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세상엔 ‘이런’ 판타지가 필요하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세가지 미덕 (작가: 이소플라본,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23년 2월, 조회 47

‘착하다’라는 말 안에 남들의 ‘청’을 쉬이 거절하지 못하며, 자기 ‘것’ 하나 못 챙긴다는 게 포함되어 있다는 걸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여실히 깨달았다. 나름 영악하게 살겠다고 다짐해봐도 내 안에 살아 숨쉬는 ‘선비 녀석’이 그리 하는 걸 돕질 않았다. 죄책감을 잘 느끼며 사람 간의 에티켓을 따지는 그 녀석 탓에 관계를 맺는 것이 피로했다. 주되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걸 훈련해왔고, 이젠 주면서도 딱히 받을 걸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나를 ‘착하다’라고 평하는 이도 있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게 착하다=약자다 라는 의미와 비슷해서다.

 

이 소설 <세가지 미덕>은 내가 세상의 풍파 속에서 잊어왔던, 지워왔던 인간의 미덕에 대해서 떠올리게 한다. 인간이란 무엇으로 이뤄지는가, 이 세상을 살 만하게 만드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봤을 때 떠올리는 건 단연 ‘따듯한 정’과 ‘순수한 마음’이다. 소설의 주인공 억수는 정이 많고, 잇속을 따지지 않고, 가진 것에 족할 줄 알면서도 다른 이를 너르게 품을 줄 아는 ‘순수함’을 가진 이다.

 

동시에 서두에 저자가 토로하기를 “어른들이 말하길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 순하고 착하기가 말로 다 못할 지경”이면서 동시에 “아낙들이 말하길 남편 삼기 싫은 남자라, 아직까지도 제 어미를 공양하느라 장가엔 엄두도 못내는 사람”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가난한 형편에도 묵묵하게 제 할 일을 하며 살아가는 억수의 인생에 변화가 찾아든 것은 ‘월천꾼’이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부터다. 얼어붙은 개울이나 높은 언덕을 못 건너는 이들을 등에 태워 건네 주는 일인데 힘이 센 억수에겐 딱이었다. 억수는 이 일을 하며 괴물과 같이 흉악한 외양을 한 여인을 만나고, 그 여인과 부부의 연까지 맺게 된다. 그들의 사정에 대해서는 우선 ‘비밀’에 붙이겠다. 리뷰를 통해 설명으로 듣는 거보다 이 글을 끝까지 읽고 구미가 당긴다면 직접 읽어보는 게 더 마음에 가닿을 테니까.

 

실상 이 소설 <세가지 미덕>은 전래동화와 같은 구성을 띠고 있고, 서술하는 방식 또한 그래서 어찌 보면 예상 가능한 흐름대로 흘러간다. 편견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성의를 다하는 이에게 복이 찾아온다는 주제를 결말에서 여실히 보여준다는 것도 그러하고, 헌데 울림이 달랐다. 세 가지 미덕이라고 말했지만, 이 소설이 결국 들려주는 것은 ‘사람이 사람과 모여살 때에 보여지는 못난 것’ 세 가지기 때문이다. 바로 가난, 추함, 고약이다. 가난은 가진 것이 못난 것이고, 추함은 형태가 못난 것이며, 고약은 성미가 못난 것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억수는 바로 이 3가지를 가진 이를 품을 줄 아는 사내였기에 예기치 못한 행운을 손에 넣는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그런 말을 들은 적 있다. 누군가 해주길 바라는 일을 하는 것보다 누군가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게 더 좋고, 더 어렵다는 것. 억수는 사랑스러운 것이 아닌, 추한 것을 감싸 안는 심정을 가졌기에 3가지 미덕을 가진 이라고 평할 수 있었던 걸까. 소설은 짧았지만 읽고 난 뒤에 여러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안다. ‘착한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착하기만 한 순진한 사람’이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나쁘다는 서글픈 진실 말이다. 순수와 순진은 다르다. 사전적 정의를 본다면 순진은 ‘마음이 꾸밈이 없고 순박함’을 말하기도 하지만,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수룩하게 사람만 좋은 건, 나도 되기 싫고 그런 사람을 곁에 두기도 싫다. 곁에서 지켜보는 내 가슴이 답답해지기 때문이다.

 

허나, 알 것 다 알고 세상의 풍파에 닳고 닳았어도 ‘순수함’을 지닌 이는 좋다. 사전적 정의를 말하자면 ‘전혀 다른 것의 섞임이 없음’의 뜻도 있지만, 나는 ‘사사로운 욕심이나 못된 생각이 없음’이라는 뜻이 더 좋다. 순수한 사람은 심플하다. 뒷공작이 없고, 누굴 사사로운 마음과 흑심을 담아 욕하지도 않으며 ‘직구형’이다. 편견이 섞이지 않은 시선으로 세상과 사람을 보고자 하며,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다. 다만, 아닌 것 앞에서는 냉정하다.

 

사설이 길어졌지만 이 소설 속 주인공 억수는 순수하되 순진하진 않다. 자신이 무엇을 가졌고 무엇을 포기했는지 알고 있으며, 상대방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어떤 순간이든 ‘중심’을 지키고자 하며, 제 손으로 얻어낸 행복이 무너지지 않도록 부단히 애쓰는 뚝심을 갖고 있다. 이 소설을 다 읽은 내 입장에서 보았을 때 억수의 3가지 미덕이란 순수, 중심, 뚝심이 아닐까 한다.

 

어렸을 때와 다르게 무엇이든 빠르게 판단하고, 예전만큼 인내하지 않으며, 아니다 싶으면 손절치는 속도가 빨라졌다. 판단의 중심에 타인보다 ‘나’를 앞세우게 된 것도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다. 다만, 나는 ‘약기만 한 선택’은 가급적 피한다. 세상 물정은 알되 ‘순수’하고 싶다. 순수한 영혼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꽤 많은 수양이 필요하다는 걸 안다. 요즘 테마가 바로 마음 수양인데, 이미 수양이 된 인물을 소설에서 만나 반가웠다. 물론, 억수라는 인물은 참 답답하기 한량없다. 나 역시 결코 혼인은 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이다. 허나, 좋았다. 삭막한 날들이 이어지는 일상에서 이러한 소설을 만나는 순간은 다디단 약수물을 마시는 ‘찰나’와 같아서. 당신의 하루가 심란한 어느 날에 이 소설을 슬쩍 보길 권한다. 결말까지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며 설핏 웃게 될 테다. 이런, 판타지가 있어줘야지… 인생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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