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들은 차라리 모르는 게 더 낫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렇다.
주인공 ‘나’는 택배기사인 아빠와 단 둘이 산다. 아빠의 택배일을 종종 돕던 나는 주택가에 없어진 택배를 찾아달라는 할머니의 부탁을 충동적으로 들어주게 되고, 한참 택배를 찾아 헤매지만 소득은 없다. 결국 할머니는 택배찾기를 포기한다.
할머니가 애타게 찾던 택배는 손자가 자살 직전에 부친 것이다. 부모가 일찍 죽어 할머니가 키웠다는 그 손자는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한달에 두번씩 택배로 할머니에게 용돈과 옷가지를 부치던 착한 아이였다. 그 손자 착한 아이가 자살했을리 없다고 굳게 믿는 할머니는, 그 택배에 뭔가 단서라도 있지 않을까 간절한 마음에 뜨거운 여름볕도 개의치 않고 택배를 찾는다.
여기서부터는 글 내용에 대한 스포이므로 이야기를 다 읽으신 분만 읽으실 것을 권한다. 이 짧은 이야기는 그러나 그 분량이 무색하게 충격적인 반전을 잇달아 선사하는데, 첫째로, ‘나’는 사실 택배를 찾기 시작한 첫날 찾아냈다. 둘째로, 택배 내용물은 삶에 지친 손자가 할머니를 향해 쓴 온갖 ‘원망의 말’들이다. 셋째로, 택배를 훔친 범인은 ‘아빠’다. 넷째로, 아빠의 동기는 ‘돈’이다. 몇 문단 되지도 않는 글에 잇달아 쏟아지는 놀라운 반전에 입이 턱 벌어지게 된다. 걔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것은 네번째였는데, 글 전반에 아빠가 가난할지언정 다정하고 따뜻하고 소위 말해 ‘사람 좋은’ 사람으로 묘사된다는 점을 생각할 때 가장 놀라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손자가 죽기 직전 부친 택배를, 손자의 장례를 치르느라 할머니가 집을 비운 사이 배달했던 아빠는, 그 상자에 돈이 들어있을 거라 생각해 택배를 훔쳤던 것이다. 두번째 반전도 못지 않게 놀랍긴 했는데, 손자가 마지막으로 잔뜩 보낸 돈이 있을거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거기에는 가난한 고학생이자 부모없이 자란 학생의 시기, 원망, 질투, 시샘, 분노, 낙담이 들어있었다. 그 잔인한 유서를 쓸 때의 그의 마음이 어땠을까, 할머니의 주장에 따라 손자가 사실은 자살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단 상상은 이 대목에서 조용히 그 주장을 접고 들어가게 만든다. 주인공이 상자를 진작 찾았음에도 끝끝내 할머니에게 갖다 주지 못한 이유가 절로 납득이 간다. 돈은 안될지언정 사람냄새 나는 지역이라 낡은 아파트와 주택가 골목을 돌며 택배를 배달하는 아빠, 그 선한 사람은, 아빠 택배 조끼에 벤 냄새를 없애보고자 자기 교복에도 들이지 않는 정성을 쏟아 세탁을 시도하는 사랑스러운 딸을 홀로 키우는 가장은, 그러나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상자를 들고 왔다. 허나 그 안의 처참한 내용물을 확인 한 뒤에는, 그것을 어쩌지 못하고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내의 유품 옆에 둔다. 차마 버리지도 못하고 그것을 품고 있는 아빠의 마음은 무엇일까? 순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반성? 자책? 혹은 그저 마땅한 처리법을 찾지 못한 게으름? 그러나 어찌되었던 그는 상자를 훔쳐버림으로써 할머니에게 ‘뜻밖의’ 선의를 베풀었다. 그 상자는, 할머니에겐 차라리 모르는 편이 훨씬 더 나은 물건이니까.
그래서 막연히 기대하게 된다. 세상엔 몰라서 좋을 것들도 생각외로 많다는 걸, 그녀가 알게 되기를. 그리고 몰라도 좋을 걸 이미 알아버린 그녀에게는, 나름의 아픔과 힘듦이 있겠으나 그것을 하나의 성장통 삼아, 세상을 더 폭넓게 이해하는 어른으로 자라나는 기점이 되기를.
이미 그녀는, 몰라도 좋을 것을 끝까지 모른채로 지켜주는 지혜가 있으니, 틀림없이 멋진 어른으로 자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