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는 ‘재훈’이 되기 전에 행동하기로 한다 감상

대상작품: 여전히 인간이 되기에는 멀었다 (작가: 헤이나, 작품정보)
리뷰어: 가온뉘, 11월 14일, 조회 12

헤이나 작가의 세계를 <우주를 넘어>(브릿G, 2020)로 처음 만났던 독자이기에 작가가 미래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내놓으면 문득 설레곤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헤이나 작가의 글은 색채는 변할지언정 근저에 흐르는 안온한 온도의 따스함이 스며드는, 넓은 의미에서 ‘사랑’을 이야기니까. 또한 퍼리계와 똑같지 않아도 서브컬쳐라 불리기에 충분한 ‘팬덤’에 소속된 글쟁이 나부랭이로서 ‘펜을 꺾는 이야기’는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내용은 글 소개처럼 평이하다. 퍼슈터로 글을 시작하여 문학계에도 등단한 시인 김이현의 절필 선언과 그에 얽힌 인터뷰를 글의 화자인 재훈의 시점에서 풀어낸다. 긴 글이 아니기도 하고, 헤이나 작가의 문장은 스며드는 데가 있어 읽기 쉬운 축에 속한다고 생각하므로, 본문은 직접 읽는 것을 추천 드린다.

내용은 평이하다고 했지만, 알맹이는 전혀 아니다. 여태껏 보아온 헤이나 작가의 소설 중 가장 무채색 그것도 검정에 가깝다. 블랙조크라고도 보는 게 좋을까. ‘같은 걸 좋아하니까, 우리는 친구. 우린 한 족속.’이란 문장을 직접 체현하고 있는 이라면, 반드시 퍼리계가 아니더라도 곳곳에 짙은 공감할 구석이 많이 있다. 그 작은 사회에서 무언가 써본 사람이라면 아마 한 번쯤은 느끼고 겪었을 일들의 선명함은 ‘김이현’이 겪은 일이며, 더 나아가 감히 추측하건대 헤이나 작가를 비롯한 ‘우리’가 경험했을 일이다. 애정을 가지지 않고서는 쓸 수 없는 생생함이기에, 그래도 결국 이 글이 헤이나 작가의 것임을 확신한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작가의 말에서 그러하였듯 사랑의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덧붙이자면 ‘모순과 역설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이야기라고 하겠다.

김이현의 말과 행동으로 꺼내진 모순이 그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 애정과 의무감, 팬덤과 자기표출. 소위 말하는 서브컬쳐의 글은 취미의 영역이라고는 하나, 결국 모든 작품에는 결국 창작자의 편린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문학의 글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고 믿는다. 내가 보는 ‘김이현’은 그 양쪽 틈바귀에 낀 존재였다. 굳이 퍼소나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그는 팬덤에도 문학계에도 오롯하게 속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김이현이 옮긴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퍼리에게도 인간에게도 온전히 닿지 않는다. 토해낸 비명과 고통이 어디에도 수용되지 않고 납작하게 소비 당해 흘러가는 것을 김이현은 더는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김이현’은 결국 모순 위에서 줄타기하다가 거기서 내려온다. “여전히 인간이 되기에는 멀었다”고 하며. 내가 너희와 다르다면서.

바로 여기서, 생각을 뒤집어보자. 애정으론 버틸 수 없는 고통과 슬픔으로 줄 위에서 내려온 이에게, 주파수를 맞출 수 있는 누군가 있었다면 이야기는 달랐지 않았을까. 모순 위에서 춤을 추는 이를 견디게 하는 것은 ‘같은 인간’의 애정과 유대라는 것을 역설하는 이야기가 아니었을지.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독자가 할 일은 하나다. 지금 여기서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같은 주파수에서 들으려고 애쓴다고, 내가 듣고 있다고, 당신과 나는 이어져 있다고 외치는 것.

그러니, 후회하는 ‘재훈’이 되기 전에 행동하기로 한다. 이것이 부끄러운 문장을 남기게 된 구구절절한 이유다. 나는 역시 당신의 글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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