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주인 없는 치마가 있다. 무시하고 넘기기엔 과하게 예쁘고 화려한. 위험 요소라고는 1도 느껴지지 않는 이 치마는 그러나 그 아름다운 자태로 사람들의 욕망을 살살 파고든다. 치마 만큼이나 얆은 체면치레와 교양과 위선으로 간신히 가려둔 아래에 꿈틀대는 욕망을 건드린다.
이야기는 (아마도) 좋은 아파트에 사는 여자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곳과 맞닿아 있되 소득 수준은 상당히 차이가 나는 동네에서 나고 자라 아파트로 이사 왔다는 여자는 그 자체로 ‘변화 가능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런 여자의 속성은 아이의 유치원을 바꾸는 것에서도 드러난다. 여자는 자신의 딸을 ‘영어’유치원에서 ‘숲’유치원으로 옮겨 보낸다. 이 둘의 교육관은 아득히 멀고, 둘은 매우 이질적이라, 각 유치원의 엄마들은 서로를 적대시까지 한다. 그러한 환경에서 여자의 선택은 일종의 변절로 여겨질 정도다.
여자의 그런 결정에는 한 인물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과 행동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는 인물에 주인공은 호감을 느끼며 그쪽 무리에 합류한다. 때로는 그들이 세상에 적용하는 틀이 버겁기도 하지만 자신이 달성해야 할 이상향처럼 여기기도 한다.
여기에 치마가 등장해 모두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주인공은 두 무리를 더욱 구별하게 된다. 욕망을 탐욕스럽게 드러내는 쪽과 그 욕망에 초연한 쪽. 주인공은 그 사이 어드메쯤에서 치마를 바라본다. 욕망을 품었으되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운. 그런면에서 그녀는 욕망에 초탈하지도 못했고 솔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이, 그녀와 같지 않을까? 치마를 원하면서도 누군가 자신의 그런 욕망을 뚫어볼까봐 두려워하는, 손만 뻗으면 가질 수 있되 차마 행할 용기는 없는, 그렇지만 누군가 내 대신 그것을 차지한다면? 하는 불안에 짜증과 초조함이 밀려오는.
치마를 가져가는 것은 그것이 대단히 심각하고 위법한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강력한 유혹이 된다. ‘뭐 어때? 그렇게 심하게 나쁜 짓도 아닌데’ 하는 그런 마음이 욕망을 더욱 들쑤신다. 이러한 유혹은 일상 생활 도처에 너무나 흔하고 자주 나타나는 것이라서, 굳이 ‘치마’에 얽메이지 않더라도 주인공의 그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너무나 공감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치마가 사라졌을 땐 나도 모르게 ‘아!’ 탄성을 내뱉게 된다.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길지 않은 분량은 놀라운 반전을 잇달아 선사한다.
그녀가 아니라니!
그녀(앞의 여성과 다른 여인)가 아니라니! (주인공의 생각과 다르다는 의미다).
그녀가 아니라니! (그녀가 ‘아니다’라고 부정했다는 뜻이다.)
마지막 3문장이 궁금하시다면, 꼭 읽어보시길. 그 얇고 가벼운 유혹에 휘리릭 벗겨져버린 누군가의 위선을 알고 난다면, 독자 역시 주인공처럼 웃음이 터지게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