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라고 눈치챌만한 이야기들이 있으니, 대상 작품을 먼저 읽고 읽어주시면 좋을 듯합니다!!-
같은 이야기라도 그것을 듣거나 읽는 이들에 따라서 몰입의 정도가 달라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에 관한 이야기라면 그 정도는 상상이상이 될 것이다.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고 때로는 즐거워하면서 추억하게 되는 그 시간들은 공감의 순간 그 자체가 된다. 그런 공감의 이야기가 나에게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한 ‘육아’이다. 물론 하루 종일 아이를 돌보는 아내와 달리 기껏해야 회사일 마치고 들어와 잠들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이나 주말동안에만 해당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새벽 2시 40분’은 아니지만 새벽 어느 특정 시간만 되면 우는 아이를 따라서 일어나 우유를 주며 달래야 했고, 그렇게 힘들게 안아서 재운 아기를 다시 내려놓아야하는 어려움에 쩔쩔매던 기억들이 난다. 유일하게 편하게 쉴 수 있는 아이의 낮잠 시간이나 오랜만에 일찍 잠들어 해방의 시간을 맞이하는 순간에 울리던 초인종 소리에 심장은 덜컥거렸고, 나도 모르게 걸쭉한 욕지거리도 함께 따라 나오던 기억들도 난다. 완전히 기억에만 파묻을 수는 없는, 아직도 가끔씩은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는 그런 현실적인 육아의 이야기들을 정말 생생하게 들려준다. 너무 생생해서 그 자체가 ‘공포’가 아니가 싶은 생각도 슬쩍 해봤다. 물론 내 아이를 두고 악마가 아닐까 하는 상상 따위는 하지 않지만…….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는 육아를 전담하는 남편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에게는 폭력과 폭언을 서슴지 않는, 일을 하는 아내가 있다. 독자들은 아이에게 시달리고, 또 아내에게 시달리는 남편의 삶을 조금씩 들여다보게 된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서서히 들기 시작할 것이다. 집에 낯선 남자가 찾아오기도 하고, 급기야 아내가 며칠째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되면서 이야기는 서서히 달아오르고, 결국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혹은 설마설마 했던 이야기로 드러나게 된다.
공감을 통해서 조금 마음을 놓게 하다가, 조금씩 피어나는 의심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결국에는 모든 사건을 마무리 짓는 강력한 한방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 과정에서 작가는 퍼즐 조각들을 여기저기 숨겨 놓는다. 깨진 토마토 화분, 빨간 머그컵, 김치냉장고, 보행기 등의 조각들이 마지막에 이르러서 하나로 맞춰지면서 중간 중간에 가졌던 의문들은 깔끔하게 해소되는 방식이다.
덕분에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다시 한 번 읽어도 꽤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영화 <식스센스>를 떠올리게 한다고 할까?! 그 당시 상당한 반전으로 큰 인기가 있었던 영화였는데, 사실 처음 봤을 때는 ‘아, 저게 반전이구나’ 싶은 생각만 들 정도로 밋밋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감독이 꾸며놓은 치밀한 장치들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도 그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단지 그 조각들이 진짜 자연스럽게 그 순간순간들에 녹아들어 있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뜬금없는 이야기가 나온다던가, 그만큼 이해하기 힘든 순간들이 닥친다던가하는 상황은 전체적인 흐름에서도 조금 어색하게 느껴진다. 가령, 위험한 순간에서 구해낸 아이를 안고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에만 신경 쓰다가 유모차를 그대로 두고 와버렸다는 이야기는 당황한 나머지 그럴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한편으로는 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도대체 뭘 잘못했기에 그리 급하게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을까 싶은 것이다. 물론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서는 그래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이야기의 중간에 그렇게 뜬금없게 만드는 것은 흐름상 조금 어색해 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애당초 그런 의심의 부분은 남겨두지 않고 이야기를 진행해나가다가 끝에서야 알아채고, 다시 그 부분을 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부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면 좀 더 세련되게 보이지 않을까?!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다가 갑자기 한대 맞으면 그 충격은 그 반대의 경우와 비교해서 몇 배는 될 것이니까 말이다.
이런 말을 감히 해도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동안 몰래 지켜봐왔던(?!) 작가의 다른 글들에서도 이런 스타일을 사용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방식이 조금씩 더 깔끔해진다는 느낌이 든다는 사실은 꼭 덧붙여서 말하고 싶다. 점점 더 좋은 스타일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니까, 그러니까 다음 작품은 더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그런 확신이 든다.
<이른 새벽의 울음소리>는 순간적으로 분위기를 반전해 나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거나, 소소한 조각들로 큰 그림을 맞춘다거나 하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개인적으로는 작품에서 전해주는 어떤 메시지 같은 것을 전달하는 방식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입장을 바꿔서 이야기를 하는 것’ 말이다. 그 자체가 상당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너무나도 완벽히 상대방이 되어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이 현실감은 좀 떨어져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그 행동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정말 확실하게 전달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우리가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들. 그리고 다 이해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들. 반대로 난 다 알고 이해하는데 넌 왜 그렇게 하지 못하냐고 생각할 수 있는 것들. 그런 저마다의 입장 차이가 불러온 일들이 우리를 얼마나 많은 어려움에 빠지게 만드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완전할 수는 없겠지만- 상대방이 되어서 한 번 쯤 생각해보는 것, 그런 노력은 적어도 우리의 삶을 이런 작품 속 이야기와 같은 공포로 만들어 놓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뭐, 아무리 입장을 바꾸고 어쩌고 해도, 어쨌거나 육아는 힘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