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사람을 위한 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미드 나잇 써커스 (작가: 배명은, 작품정보)
리뷰어: 피오나79, 17년 6월, 조회 43

우뚯 솟은 천막들, 색색의 화려한 줄무늬, 번쩍이는 눈부신 조명, 우리에 갇힌 동물들, 공중 곡예, 저글링, 삐에로 분장의 광대, 커다란 모자를 쓴 마술사, 그리고 두꺼운 분장으로 나이를 알 수 없는 배우들과 무대에 마음을 빼앗긴 관객들.. 우리가 흔히 서커스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들이다. 언젠가 태양의 서커스 ‘퀴담’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가족들 사이에서 외롭게 맴돌던 소녀가 있던 풍경 속에, 중절모를 들고, 우산을 쓰고, 머리 없는 사내가 들어오면서 공간이 다른 곳으로 변하게 되는 인상적인 오프닝이 있었다. 소녀의 부모들이 앉아 있던 의자는 공중으로 떠오르고, 소녀의 눈으로만 볼 수 있는 화려한 환상의 세계가 펼쳐졌었다. 서커스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현실의 경계에 발끝을 두고 경험할 수 있는 비현실의 세계.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입에 풀칠을 하고 있던 나는 일당을 받아들고 집으로 향하다, 갑자기 좁은 골목에서 튀어나온 트럭과 마주하게 된다. 들고 있던 소주병들이 떨어지고, 차창 문너머로 검은 턱시도를 입은 금발의 외국인이 고개를 내민다. 자신이 서커스 단장이라며, 사과의 의미로 티켓을 주겠다고.

“오직 당신만을 위한 써커스가 오늘 열립니다. 당신이 진정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는 찬스! 모두들 원해 마지않는 그러한 카니발, 놓치면 후회할거예요! 오케이?”

서커스 따위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번거롭게 한 점을 빌미로 돈이라도 왕창 뜯어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나는 그곳에 찾아간다. 오늘은 당신의 날이니까 원하는 걸 말하라는 그에게, 나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말한다. 매일 일용직노동자로 살아가는 게 지겨워 사실 돈이 필요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오늘의 자신을 이렇게 살게 만드는 그 놈을 찾는 거였으니까. 그는 과연 9년 전 사라진 친구를 그곳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대체 그 친구와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매우 짧은 이야기라 서커스를 통해 주인공이 겪게 되는 신비로운 분위기에 대한 묘사도 적은 편이고, 9년 전 그 사건에 대한 부분도 갑작스럽게 전개되는 느낌이 있긴 하지만, 작가의 전작들이 그랬듯 몰입도가 좋은 작품이다. 장편 연재를 할 목표를 가지고 있는 프롤로그 정도로 보라는 멘트가 아니더라도, 이 이야기는 더 풀어낼 여지가 많은 것 같아 궁금한 설정이기도 하고 말이다. 약간의 반전이 오싹함을 느끼게 해주지만, 그만큼 서커스 단장과 의심스런 트럭이 어쩌면 모두 누군가의 계획하에 이루어진 복수 같다는 기분도 들었지만 그거야 다음에 이야기가 더 확장되고 나서야 알 수 있을 것이고.

오직 한 사람을 위한 밤. 그를 위해 준비된 미드 나잇 서커스. 라는 테마가 굉장히 매혹적이라, 부디 연작이든 장편이든 더 깊어진 스토리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해 본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