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질수록 좁아지는 세계 공모(감상) 공모채택

대상작품: 귀납(歸納) (작가: 권선율, 작품정보)
리뷰어: 소금달, 23년 3월, 조회 27

소설은 그 목적이 사회 고발적이거나 계몽적인 것이 전혀 아닐지라도 어느 정도는 그 시대 사회상이 묻어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배경에서 드러나는 것들은 물론이요 시공 배경이 현재가 아닐지라도 쓰는 사람에게 베어있는 가치관과 현대적 사고방식이 글에 드러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면에서 이 이야기는 많은 현실들을 떠올리게 한다. 현대에서 가장 기묘한 권력 관계중 하나인 ‘지도교수-대학원생’의 관계는, 그 설정만으로도 인분교수나 스캔노예, 사제 폭탄테러범을 연상시킨다. 초반 등장하는 교수의 질책과 그것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나’의 태도는 이러한 현실세계의 몇몇 사건과 연결되고 그에 따라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점점 기묘한 불안감을 형성해간다.

대학원생이 된다는 것은 그런 것일 것이다. 남들은 관심도 없고 쉽게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것을 고도로 전문적으로 파고드는 것.

그 세상은 너무나도 좁고 깊어서 사람들이 수평으로 설 자리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수직적으로 쌓이고 위에서 끌어주지 않으면 위로 나아갈 수가 없다. 그리고 좁디 좁은 세상을 구성하는 그 문제들에 푹 빠져 다른 것들은 잊어간다. 많은 것을 잊어간다. 문제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도, 내 아래 서 있는 이가 사람이라는 것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그러므로 주인공이 마지막에 논문을 걱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그는 여전히 그 좁은 곳 아래에 있으므로. 그가 보는 세상은, 밖의 우리와는 꽤나 다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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