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적인 역사의 큰 파도에 휩쓸리는 개인들의 시간을 미시적으로 다루는 작품들은 많다. 역사가 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주목하는 작품들. 에드워드 양의 걸작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이광모의 <아름다운 시절>, 이창동의 <박하사탕> 등등.
이런 작품들은 개인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밀고 개개인의 일상을 바라보면서도, 결국 현미경이 비치지 않는 바깥의 상황을 끊임없이 환기한다. 평온하게 흘러가던 누군가의 시간이 역사의 소용돌이를 만나 크게 일렁이고 하얀 거품처럼 부서지는 풍경들.
이 작품은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아픈 환부인 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다. 실제의 사건을 이야기할 때, 특히나 그 사건이 누군가의 아픔을 동반할 땐 매우 조심해야 하는데, 이 작품은 민감한 이 소재를 세심하고 사려 깊게 다룬다. 누군가의 죽음을 쉬이 다루지 않는다. 정말로, 이 작품은 그해 오월의 무수한 죽음을 단 하나도 보여주지 않는다. 상황과 반응만으로 유추할 뿐, 함부로 누군가의 죽음을 확신하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이 작품의 또 하나의 미덕은, 선과 악의 구분과 판단을 최대한 유보한다는 것이다. 그저 그날 거기 있었던 사람들이 너무나 평범하고 착했다는 것만 주지시킨다. 정치적 판단이나 분노를 표하는 대신, 희생자들의 평범함을 부각시킴으로써 비극을 극대화할 뿐이다.
어린이의 시선으로 제한된 상황만을 서술하면서 그 이면에 도사린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반추하는 이 작품은, 어린이의 천진한 일상과 어른들의 공포스러운 사건들을 나란히 병치하여 그 간극을 넓힌다. 비극의 분명한 징후를 그저 이상한 일로만 치부하는 어린이의 순진함이 되려 그 시절의 광기를 강조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살아남은 이들이 필연적으로 갖는 죄책감을 아이도 성인이 되어 품게 된다. 비극의 한가운데에 있었으면서도 그 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작별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그해 봄의 광주를 떠올리는 우리도 같은 감정을 머금게 된다.
그리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린 너무나 많은 죽음을 여전히 보고 있다.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의 죄책감도 차곡히 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