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이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였다. 빨간 구두에 매혹되어 온통 신발에만 쏠려 있는 마음이 주위의 시선도, 해야 할 일도 모두 잊어 버리는 만든다. 카렌이 빨간 구두를 신자 발이 멈추지 않고 춤을 추기 시작하는데, 겁이 나서 구두를 벗으려 할 수록 신발은 발에 더 단단히 들러붙는다. 결국 카렌은 사형집행인을 찾아가 도끼로 자신의 발을 베어 달라 부탁하고, 발목이 잘리고 나서야 끊임없이 춤을 춰야 하는 운명에서 벗어나게 된다. 어린 마음에 홀리듯 이야기를 읽고 나서는 아주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탐욕이 불러온 결말도, 발이 잘린 채 여전히 춤을 추고 다니는 빨간 구두의 이미지도 오싹했으니 말이다.
이번에 만난 짧은 이야기는 구두를 소재로 하고, 인간의 탐욕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오래 전 읽었던 안데르센의 동화를 떠올리게 했다. 한 구두 공방에 의문의 상자가 배달된다. 벨벳 재질의 붉은 천으로 깔끔하게 포장된 상자에는 아름다운 구두 한 쌍이 들어 있었다. 마치 백조가 구두로 변신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근사한 구두는 하필 사이즈가 작았다. 이렇게 예쁜데 신을 수가 없다니, 며칠 밤잠을 설칠 정도로 안타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공방에 묘한 여자 손님이 찾아 온다. 맞춤 구두를 의뢰한 손님은 완성된 구두가 자신의 마음에 들면 추가로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제안한다.
분량이 길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임팩트있게 다가오는 이야기였다. 사이즈가 작은 구두를 신고자하는 나의 바람은 스스로 ‘내 인생이 걸린 욕망’이라고 할 정도로 간절해진다. ‘나는 반드시 이 신발을 신어서 나의 것으로, 나의 몸의 일부로 체화해야만 했다’는 문장에서 보여지듯이, 어떤 욕망은 기꺼이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쟁취하고 싶은 탐욕이 되고 만다.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다는 것이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그것을 위해 치른 대가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다면 말이다. 게다가 안데르센의 동화 속 ‘카렌’도, 이 작품 속 ‘나’도 주위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긴 하지만, 타인에게 어떤 피해를 끼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작품 속에서 탐욕은 부정적인 감정으로 그려지고, 나쁜 결말로 이어지긴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의 마지막이 조금 슬프게 느껴졌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상관없다는 순수한 욕망과 원하는 구두를 신을 수만 있다면 된다는 간절한 마음을 어쩐지 이해할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건 내가 타인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안데르센의 동화로부터 아주 멀리 온 어른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