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우주 속 우리는 머나먼 행성에서 들려오는 존재가 혹여나 말을 걸어오지 않을까 하는 희박한 가능성을 놓지 못한다. 우주를 가득 메운 주파수를 인간이 들을 수 있는 가청 주파수대로 변환하여 행성의 노래를 들으며 잠에 빠진다든지, 우리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전파의 형태로 꾹꾹 정보를 눌러 담아 우주 저 너머로 날려보낸다든지 등의 행위를 통해서 말이다. 우리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존재를 원한다는 속성은 인간의 외로움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른다.
작품 ‘창공의 등대’에서 주인공 에르벤은 오래된 라디오와 전파 수신기의 부품들을 재조립해 외계에서 오는 신호를 수신한다.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것도 현재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나가는 건 정말로 따분한 일이다. 하지만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행위가 일상이 되고 늘 반복되는 신호를 듣는 것에 익숙해지다 못해 지루해질 때 즈음 오늘도 어김없이 아무런 성과가 없지만 그저 방 한 켠에 자리잡은 것만으로도 희망을 주던 전파 수집 장치에서 갑작스럽게 외계의 소리가 들린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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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기분은 어떤가요 먼 우주에서 듣고 있을 낯선 사람…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은데, 나중에서야 외계에서 온 문장을 한영키를 바꾸어 입력한 거라는 사실을 눈치채고 크게 웃었다. 나는 에르벤이 외계로부터 처음으로 받은 문장이야 말로 이 작품의 시그니처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 안녕, 기분은 어떤가요. 먼 우주에서 듣고 있을 낯선 사람… ‘
단 한 문장만으로도 이토록 감성적이고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당시의 에르벤은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다정한 주파수가 자신을 향한 교신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들이 보낸 신호가 단순히 정보를 배열한 것을 넘어서 배경음악처럼 흐릿하게 연주되는 아름답고 희귀한 선율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구형 카세트 테이프에 이 소리를 녹음하여 몇 번이고 돌려 듣곤 했다.
간혹 지구에 사는 그의 지인들이 그의 안부를 묻곤 했지만 그건 에르벤의 관심사 밖이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미지의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호의가 에르벤을 연구에 더 몰두하게 만들었고 그, 어쩌면 그들과 조우하는 날만을 고대하는 에르벤의 마음에 화답하듯, 수 개월에 한 번씩 외계로부터 새로운 메시지들이 도착했다.
늘 머나먼 우주에서 수신되는 주파수를 분석하던 지구인은 결국 해석을 완성했다. 그동안 골머리를 앓다가 어떠한 부분에서 영감을 얻고 단 두 주만에 해석을 성공적으로 해낸 그가 느꼈을 뿌듯함과 기쁨에 나까지 환호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안녕. 기분은 어떤가요? 먼 우주에서 듣고 있을 낯선 사람.
나는 데니즈, 먼 곳에서 이 신호를 보내고 있는 사람이랍니다…
머나먼 행성에서 들려오는 다정한 주파수에 마음을 빼앗긴 걸까? 그들의 물음에 노란빛의 환희로 가득 물든 마음으로 대답하던 에르벤은 신호가 출발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말을 걸어온 이들에게 닿고 싶은 마음은 커져만 갔고 결국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던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아 결국 오백만 광년이나 떨어진 행성으로 출발한다.
긴 시간 동안 잠들어 있다가 마침내 깨어나 지구와 같이 푸른 행성에 발을 디딘 지구인은 넘실대는 바다를 보고 자신과 같은 존재가 이곳에 자리잡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도 어렴풋이 알고 있을 것이다. 웜홀 기술과 냉동인간 기술을 발명했다고 해도 너무나 긴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을. 그래서 자신에게 말을 건넨 외계의 존재가 수명이 다해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글을 읽다가 두려워졌던 이유는 그들이 보낸 주파수가 사실 에르벤이 신호를 전달받기 한참 전에 쏘아진 것이며 애초부터 에르벤이 들은 것은 아주 오래 전 죽은 존재의 잔상일 뿐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빛의 속도로 오백만 광년이면 지구에 도달하는 것만으로도 오백만 광년이 걸린다. 그렇다면 신호를 받은 자는 오백만 년 전의 과거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이니 결국엔 그들의 신호가 죽은 행성에서 들려오는 라디오 소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에르벤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낡은 단말기에 이어폰을 연결해 아련하게 들려오는 익숙한 물음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그는 서툴지만 아주 오랜 시간 동안 품어왔던 대답을 돌려주었다.
아니, 이 행성에서 듣고 있을 낯선 사람.
자신이 한 말에 말에 알 수 없는 단어로 응수하는 존재의 소리에 에르벤은 화들짝 놀라 주위를 살핀다. 혹시 해저도시에 사는 존재들이 아닐까, 하는 바람에 그는 수중을 조사한다. 그리고 팔다리도 없이 꿈틀대는 검은 존재를 발견한다. 단말기에 연결되어 있던 이어폰이 빠져 오백만 년 전 자신들이 보냈을 질문이 행성에 잔잔히 메아리칠 때 지구인과 그 존재들은 알아차렸을 것이다. 그들이 찾고 있던 것은 바로 서로였다는 사실을. 그때의 감각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해삼의 모습을 한 외계 존재들과의 기적 같은 조우로 인해 아마 어린 아이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음마를 배우듯 서툴지만 콩콩 뛰는 설레이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등장인물들은 오죽했을까?
깊은 바다 속 수조 안에서 다시 깨어난 에르벤은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해삼들과 소통한다. 이 기묘하고 벅찬 감정은 그가 살면서 느꼈을 모든 감정들 가운데 아름다웠을 테다. 에르벤이 지구에 있을 때부터 그와 소통하던 해삼, 데니즈는 자신의 이름을 그에게 알려주고 에르벤이 그 음절을 나지막이 따라하자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비명을 지른다.
tptkddp, akqthtk!
세상에, 맙소사!
해삼들도 인간처럼 외로움을 타던 존재였을까? 그래서 광활한 우주에 있을 자신들과 비슷한 존재들을 찾기 위해 수백만 년 전부터 전파를 보내고 있던 걸까? 인간이 미지의 존재에게 느끼는 감정만큼 외계의 해삼들이 지구인에게 품었을 감정도 강렬했을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서로의 존재에 알기도 전부터 서로를 만날 날을 고대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마치 정해진 운명처럼, 이처럼 기적 같은 만남이라면 운명이라는 불가해한 단어조차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익숙하고 아름다운 주파수에 나른하게 잠에 빠져든 에르벤은 꿈을 꾼다. 거대하고 친절한 해삼들이 자신을 정성껏 돌보는 꿈을, 매일 포근한 해면 조직을 갈아주고 맛있는 것들을 먹이고 적당한 온도를 맞춰주며 그의 평생을 보살펴 줄 거라 믿었던 해삼들에게 둘러싸여 우주복을 입은 채 늙어가는 꿈을 말이다. 꿈이라 그런지 비현실적이면서도 아름다워 몽환적인 분위기가 흘렀다. 자신만 있던 수조에 점차 해삼들이 들어와 해삼 위에 해삼, 해삼 옆에 해삼으로 가득 차 결국 에르벤은 숨이 막혀 죽는 꿈을 꾸고 깨어났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에서 바다와 같은 짠맛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에르벤의 꿈은 비현실적이고 독특하지만 실제로 꿀 법한 몽환적인 내용이라 감성적이면서도 문장 하나하나에서 물내음이 물씬 풍겨오는 듯했다. 마치 수조에 있는 에르벤이 나인 것처럼, 그를 바라보고 있는 해삼들이 마치 나인 것처럼.
괜찮냐는 데니즈의 물음에 에르벤은 그렇다고 했다. 서툰 해삼들의 언어로 조약하게 아는 단어들을 짜집기 해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데니즈는 방금 전에 에르벤이 따라했던 자신의 이름을 그가 실제로 알아듣고 따라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는 눈치다.
tptkddpsk, 어떻게 dnflakf 할 수 있는 rjwl? 당신은 어디서 dhkTskdy?
세상에나, 어떻게 우리 말을 할 수 있는 거지? 당신은 어디서 왔나요?
당신을 위해 오백만 광년이나 떨어진 먼 행성에서 당신의 언어를 배우고, 결국 당신을 만나러 왔다는 말에 감동받지 않을 생명체는 없을 것이다. 만일 있다면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존재가 아닐까. 데니즈와 에르벤은 서로의 행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데니즈에게는 수명이 다한다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지만 높은 온도는 견디지 못해 뭍에서는 살지 못한다는 점과, 에르벤이 살고 있던 지구는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계절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또다시 잠에 든 에르벤은 데니즈가 나오는 꿈을 꾸게 된다. 맑은 하늘과 평화로운 풀밭에 깔린 돗자리, 그 옆에 쌓여 있는 공상과학 소설 몇 권과 ‘당신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뻐요.’ 라고 말하는 데니즈까지. 이런 게 사랑일까. 에르벤은 생각했다. 이런 게 어떻게 사랑이 아닐 수가 있을까? 오직 서로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수백만 광년을 날아왔는데. 하지만 야속하게도 꿈 속의 데니즈는 뜨거운 직사광선에 의해 점점 말라가다가 결국 죽게 된다.
꿈에서 깬 에르벤은 지금 자기가 바로 자신의 방에 있다는 걸 깨닫는다. 설마 이 모든 여정이 단지 백일몽이었을까? 책상에는 익숙한 노트와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가 있었다. 에르벤은 그 노트가 축축하게 젖어있는 걸 확인한다. 바다 냄새가 난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 옆에는 알 수 없는 막대 같은 게 있었다. 차갑고 축축해보이지만 막상 만져보면 표면이 말라있어 물기는 묻어나지 않는, 이상한 물체. 노트 마지막에는 해석할 수 없는 언어가 적혀있었다. 데니즈가 적어둔 마지막 인삿말이었을까? 에르벤을 지구로 돌려보낸 이유가 적혀있을지도 모르고, 함께 해서 즐거웠다는 다정한 말 한 마디가 적혀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에르벤도, 데니즈도 아닌 다른 이로 인해 마무리 된다. 항해를 하던 도중 선박이 벼락을 맞는 바람에 우연찮게 정박한 곳에 에르벤이 살고 있었고, 그는 등대에서 데니즈와 똑 닮은 해삼들을 키우고 있었다.
또 다른 화자를 불러와 타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끝맺기 때문인지 더욱 아련하고 여운이 남는다. 전설 같으면서도, 지어낸 설화 같고, 꿈처럼 몽환적이면서도 실제로 있었던 것 같은 이 아름다운 여정은 이와 같은 대사로 절정을 맞는다.
저 창공에는 바다가 가득하다오. 그리고 바다는 사실 창공과 다를 것이 없지. 바다에는 우주가 있고, 우주는 다시 바다라오. 내게는 그래. 저 어딘가는 새파란 바닷물이어서, 그 아래엔 나의 다정한 데니즈가 살고 있겠지. 나는 그가 베푼 다정을 내팽겨칠 수는 없었소. 그래서 내가 이곳에 머무는 거지. 그나마, 조금이라도, 그가 가까이 있는 것 같은 곳에.
제목이 창공의 등대인 것은 이와 같은 이유 때문일까. 어쩌면 지금도 에르벤은 저 하늘 너머에 살고 있을 해삼들과 다시 만날 날만을 고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기분은 어떤가요, 화면 너머에서 이 글을 읽고 있을 낯선 사람…
다정한 물내음이 물씬 풍겨져 나오는 이곳은 작품 창공의 등대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