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아먹는 우물, 사람 홀리는 이야기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우물 (작가: 지언, 작품정보)
리뷰어: 소금달, 23년 3월, 조회 50

무속은 조선시대부터 유교에 밀려 홀대 받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무시 받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일 것이다. 민간신앙에서 미신으로 굴러떨어져 천대받기 시작한 무속은 오늘날에는 드러내놓고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 영향력이 작아지고 말았다.

그러나 수면위로 떠올려 믿지 않을 뿐, 낡은 빌라촌 골목이나 단독주택가 등을 돌다보면 비교적 쉽게 무당집을 찾을 수 있다. 사는 곳이 초가에서 빌라로 바뀌었을뿐, 집 한켠을 신당으로 꾸미고 신을 모시며 점을 치고 굿을 하는 무당들은 여전히 주변에 살아 숨쉬고 있다.

이야기는 그런 세습무 집안에서 태어난 사내를 주인공으로 한다. (사실, 매우 중성적인 이름탓에 작품의 중반이 넘도록 여자인줄 알았다..;;) 언젠간 만신인 할머니를 따라 무당이 될 운명인 그는 태어날 때 부터 그릇이 남달랐다. 결국 흉가 체험이나 귀신 체험 따위에서 만난 웬만한 잡귀에겐 눈하나 깜짝하지 않을 담력을 지닌 대학생이 된 그는, 학부 지도교수를 따라 사람 잡아먹는다는 우물 조사에 따라나서게 된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강한 기운을 느낀 주인공은 감당할 수 없는 사건을 잇달아 맞닥뜨리고, 아직 신조차 받지 못한 몸으로 그 재난을 막아보고자 고군분투한다.

글은 매우 매끄러워 술술 익힌다. 괄괄하고 담대한 성격으로 캐릭터성을 확실히 갖춘 주인공부터 비굴함이 인상적인 지도교수, 특유의 사투리로 존재감이 확실한 만신 할머니 등 다양한 인물들이 생생하다.

또, 무속인들이 쓰는 다양한 용어와 과정들을 능수능란하게 늘어놓음으로써 사실성과 현실성을 더한다. 거기에 후반까지도 누구편인지 알 수 없는 마을 무당 및 신의 존재는 영화 ‘곡성’을 떠올리게 한다. 이 사람을 믿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이 신을 믿어야 하나 저 신을 믿어야 하나.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을 따라 읽는 사람의 아찔함도 배가 된다.

이야기 흐름 또한 치밀하게 잘 짜여 있어서, 초반에 깔아두었던 복선과 떡밥들은 후반에 차근차근 회수된다. 진퇴양난의 순간에 떠올린 묘수, 그것을 실행시키는 방법, 주인공의 이름, 신들의 외양 묘사까지 작가가 서술한 것 중에 쓸모없거나 허투른 것은 없다. 그야말로 치밀한 추리소설 식 전개라 감탄이 절로 난다. 거기에 인도적이고 감동적인 마무리까지 읽고 나면 제대로 된 정찬이라도 대접받은 마냥 만족스럽다.

작가는 이제는 홀대받는 무속을 이야기 전면에 끌고 나왔다. 읽기도 전에 허황된 겁주기로 굿을 유도해 돈이나 뜯는 사기꾼 무당에 대한 편견이 만연한 시절에 상당히 용감한 결정이 아닌가 했으나, 그건 그야말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법한 식상한 소재가 아닌가 싶은 사람 잡아먹는 우물 이야기로 서문을 열더니, 이어지는 사건을 통해 순식간에 추리소설 적 분위기를 풍기다가, 무당과 신들로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마침내 이 모든 것들을 아귀가 딱딱 맞는 결말로 훌륭하게 마무리 짓는다. 서서히 짙어지는 분위기와 긴장감이 보통이 아니다.

그 탁월한 솜씨에 나는 ‘우물’이 아니라 ‘이야기’에 홀려 들고 말았다. 21회차가 짧게 느끼질 정도로 (실제로 회차에 비해 분량은 많은 편이 아니다) 순식간에 빨려드는 이야기의 우물을 파 낸 작가야 말로 작품에서 언급한, ‘신’의 솜씨를 가진 그릇이 아닌가 싶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