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일상적 소재에 일상을 담아 따단!의 순간 만들기 비평 브릿G추천 이달의리뷰

대상작품: 40대에 마법소녀로 살기 (작가: 밝은 별, 작품정보)
리뷰어: 영선, 22년 10월, 조회 88

저의 오늘 리뷰도 자기반성을 위해 쓰고 있습니다. 저는 다른 분의 글에 이러쿵저러쿵 평가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자로…이하 생략. 제가 리뷰를 쓰는 이유는 이쯤 되면 상식이니까요.

 

(그게 뭔데 이놈아… 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이 링크를 타고 가셔서, 글의 앞부분만 보고 오시면 됩니다.)

 

제가 항상 쓰고 싶은 것은 드라마틱을 배제한 일상물입니다. 말하자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어째서인지 계속 행복한 독서를 이어 나가게 하는 스토리텔링…말이죠.

창작 시도와 실패를 겪어오면서 이것이 참 어려운 목표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만(그냥 제가 재능이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배운 것이 있다면, “드라마틱을 배제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란, 정말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저 평온한 풍경을 멋있는 문장으로 묘사한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간직되는 소중함이 있는 동시에, 늘 그대로일 것 같았던 것들이 달라지고 변화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주인공은 새로운 각오를 다짐해야 합니다.

 

물론 정말 어려운 도전 과제입니다. 이것은..

 

그럼에도 일상물의 맛이라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어서, 제가 우선적으로 추구해보려는 것은 “일상과 나란히 놓인 비일상”이 되었습니다. 이것도 제가 정말 좋아하는 접근법이에요. 그래서 일상물 기반의 어반판타지를 참 좋아한다죠.. 이런 장르에서는 비일상을 통해 일상을 바라보면서, 일상의 특별함과 사랑스러움이 도리어 강조되도록 할 수 있는 듯합니다. 일상인 듯 일상 아닌 세상을 살거나, 아니면 일상 비일상이 극명히 구분되는 가운데 그 사이를 오고 갈 수도 있습니다. 아마 이걸 성공해낸 작품들 몇몇이 떠오르시리라 생각합니다.

 

 

드라마틱을 아예 배제하는 것보다는 쉬울 것 같았지만, 저는 여기서도 실패를 맛봐야 했습죠… 대체 왤까나요. 비일상과 일상을 나란히 두면 자연스럽게 대조가 일어날 법도 한데요. 내가 쓴 일상이 매력이 없었나? 아니면 비일상 파트가? 그렇다고 한다면 그 이유는 뭘까요.

 

그래서 이번 작품, 저 자신을 돌아보기에 제법 괜찮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40대에 마법소녀로 살기』. 애초 마법소녀 장르가 “일상성과 비일상성의 대조”를 핵심 콘텐츠로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더구나 이 작품, 4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고, 주인공이 마법소녀가 되고 처음 하는 일이 배수로 청소인데다, 이웃들에게 보탬이 된 데서 보람을 느끼며, 여기서 이웃간의 온정이 오가는 장면이 나오는 등, 글쓴이가 일상성에 비중을 두려는가 보구나! 라는 인상이었거든요.

(제가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지, 작가님의 의도를 궁예질하려는 건 아닙니다.)

 

이번 리뷰는 비일상이 어떻게 구현되느냐, 그리고 그 곁에 놓인 일상이 어떻게 부각되느냐…가 중점에 놓이겠습니다.

 

우선 소재 측면을 생각해봅니다. 40대 + 마법소녀라는 것인데요.

 

우선, 제가 마법소녀 장르에 정통하지 않다는 점을 밝힙니다(좋아는 하지만). 따라서 본격적이고 엄격한 장르 논의는 못 합니다만, “몇몇 작품만 보고 피상적인 인식을 얻은 라이트 유저는 이 장르를 이렇게 파악하고 있다…”라는 점을 전달해드릴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파악하기로 마법소녀 장르는 초등학생3~5학년 정도를 핵심 타깃으로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 장르에 핵심적으로 담겨있는 욕망은 어른이 되고 싶은 여자 어린이의 심리 아니려나 생각합니다. 고전 작품 중에는 어른 모습으로 변하는 유형의 마법소녀물도 있었거니와, 변신 도구가 콤팩트나 립스틱 같은 화장도구(화장도구는 어른 여성의 도구라는 인식이죠. 요즘은 또 그렇지도 않은 모양입니다만)를 본뜬 디자인이라는 점을 근거로 들 수 있겠네요.

화장품 모양의 변신 도구로 어린이의 모습을 이탈한다는 점(메이크- 업! 을 하고 성인 여성 모습이 되거나, ‘어린이가 평소 입을 수 없는 의상을 입는 등)을 근거로, 마법소녀는 “어른이 되고 싶은 욕망”이 드러난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장르의 작품 수가 워낙 많고, 다양한 변종이 시도되고 있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어디까지나 라이트 유저가 대강 파악하고 있는 바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다 큰 어른인 40대가 어려지는 마법소녀물입니다. 아무래도 어른이 되어봤자 별 볼 일 없다는 어른들의 탄식이 반영된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음…저는 어렸을 때부터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별로 없었고(돌이켜보면 그게 문제였던 거 같기도 합니다만) 오히려 지금은 어린 분들에게 있는 건강한 몸과 ㅠㅠ 넉넉한 가능성이 많이 부럽더군요. 충분히 공감 가능한 욕망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변신한 모습이 20대 청년으로 설정되어있는데요, 사실 20대면 이미 마법소녀 장르가 욕망하는 어른에 해당하는 나이이지 않나 싶긴 해요. 10대 초반 어린이나 40대 중후반 어머님이나 동경하는 나이대는 20대 정도라는 뜻일까요?)

요게 이 작품의 이야기 전개를 위한 연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 들어 ‘예쁘지 않게 된’ 주인공에게 갑자기 가능성이 주어졌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활용하는가(약간은 회귀물이나 책빙의물의 스토리 진행 연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죠)?

 

“어린이 마법소녀와 어른 마법소녀(청년)”의 차이점이 뭔지, 좀 더 파고들기 위해서는 마법소녀라는 소재 자체에 좀 더 집중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이 장르를 획일적으로 묶을 수야 없지만, 가볍게 즐기는 사람 입장에서 마법소녀 소재는 다음을 포함하고 있다는 인상입니다.

 

-마법소녀는 일상과 비일상 세계를 중재하는 무녀와 같은 존재.
– 비일상 세계는 일상 세계에 치명적인 위험을 가할 수 있지만, 비일상 세계를 아는 건 마법소녀와 극소수뿐.
– 비일상 세계의 존재가 일상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평범한 소녀인 주인공은 마법소녀로 변신해 이를 해소한다.
– 평범소녀/마법소녀의 이중생활을 유지하는 데서 오는 서스펜스가 종종 조명 됨.
– 마법소녀의 막중한 책임이 어떤 식으로든 주인공을 압박
– 비일상으로부터 일상의 평화를 구한 다음, 마법소녀는 어디에서 보람을 느껴야 하는가?
– 보람을 느끼지 못한다 한들, 마법소녀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비극적인 파멸이 기다릴 것.
– 마법소녀 코스튬과 아이템 있음.

 

계속 반복설명드립니다만 저는 이 장르를 깊이 공부하진 못했습니다. 그래도 한동안 이 장르 패러디물이 봇물을 이루었을 때(아마도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가 대성공 했을 즈음이 아닐까 합니다) 파악하게 된 바를 위와 같이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40대에 마법소녀로 살기』에서는 위 요소들이 거의 대부분 없습니다. 팔찌라는 아이템은 있긴 하지만 코스튬은 달리 없는 것 같고, 삐링~ 하고 등장하는 상태창(K-장르문학의 필수요소일까요?)의 역할은 보통 마스코트 캐릭터가 해야 할 일일 것 같지만 귀여운 동물 캐릭터도 없네요.

무엇보다, 주인공이 마법소녀가 되는 시점에는 세상을 위협하는 비일상의 존재가 제시되지 않습니다. 요컨대 마법소녀 주인공이 전담하여 처리해야 하는 트러블(크로우카드, 마녀, 큐빅 등등…)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안경남도 “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고, 주인공도 배수로 정리 같은 걸 하는 거겠죠… 이 작품에서는 그나마 마법소녀 조직이 의심스러운 비일상 세계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작중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하는 건 순전히 작가님 마음이지만, “그렇다면 왜 하필 마법소녀일까?”라는 의문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어떤 점에서 보면 이것이 소재의 무서움 아닐까요? 소재는 독자에게 특정한 기대감과 예측을 일으키고, 이걸 어떻게 충족시키고 어떻게 배신하는지가 작가의 고민거리라는 것…

 

혹시? 마법소녀물의 요소들이 생략된 까닭은 통상의 마법소녀물과 이 작품에 반영된 욕망의 차이 때문일까요? 즉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의 욕망”과 “아이가 되고 싶은 어른의 욕망”의 차이점 때문에 발생한 일일까요?

 

이 점을 궁리해보기 위해, 다시 어린이 마법소녀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일상과 비일상의 무녀 역할” “마법소녀가 뭘 하는지 대부분은 잘 모른다” 라는 요소는 “어른 되기 욕구”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거든요.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 어린이 입장에서 어른들이 사회에서 뭘 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잘 모릅니다(엄밀히 말하면 어른들도 다른 직군의 사람들이 세상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이 출근하여 뭔가 한다는 것 자체를 동경합니다. 어른들이 출근해서 뭘 하는지 잘 모르니까, 그만큼 더 대단하게 느껴지는 점도 있을 것입니다.

아침에 부모님이 출근하여, 구체적인 건 모르지만 세상의 유지를 위해 뭔가 일을 하고 퇴근하는 것, 이것은 마법소녀가 변신하여 세상의 유지를 위해 뭔가 하고, 다시 일상 세계로 복귀하는 것과 닮았죠. 마법소녀가 되는 상상이란, 어른들이 직장에 출근했다 돌아오는 과정을 모방하고 싶은 욕구가 반영된 것이면서, 기왕이면 재미있는 동화적 상상력을 발휘해보는 것 아닐까요? 아니, 어쩌면 어른이 뭘 하는지 구체적으로는 모르니까, 그 빈 부분을 동화적 상상력으로 채우는 것일지도요. 어른의 행동을 모방하는 어린이들의 놀이에서 연장된 욕구가 상상력과 융합된 스토리 구성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럼 마법소녀의 출퇴근 과정은 어린이들에게 어떤 만족감을 주는 것일까요? 제 생각에는…아마도 “마법 소녀가 되어 출근하면, 나는 무력한 어린이를 벗어난다. 나는 내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다. 나는 내 역할을 해내고 자아실현의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아닐까요. 더구나 마법소녀는 남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일을 해냅니다. 즉 마법소녀에 투영된 욕망이란,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전문가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감과 고뇌도, 어린이들에게는 멋진 동경의 대상일 거고요(어린이들에겐 고민에 빠진 어른도 참 멋져 보이겠죠).

핵심 요소를 다시 추출하자면 “무력함으로부터의 탈출” “나의 역할을 해 내는 사람 되기” 일 것 같습니다.

 

주절주절 말만 많은 저의 악습 때문에 먼 길을 돌아왔는데, 그럼 어른에서 어린이로 변신하는 마법소녀는 어떨까요?

 

앞서 언급 드렸지만, 이 작품에는 제가 정리한 마법소녀 장르의 요소가 거의 없습니다. “이중생활의 유지”정도만 있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제가 가장 의아하게 여겼던 것은 마법소녀로서 처리할 임무가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마법소녀의 소임이 부재한 상태에서 주인공은 “프렌들리 네이버후드 외국인 여성”이 될 뿐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왜 하필 마법소녀?”내지는, “마법소녀 소재를 썼으면서 왜 활용하지 않는가?” “제목에 마법소녀가 들어가도 되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왜 장르 규칙을 따르지 않느냐고 타박하려는 건 아닙니다. 계속 반복 강조하지만 제가 이 장르에 정통한 인간도 아니고 피상적인 인상만 가진 터인걸요. 설령 제가 정리한 내용이 100%정답이라 한들 장르 위에 작품 있지 작품 위에 장르 있겠습니까. 정작 중요한 건 작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말해 귀여운 동물 마스코트를 안경남과 상태창이 대신해도 상관 없습니다. 사실 마법소녀가 아니라 (연령상)마법청년이지만, 코스튬도 마법도구도 없지만, 그렇다고 마법소녀를 타이틀에 걸지 말란 법은 없습니다. 마법소녀 대신 선녀 마녀 에이전트 등등 다른 이름을 지어줄 수도 있었겠지만, 작가님 판단에 마법소녀가 좀 더 눈에 띄겠다 싶으면 그럴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마법소녀의 소임이 없다는 설정은 신경이 좀 쓰입니다. 사실 코스튬이나 도구 같은 건 완구회사의 농간으로 정착된 장르 전통이라 치더라도, 제가 파악하는바 마법소녀물의 핵심 콘텐츠는 “임무”가 아닐까 싶거든요. 설령 마법소녀와 계약한 동물 마스코트(혹은 안경남)이 “너는 ~~을 해야 해”라고 제시하지 않았더라도, 일상 속에서 “자기가 해낼 수 있는 일을 발견하는 과정”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기왕이면 마법소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어야 이야기가 성립될 것 같고요. 마법소녀의 소임이 있어야만 “나만이 할 수 있는 전문 직능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심지어, 작중 주인공의 능력 레벨 업으로 세상의 어두운 사건들을 보게 되고 뭔가 하려는 찰나, “하지 마십시오”라는 말에 “네에..”하고 정말 아무것도 안 해버리는군요..)

요컨대 이 작품에서는 마법소녀만의 전문성이 부각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마법소녀가 되어, “무력한 나”를 벗어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내면서, 그 과정에서 괴로운 고뇌를 견뎌 내고, 비일상 세계 뿐만 아니라 일상 세계에서도 성장해가는 전개는 꽤나 감동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결국 어린이가 어른으로 자라나는 공간은 일상 세계이기에, 일상과 비일상의 교차를 다루는 마법소녀물은 어린이들에게 (그리고 어른들에게도) 던지는 메시지가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는 흔한 마법소녀물의 중요 요소(=마법소녀에게는 임무가 있다)가 빠졌고, 그 중요 요소 덕분에 발생하는 이런저런 스토리텔링도 빠졌는데, 그래서 그 대신에 제시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것을 고민해보았습니다. 지난번 폭우 때 배수구 영웅 몇 분이 언론을 타셨는데, 고런 느낌의 “우리 이웃 마법소녀”를 만들어보고 싶으셨던 것일까요?

 

결코 작가님에게 뭐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저의 리뷰는 타인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을 향한 반성…그러니 이 시점에서 저는 저 자신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드라마틱이 없는 이야기라 함은 과연 달성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치명적인 질문 말이지요.

 

내가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할 때, 주인공은 어떤 처지에 놓이는가? 허허벌판에 놓인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변화를 겪게 할 것인가?

 

바로 이 때, 주인공의 입장을 정해야 하는 작가인 나는 고민하기를….

 

나는 비일상과 대비되는 일상을 어떻게 설정해두었던가? 주인공이 보는 풍경은 어떤 모습인가? 그것이 주인공의 세계관을 어떻게 설정하는가? 그곳에 주인공이 미워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배치되어있던가? 주인공이 무의식중에,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자동적으로 처리하는 일들은 무엇인가? 그 자동적으로 처리하던 일을 불현듯 멈추게 하는 사건은 무엇인가. 자동 기재가 멈추었을 때 주인공이 목격하는 것은 무엇이며, 그것이 주인공의 마음에 어떤 파문을 일으키는가? 주인공은 무엇에 질려버렸는가? 주인공은 자신의 무엇을 싫어하는가? 주인공은 무엇에 체념했는가? 주인공이 무심해져버렸지만, 사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으로 무엇을 설정해 두었나? 그 무심했던 것에서 주인공이 뭔가 낯선 것을 발견하는 순간을 마련해두었나?

주인공은 일상과 비일상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두고 있나? 비일상은 주인공에게 어떤 과제를 내리고 어떤 보상을 제공하는가? 비일상 세계에서의 모험이 한창 재밌게 전개되는 가운데, 일상 세계는 어떤 필요에 의해 부각되어야 하는가? 비일상은 일상의 어떤 점을 반영하고 있는가? 주인공은 비일상을 통해 일상의 무엇을 바라보는가?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 있는가? 그 경계가 무너질 때 주인공에게 어떤 충격이 가해지는가? 주인공이 그 경계를 깨는가? 아니면 경계가 깨지는 순간을 감당하고 책임져야 하는가?

사람들은? 일상 세계에는 누가 있는가? 비일상 세계에는 누가 있는가? 양측 세계의 인물들은 서로와 어떻게 만나고 간섭하는가? 주인공이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할 순간이 있는가?

 

주인공이 계속해서 뭔가를 하고, 아슬아슬한 액션과 위기가 빵빵 터지더라도 독자에겐 호소력이 미약할 수 있는 법입니다(『천사들의 시체』 1부 「미성년 라이더」를 쓰고 리뷰 두 편을 받은 뒤 처절하게 느낀 점..). 각 잡고 문장을 꾸며 일상 풍경을 묘사한다 한들 신카이 마코토식 배경화가 독자들의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아닙니다(글 쓰는 사람 머리에만 떠오릅니다… 처절하게 망한 『조별과제 수업 수브니에』를 쓰며 배운 점…).

지난 세월의 실패작들이 떠오르며 마음이 아파옵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40대에 마법소녀로 살기』에는 정말 놀랍고, 영감을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마법소녀들이 원래의 쇠락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환상이 깨지는, 갑작스런 정적의 순간이 보인다고나 할까요. 나이든 여성의 모습에다 “쇠락”이라는 수식어를 써도 괜찮을지 좀 고민했습니다만, 어린이 마법소녀나 어른 마법소녀나 자신의 본래 모습은 마법소녀 모습보다 한 등급 낮은 불만스러운 모습일 테니까요. 본래 모습은 마법소녀와 달리 강력한 힘도 없고 한계에 붙들린 모습이죠… 문제는 자신을 쇠락했다 여기는 그 불만이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주느냐겠죠.

 

『40대에 마법소녀로 살기』는 마법소녀 조직의 비밀에 접근해가며 이야기의 텐션을 만들어갑니다. 주인공보다 더 복잡하게 설정이 짜인 조연 마법소녀들의 사정이 소개되고, 주인공이 여기 얽히는 과정을 보고 있으려니, “별달리 설정도 없는 우리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죠?”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듯도 합니다. 주인공이 4호 소녀와 노닥거리는 22화에 이르러서는 새삼 이런 고민이 들었습니다. 이건 그냥 제 짧은 단상이라고 봐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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