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Z의 사랑’을 읽는 내내 본인이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과 싸워야 했다. 제목부터 Z가 들어가서 당연히 좀비가 나올 줄 알았고 사랑이라길래 로맨틱한 이야기로 흘러갈 줄 알았다. 결론적으로 사랑이 넘치는 이야기지만 과정은 그다지 장밋빛이 아니다.
Z를 일컫는 로리엔 인과 지구인이 만나는 것이 작품의 시작이다. 여기까지도 로리엔 인이 바이러스를 뿌려 인류가 망하는구나! 멋대로 상상했다. 태그에도 종말이 들어가기에 당연히 좀비를 다루고 그들이 인류를 멸망시킬 거라고 착각했다. 하지만 본 작품은 그보다 훨씬 복합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본 작품은 현대 한국에서 가지고 있는 사회 문제-다문화 가정, 외국인 결혼 매매, 남여 갈등, 동성혼 등-를 새로운 종족, 로리엔 인을 데리고 와 그것에 대조하여 작품을 다층적으로 표현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관념들을 쭉쭉 발전시킨다.
지구에서 머나먼 행성 로리엔에서 로리엔 인을 성간결혼이란 목적으로 매매나 다름없이 지구로 끌고와서 억지로 결혼하는 모습은 외국인 결혼 매매를 떠올리게 한다. 그들을 데리고 온 남자들의 목적도 상당히 원초적이어서 작가가 드러내려는 주제를 확실하게 보여준다.
전개도 한 사람의 시선만 따라가지 않고 한남욱, 한남희,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부분)을 설명하는 그외 인물들, 다양한 시선을 따라가기 때문에 극에 처한 여러 상황을 다양한 방향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남욱과 한남희의 시선이 번갈아 나오는데 극의 긴장감과 호기심을 떨어뜨리지 않는데 한몫한다.
로리엔 인에게 부여한 설정도 흥미롭다. 로리엔 인이 가진 특성을 앞부분에 간단히 짚어주고 극에서 자세하게 풀어가는데 본인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로리엔 인이 가진 번식에 대한 단호함이었다. 이것은 극의 갈등을 높이고 극을 다른 국면으로 이끄는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통쾌하기도 했는데 그 이유는 읽으시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로리엔 인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집어 넣어 현실 문제를 반대 입장에서 보여주는 건 아주 좋았다.
다만 읽은 후에 이 또한 또 다른 고정관념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에서 보여주는 외국인 결혼 매매나 남여 갈등이 가진 문제는 부정적으로만 바라봤을 때 나오는 문제점이다. 물론 작품이 주제를 드러내려면 모호한 포지션을 보이는 것보다 한쪽 포지션을 잡는 게 더 낫다. 그리고 작품에서 그에 맞는 부연 설명과 설정을 가지고 있어 독자가 납득할 수 있지만 현실 문제를 다루는 만큼 현실을 완전히 외면할 순 없다. 현실에서는 극에서 설정한 가정과 반대되는, 정말 사랑으로 다문화 가정도 많다. 주영에 관한 이야기를 풀었던 것처럼 한남욱 가족에 대한 설정, 단순히 ‘그 시절 남편은 원래 그래’로 넘어가지 않고 그 가족만이 가지고 있는 서사를 부여했으면 다문화 가정 이야기를 건드렸을 때 조금 더 와닿지 않았을까 싶다.
남여 갈등 문제에서도 남성은 한결같이 가해자 포지션을 잡고 있는 것도 아쉬웠다.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 하나 같이 남성은 눈살이 찌푸려지는 행동만 하고 여성은 그 행동에 피해만 입는 수동적으로 그려진다. 남여 갈등도 다루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그리고 흐름대로 따라가지 않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주 작은 아쉬움이 들었다. 적어도 한남욱만큼은 쓰레기처럼 행동하는 이유가 설명되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매우 즐겁게 읽었다. 읽으면서 본인이 쓴 글과 비교할 수밖에 없었는데 비교하는 것이 죄송스러울 정도로 깊고 재밌다. 현실 문제를 다층적으로 바라보고 그것을 극으로 끌어와 자유자재로 다루는 이야기라 마냥 픽션이라고 가볍게 볼 수 없어서 좋았다.
마지막으로 이왕 이렇게 된 거 인물들의 서사를 늘리고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켜서 장편으로 발전시키는 건 어떨까 하는, 혹은 로리얼쓰 꼭지로 나온 기사들을 외전으로 써주시면 어떨까 하는 작은 바람을 남기면서 부족한 감상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