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먼저, 이것은 미숙한 독자의 매우 주관적인 감상평임을 밝힙니다**
‘묻다’는 동형어(동음이의어)로, 같은 모양을 지녔으되 뜻이 다른 여러 동형이 있다. 사전을 참고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묻다
1) 무엇을 밝히거나 알아내기 위하여 상대편의 대답이나 설명을 요구하는 내용으로 말하다. 예) 길을 묻다.
2) 어떠한 일에 대한 책임을 따지다. 예) 관리자에게 책임을 묻다.
2. 묻다.
1) 가루, 풀, 물 따위가 그보다 큰 다른 물체에 들러붙거나 흔적이 남게 되다. 예) 기름이 묻다.
2) 함께 팔리거나 섞이다. 예) 가는 김에 묻어 타다.
3. 묻다.
1) 물건을 흙이나 다른 물건 속에 넣어 보이지 않게 쌓아 덮다. 예) 시체를 묻다.
2) 일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속 깊이 숨기어 감추다. 예) 비밀을 묻다.
3) 얼굴을 수그려 손으로 감싸거나 다른 물체에 가리듯 기대다. 예) 베개에 얼굴을 묻다.
4) 의자나 이불 같은 데에 몸을 깊이 기대다. 예) 지친 몸을 침대에 묻다. (출처 : 네이버 어학사전)
이 중, 작품의 제목 ‘산에 묻다’는 그 앞에 붙는 말로 인해 3-1의 의미가 가장 커 보인다. 그러나 읽다보면 여러 ‘묻다’가 베겨 나온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래부터는 소설의 주요 내용이 나오기에 스포일러 방지로 쓰고자 한다.
우선, 주인공은 산에 묻어 산지 오래다. (3-4).
둘째로, 그는 연인과의 관계를 가슴에 묻어두려 하는 듯 보인다,(3-2)
셋째로, 작품 진행의 가장 큰 줄거리 – 개의 시체를 찾으려는 것 -에서는 범인에게 개를 죽인 책임을 물으려는(1-2) 일련의 과정으로 보이며
넷째로, 주인공은 범인에게 끊임없이 개를 묻은 곳을 묻고 (1-1)
다섯째로, 주인공은 일상을 영위하며 연인을 떨쳐보려 애쓰나 생활 곳곳에는 그녀의 흔적이 묻어난다 (2-1)
마지막으로, 그는 목적을 달성한 후 산에 묻는다. 무엇을 묻는지는 나오지 않지만.(1-1)
이것이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때문에 제목은 매우 다중적 의미를 띈다. 주인공이 산에 ‘무엇을’ 묻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는 표면적으로 보이는 산에 ‘개를’ 묻다가 눈에 띈다. 그러나 조금 파고들면 그는 산에 ‘연인과의 기억’을 묻으려는 듯도 보인다. 동시에 산에 ‘지금까지의 삶’을 묻고 외국에서 새로운 생활을 소망하는 듯도 보인다. 사실 2번과 3번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개의 실종은 또 다른 의미로 읽힌다. 그녀가 그에게 주었던 것, 그의 가족이 되었던 것. 개는 그와 그녀를 연결한다. 그런 개의 실종 및 매장은 그가 그녀와의 헤어짐을 결심하는 것과 묘하게 얽힌다.
‘묻다’가 다중의 의미로 쓰였듯이, 이야기 또한 두 줄기가 교차되며 진행된다고 느꼈다.
첫째는 추리소설적 문법을 따르고 있는 개 매장 사건이다. 이 사건은 초반에 범인이 일찌감치 밝혀짐으로써 후더닛, 하우더닛, 와이더닛 중 와이더닛의 성격을 강하게 띈다. 범인의 동기가 주요 반전요소이며, 주된 줄거리는 개가 묻힌 곳을 알려주기 거부하는 범인과 알아내려는 주인공 간의 갈등이다.
두번째 줄기는 주인공과 연인의 로맨스다. 이 이야기는 첫 이야기의 진행 사이 사이에 두 인물의 대화와 주인공의 독백 등으로 진행되며, 일반적인 로맨스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주인공은 여자친구에게 지쳤으며 이제 그녀에게 ‘향기’ 대신 ‘악취’를 느껴 헤어질 것을 결심한다. 그러나 개 사건에 그녀가 얽혀있어 당장 실행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두 이야기는 모두 쉽게 읽히진 않는다. 아래는 어려움을 느꼈던 부분들이다. (미숙한 독자라 이해 못하고 놓친 부분일 수도 있으니 아시는 분은 일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의상 추리소설적 부분을 1, 로맨스적 부분을 2로 표기하고자 한다.
1-1. 범인이 주인공의 개를 범행 대상으로 정한 이유. 말미에 드러나듯 위진성의 범행 목적은 ‘돈’이며, 개 유괴 사건을 덮기 위해 일부러 개 매장 사건을 벌인다.
그런데 그는 선해로부터 범행을 사주받으며 300만원을 받았고, 일을 실행하기 위해 낚시꾼 2명에게 각각 200만원, 총 400만원을 준다. 고로 그의 입장에선 100만원이 손해다. 돈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 자가 손해를 보면서까지 주인공의 개를 해쳐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2. 선해의 범행 사주 이유.(이 내용 자체가 제가 잘못 이해한 것일수도 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선해는 범인에게 돈까지 주며 개를 훔쳐갈 것을 부탁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행동의 원인을 모르겠다. 처음 그녀는 보상금을 받으려고 하지만 실상 자신이 돈을 준것을 보면 보상금 자체는 위장용 핑계로 보인다. 개는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는 둘 사이에 하나의 연결선이며 그녀는 남자와 헤어지고 싶지 않(아 보인)다. 그런 그녀가 왜 개를 없애고 싶어할까? 개의 실종을 핑계로 그와 다시 만나려 한 것이라기엔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그녀 성격과 맞지 않는 듯 해 마땅한 답을 찾기 어려웠다.
1-3. 범인의 마을내 평판. 그는 출소 후 6개월간 마을에 지냈다는데 동네 슈퍼 아주머니가 이름을 알 정도로 주민들과 가깝다. 고용주 중국집 주인으로부터 주인공보다 좋은 평가를 받으며, 작중 경찰들 역시 그를 비호하는 듯한 묘사를 보인다. 그러나 그런 고평가를 받을만한 구체적인 행적이나 이유는 드러나지 않기에 읽는 입장에서는 의아함을 느낀다.
1-4. 말미의 급박한 진행. 서두와 결말을 제외하면 이야기는 8일의 시간을 다룬다. 그런데 8일째에 새로운 인물이 둘 등장하며, 이들의 결정적 도움으로 사건이 해결된다. 앞의 7일간도 아무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둘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앞 시간들이 작게 느껴진다.
또한 두 인물에 대해 사전 언급이나 등장 가능 복선등이 없어서 다소 뜬금없고 작위적인 등장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때문에 사건이 급작스럽게, 갑자기 해결되는 느낌이라 추리소설 적 재미- 하나씩 나오는 힌트들을 통한 유추-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듯 한 아쉬움이 남는다.
2-1. 선해와 양우의 전사(前事) 유추의 어려움. 둘의 전사를 꼭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나, 주인공이 그녀에게 품은 감정 묘사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는 만큼 그 감정에 몰입하거나 공감하지 못하면 해당 부분들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왜 그녀에게 지쳤는지 – 그녀가 멋대로 떠남과 돌아옴을 반복하는 탓 같기는 하지만 – 구체적으로 알 수가 없어 그의 심리를 따라가기가 벅차다. 예컨대 몇 차례 나오는 추어탕과 오렌지를 먹는 장면들은 그가 주문한 중국음식을 쓰레기통에 넣는 장면만큼 그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어렵다. DVD 관련 장면 역시 유사한 느낌이라 후반 감독 멘트가 나오기 전까진 이 장면들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2-2. 그녀의 심리. 1인칭 주인공시점을 택한 덕에 양우의 심리는 알겠으되, 그를 계속 떠나고 돌아오길 반복하는 그녀의 심리는 이해하기 힘들다. 이것은 앞서 1-2와 맥락을 같이 한다.
매우 길게 이야기했으나, 결국은 하나로 귀결되지 싶다. ‘모름’. 그녀의 마음을, 둘의 얘기를, 범인의 동기를, 주변인들의 그런 반응의 원인을, 잘 모르겠다. 그래서 이야기에 빠지기보다 자꾸 되짚어 돌아가게 된다. 내가 놓친게 있나? 빠트린 암시가 있나? 이는 몰입을 방해하고 흐름을 끊는다.
이야기는 다른 많은 장점들- 더 큰 범죄를 감추기 위해 작은 범죄로 위장하는 영리한 반전 및 주인공이 품은 오래된 연인을 향한 복합적 감정의 섬세한 묘사-을 품고 있다. 특히 첫 트릭의 경우 크리스티의 단편(데이븐하임 사건)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러한 장점들이 앞서 언급한 ‘모름’이 없었다면 더 빛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예전에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읽고 대혼란에 빠졌었다. 읽긴 읽었으되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어서, 그야말로 검은 것은 글자요 흰 것은 종이로다, 상태였다. 그 난해함은 작품 비평해설이라는 특별 과외를 받고서야 해소되었다. 그렇구나, 그런 의미, 그런 의도였구나 하고.
여기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미숙하고 어리석은 독자는ㅜ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찾지 못하고 헤매인다. 더구나 이번엔 들춰볼 해설서도 없다. 그리하여 이 길고 지루한 글로 작가님께 묻는다. 저, 잘 이해 못했어요ㅠ, 라는 부끄러운 고백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