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도 같은, 저 타국에서의 환상적 사랑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안개로 누룩을 만들어 삼키면 (작가: 이준,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3년 2월, 조회 74

“언니는 언제로 가장 돌아가고 싶어?”

얼마 전부터 동생이 과거를 묻는 빈도가 잦아졌다. 왜인지 이 질문에 ‘꽂힌’ 것처럼 꽤 자주 질문할 때도 있다. 그때마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는 언제로 가장 돌아가고 싶을까.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 때의 나는 어땠을까. 이상하게도 나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과거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내 과거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을 유난히 힘들게 보내거나 한 것도 아닌데, ‘굳이 돌아가야 하나’ 싶은 생각이 자꾸 든다. 그 당시보다는 지금이 낫기 때문인 걸까. 생각할수록 그건 아니다. 한 가지 가설은 나에게 크게 굴곡진 사건이 없었다는 것이다. 태생이 무욕적이기도 했거니와 살면서 큰 감정의 요동을 겪은 기억도 거의 없다. 이런 태도를 유지하며 살다 보면, 비록 아직은 살아온 시간이 짧지만, 인생에 굴곡이 덜 지게 마련이다. 요컨대 크게 떠오르는 기억 자체가 없으니 당연히 회귀하고 싶은 지점도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시간 여행 소설을 꽤 흥미롭게 보는 편이다. 어떤 욕망도 커다란 경험도 없이, 타인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기대지도 않고 (또는 기대하지 않고) 살아온 탓에 아직 돌아가고 싶은 시점을 만들지 못한, 어떤 사람의 관점에서. 그 때문인지 회귀 소설 속 주인공들이 과거로 시간을 돌리려는 욕망은 신기하게 다가온다. 그들은 그것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것을 걸고 계약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한다. 심지어는 목숨을 내놓으며 일정 시간 과거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도 있다. 무모하게까지 보이는 이 시도들은 모두 누군가를(또는 무엇을) 구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

회귀는 인간의 간절함을 다루는 데에 최적화된 SF 장르다. 워낙 긴 시간 사랑받아서인지 유형도 여러 가지다.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 루프’와 특정 시간을 순환하는 ‘타임리프’가 대표적이다. 조금 더 매끈하게 시공간을 이동할 것 같은 ‘타임슬립’도 회귀의 한 종류다. 시간을 거스르는 방법은 또 얼마나 많은가. 고전적인 타임머신부터 가장 미래적인 양자역학의 변용까지. 환상으로는 요술사와의 계약부터 현실로는 일상적인 물건들까지 주인공과 시간 여행을 매개하는 도구와 인물 들도 무궁무진하다. 그래서인지 과거로의 여행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읽을 때면 항상 두 가지를 확인하게 된다. 그는 누구를 구하려는가. 그리고 그는 무엇으로 여행하는가.

이런 나름의 목적을 갖고 시간 여행 소설을 즐겨 읽는 나에게 이준 작가의 소설 〈안개로 누룩을 만들어 삼키면〉은 여타의 회귀 소설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안개로 만든 누룩을 먹으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니. 그의 소설을 한두 편 읽고 말 독자는 아니라는 점에서 분명히 하지만, 이준 작가의 소설에는 그가 지닌 잠재력이 무의식적으로 녹아 있다. 그의 이전 소설이 일관적으로 보이던 특징이 〈안개로 누룩을 만들어 삼키면〉에서도 드러난다는 점에서, 그리고 조금 더 작가의 색이 입혀졌다는 점에서 이제는 어느 정도 소설의 분위기를 이끌고 형성하는 힘까지 생겼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특정 작가가 쓴 소설이 서로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과 그의 문체가 형성되었다는 표현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다. ‘소설이 서로 비슷하다’라는 말은 자가복제를 의미한다. 어떤 소설을 읽어도 결말이 예상되는, 이미 쓸 대로 써서 닳고 닳은 플롯을 또 쓰는 작가에게 이런 말을 한다. 그러나 작가의 ‘문체’가 형성되었다는 말은 큰 칭찬이다. ‘문체’는 작가에게 도장과 같다. 구병모, 김엄지 등 작가의 소설은 작가의 이름을 가리고 읽어도 대충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것은 작가 특유의 소설 속 분위기가 문장에 녹아나오는 것으로 꽤 오랜 시간 글을 연구하고 써온 작가에게 드러나는 특징이다. 이제 이준 작가는 자신의 문체를 어렴풋이 깨달아가는 중이다. 이것은 작가 스스로 알 수도, 또는 독자에게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의 소설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해지는 특징은 무엇일까. 이전에 읽은 그의 이야기와 달리 훨씬 환상적이고 약간은 SF 같기도 한 이 단편에서도 어김없이 발견되는 그만의 시그니처는 무엇일까. 그리고 마침내 발견되어야만 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1.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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