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펀치가 약하면 승부는 결정난다. 공모(비평)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마녀의 방패 (작가: 이광명, 작품정보)
리뷰어: 샘물, 23년 3월, 조회 62

여느 웹소설이나 스토리가 있는 컨텐츠가 그렇듯 1화는 매우 중요하다.

현실과 이질적인 판타지, 혹은 근미래, 현대인이 체험하지 못한 중세시대 배경 등 모든 이야기의 1화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보이는 전경의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런 연유로 필자의 경우 1화는 작가 또는 제 3자의 입을 빌려 그 배경을 힘껏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배경에 몰입하지 않으면 어떤 이야기를 그리건 독자는 더는 뒤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마치 데모 게임을 해보고 ‘이 게임은 내 취향이 아니겠구나’라고 판단하는 것과 같다.

 

그런 점에서 1화는 연재소설의 전체 구간 중 결말만큼이나 쓰기 힘든 부분이다. 배경과 갈등을 전부 풀어버리면 독자가 다음에 기대하는 게 없고, 너무 꼭꼭 숨겨서 다음 이야기에서 찾게 유도하면 독자는 찾지 않고 다른 이야기로 떠난다. 마치 ’60초‘ 게임과 같이 저건 반드시 챙기고, 이건 시간나면 챙기고, 저건 나중에 말하고, 던질 이야기와 갈등을 신중히 선택해 보여줘야 한다.

 

필자가 매우 좋아하는 ‘건담 시리즈’를 보자. 건담은 무엇인가? 전쟁병기다. 주인공은 누구인가? 소년/소녀다. 합치면, 건담 시리즈는 전쟁과 관련이 없던 소년소녀가 소년병이 되어 전쟁병기에 탑승해 싸우는 이야기다. 그래, 전쟁이란 건 끔찍하기 때문에 죄없는 사람들을 자신들의 무대로 강제로 끌고오게 만드는 비극이 벌어진다. 이건 전쟁이 벌어지면 자연스레 이야기를 이끌 수 있다. 그럼 현실적으로 비효율적인 ‘이족보행 우주용 전투병기’인 건담은 어떻게 무대에 섞을 것인가? 어째서 전쟁과 아무 관련이 없는 어린 주인공이 이 로봇에 만화 시작 30분 내로 탑승하고 적들과 싸워야 하는가? 이 부분이 해당 작품의 흥망을 결정짓는 첫 단추이다. 많은 건담 시리즈가 있었고, 일부는 성공했으며, 일부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1화에 해당하는 부분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는 걸 인지할 필요가 있다.(이 부분을 최근엔 ‘3화의 법칙’이라고도 부르는데 이 리뷰엔 필요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굳이 설명을 들어가지 않겠다)

 

현재 리뷰를 작성하는 시점에, 필자는 총 4편의 작품을 읽었다. 이 중 1~3화는 하나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며, 4화는 새로운 이야기의 도입부를 그리고 있었다. 이번 리뷰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것은 ‘물음표’다. 이는 5화 이후부터 보여줄 갈등이나 세계관과 관련된 긍정적인 물음표가 아닌, 나온 이야기를 모두 읽고도 ‘그래서 뭐?’라는 감정이 더 강한 부정적인 물음표다. 되도록 스포일링을 자제하기 위해 이야기 내에서 쓰이는 표현이나 구체적인 묘사는 되도록 이 리뷰에서 언급하지 않고 비슷한 표현으로 대체할 예정임을 미리 말씀드리겠다.

필자는 이 작품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의문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것은 단순 일개 연재작품에 한정되서 느끼는 의문이 아닌, 작품이라는 큰 범주에서 느끼면 위험한 의문이라는 점이다. 그것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뭐 하는 세계인가?

필자가 준비 중인 작품과 필자가 지금껏 읽었던 작품을 모두 아우른 ‘좁은 식견’에 따르면, 대체로 판타지 소설 세계관은 2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반지의 제왕에서 시작된 일명 ‘정통 판타지’ 세계관에 약간의 변주를 준 것, 다른 하나는 ‘우린 그런 뻔한 세계가 아니다’라며 작가만의 고유한 세계관을 함축해 낸 것이다. 전자가 열등한 것도 아니며, 후자를 추구했음에도 결국 부처님 손바닥 위에서 놀아난 손오공과 같이 결국 전자와 다를 바 없는 세계관을 그린 작품은 수두룩하다.

전자의 세계관은 우선 이해하기 쉽다. 먹어보고 만족했던 음식을 또 먹는 것과 같이 독자들은 쉽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이세계에 처음 떨어지고 겪는 ‘소환 멀미‘에 시달릴 바에 마치 집 앞에 나서는 것과 같이 쾌적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다면 작가는 오히려 자신만의 이야기를 독자에게 더 쉽게 설명해줄 수 있다.

반면 후자의 세계관은 그 세계를 이해하는 것만으로 작가의 생각을 즐길 수 있다. 이건 대체 왜 내가 알던 것과 다른지, 이러한 차이점으로 어떤 일이 생겨나는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쇄적으로 이야기를 음미할 수 있다. ‘클리셰 비틀기’가 여기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왜 당연해야 하며, 당연하지 않기에 이 이야기에선 어떻게 작용하는지 독자는 그것만으로 기대할 수 있다.

 

이 이야기는 어떠한가? 필자가 판단하기에, 아니 필자는 판단할 수 없다.

4편의 이야기에서 비춰지는 세계가 너무나 좁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디폴트 판타지 세계관인가? 아니면 작가의 아이디어가 담긴 고유한 세계관인가? 이 이야기에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주인공의 여정은 결국 무슨 의미를 갖는가? 주인공은 왜 갈등하는가? 주인공은 (보여지는 계급 상) 일반 평민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째서 마을 주민들에게 동급으로, 혹은 아랫것으로 취급받는 묘사로 느껴지는가? 명확한 답을 얻지 못했다.

이 부분은 필자의 주관성을 띈 주장이며, 문학적 지식이 모자란 탓에 작가가 분명 보여줬음에도 아니라고 생각한 것일 수 있다. 판단은 여러분들이 필자가 읽었던 4화 분량의 이야기를 함께 감상한 후 내려주기를 권장한다.

 

둘째, 갈등은 무엇인가?

많은 이야기들을 끊을 필요가 있을 때 그 단위로 삼는 것이 ‘주요 갈등’이다. 갈등의 발현과 고조, 그리고 갈등의 해소가 하나의 이야기로 납득된다. 이 작품의 경우 주인공은 ‘목적없이 이리저리 떠돈다’라는 뉘앙스의 대사를 한다. 이는 실제로 그런 것일 수 있고, 혹은 그것을 터놓을 상대가 아니기에 주인공이 굳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필자가 이해하기로는 ‘전자’에 해당한다. 3편으로 나뉜 하나의 이야기를 보았을 때 주인공은 그 이야기의 메인 갈등을 해결한 뒤 사라진다. 그리고 4화에 다시 나타난다. 이를 과장해 말한다면 4화의 주인공과 1~3화의 주인공은 생김새만 같은 다른 인간이라 주장할 수 있다.

단순히 주인공이 싸우기만 해선 안된다. 싸움대신 도망이란 선택지도 분명 있다. 하지만 싸운다면, 그 싸우는 이유에 밝히지 못한 큰 갈등이 있어야 한다. 독자들을 납득시키기 위해선 그 갈등을 모두 밝히진 않더라도 알릴 필요성은 있다. 4화의 주인공은 이것을 해내지 못했다. 그저 싸움을 걸어온 쪽이 등장했고, 생전 처음 보는 무대와 등장인물들이 등장했을 뿐이다. 냉정하게, 4화는 앞에 1~3화 내용이 없었어도 존재가 가능한, 유기적이지 못한 이야기가 되었다.

 

결론 : 펀치가 약하다. 이야기 전에 세계를 먼저 보여줬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 소설 ‘마션’의 첫 페이지에 적힌 첫 문장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무래도 X됐다.

그것이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X됐다.

저 3문장으로 독자들은 주인공이 왜 난처한 상황이 됐는지, 얼마나 난처하길래 고심끝에도 똑같은 판단을 내리는지 궁금해한다.(단순 비속어가 쓰여 있다고 그렇게 관심을 기울이진 않을 것이다)

필자가 작문 수업을 받을 당시에도 교수가 같은 말을 했었다. ‘제목이건 이야기건 리포트건 첫 줄에 임팩트를 박아넣으세요.’

저게 힘든 일임은 안다. 하지만 흔한 양산형 게임을 조롱할 때 언제나 우린 ‘천계와 마족의 전쟁~ 세상이 붕괴~’ 하는 레퍼토리를 들고온다. 왜인가?

자극적이지 않으니까.
하도 많이 봤으니까.
그걸 보고서 어떤 결말로 갔는지 뻔히 알고 있으니까.
똑같은 소리하는 놈들인데 기발했다면 첫 문장부터 기발했겠지.

똑같다. 독자들의 집중력은 함부로 단정지어선 안된다. 아무리 지루한 이야기도 일단 읽고보는 사람이 있고, 5페이지 내에 재미가 없다고 판단하면 6페이지부터 이야기를 달려나가도 책을 덮는 사람이 있다. 극단적인 경우는 제외해도, 재미없는 이야기를 오래 참아줄 사람이 없다는 건 모두가 공감할 것이다.

알고 있는 이상, 작가는 노력할 수밖에 없다. 본래 자기가 쓴 작품은 모난 곳이 전혀 보이지 않는 법이라(보이더라도 수습하기엔 너무 늦은 때에 보이더라)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자신도 만족스럽고, 독자도 만족스러운 이야기를 그려내야 한다. 이 이야기가 과연 어떻게 흘러가 어디에 도달할지 기대할 수 있게 바뀌길 바란다.

 

리뷰를 쓸 기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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