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은 참 신기하다. 보기 전에는 대체 왜 볼까 싶은데 한번 보기 시작하면 중독되어서 계속 찾아보게 된다. 연속되는 야근과 힘든 일이 겹치면서 밥을 잘 먹지 못하게 되었을 때, 밥을 먹었다 하면 토하거나 급체해서 고통받는 끝에 아예 식욕마저 사라진 1달 정도 내 유튜브 채널 구독 목록에는 무수한 먹방 유튜버들이 있었다. 회 전문, 대식 전문, 노포 전문, 집밥 전문, ASMR 전문 등 카테고리별로 두세 명 정도의 유튜버들을 픽해서 출퇴근길이나 퇴근해서 머엉하니 보곤 했다. 그때 낙은 먹방이었고,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대방어 먹방’처럼 키워드 검색해서 걸리는 먹방을 보고 마음에 들면 구독, 좋아요를 누르길 반복했다.
바로 내가 ‘한때’ 먹방 러버여서 이 소설 <너의 죄를 사하노라>가 더 의미있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먹는먹기’ 채널로 인기를 끌던 유튜버가 고혈압 급성 심부전으로 사망했다는 짤막한 부고 공지와 댓글, 그 다음에는 사망한 유튜버의 중학교 동창이 유튜버에게 보내는 ‘편지글’로 구성되었다. 왕따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로 얽혀 있을 거라는 추측 정도는 할 수 있지만 정확히 그들 사이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는 사이, 그들이 ‘먹는 행위’에 집착하는 것은 ‘마음의 허기짐’ 때문일 거라 생각하게 됐다.
– 내가 그때 너에게 말을 걸어봤더라면 어땠을까?
– 그래, 너는 나에게 화상 같았어. 잊고 살아가고 싶어도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화상자국.
– 내가 준 돈으로 먹고, 내가 준 돈으로 저승에 가고. 우리 제법 사이좋아진 것 같지 않니?
스포일러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겠지만 이 문장만 봐도 느껴지는 감정이 있을 테다. 특히 ‘화상자국’이라는 표현을 읽으며 잠시 숨을 멈추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화상 자국처럼 남는다는 건 도대체 얼마나 큰 의미일까 하는 망연한 마음에서다. 학창시절을 겪은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때 가해자였고, 피해자였고, 방관자였다. 적극적 가해를 하지 않더라도 방관이라는 이름의 소극적 가해를 했기에 학창시절과 갈등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 속의 ‘연약한 스위치’를 건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소재다.
허나 그런 만큼 자칫 신파가 되거나, 익숙하게 그려지기 쉬운 이야기를 이 소설은 요즘 트렌드인 ‘먹방’과 ‘마음의 행위’, ‘먹는 행위’에 포커스를 맞춰서 새롭게 재해석하였다. 더불어서 서간체 형식으로 편지글을 쓴 ‘인물’에게 이입하게 하여 마지막까지 숨죽이게 읽게 했다는 포인트도 매력적이었다.
너의 죄를 사할 수 있을까, 단지 그가 죽었다는 이유만으로? 질문할 수 있을 테다. 그 궁금증은 바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풀린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트린 자가 스스로의 인생을 전시하고, 그 전시의 대가로 돈과 인기와 죽음을 얻게 되는 아이러니가 너무도 섬세하게 그려져서 마음을 묵직하게 하는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