋은 면이 많기에 아쉬운 점도 생기는 게 아닐까. 내용이 궁금하다면 가볍게 스르륵 읽히는 소설이니 지금 바로 읽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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