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마을을 강타해 순식간에 동네를 둘러 싼 탄천이 불어났고 위태롭게 놓여 진 다리 마저 물에 잠기고 있었다. 모두들 마을을 빠져나가기 위해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비는 점차 세차게 내리고 있었고, 귀청이 찢어질 것만 같은 천지가 갈라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며, 거센 물바람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둑이 무너져 물이 들이닥쳤고, 근처에 있는 집들이 거센 물살에 휩쓸렸다. 은화는 겨우 물을 헤치고 자신의 집 옥상 계단을 오른다. 거친 물살에 겨우 난간을 붙들었고, 흙탕물을 사정없이 들이켜며 간신히 올라가고 나서 정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깨우는 목소리에 겨우 정신이 든다. 처음 보는 낯선 남자다
“소용없어. 지금 주위에 아무도 없어. 아가씨와 나 뿐이라고.”
남자의 그 말이 날 더 무섭게 했다. 이 사람, 마을 사람이 아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오빠.. 동네 사람들의 모습은 어둠 속에서 전혀 보이지 않고, 주위는 물에 잠겨 있고, 옥상에는 낯선 남자와 나뿐. 날이 밝을 때까지는 꼼작없이 그러고 있어야 할텐데.. 얼마나 오싹할까. 게다가 그 남자 기분 나쁜 웃음을 흘리며 혼자 이상한 이야기를 주절댄다. 홍수의 손아귀를 피해 가까스로 살아 남았지만, 사면이 물바다인 그곳, 갇혀 있지 않지만 마치 밀실과도 같은 그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남자와 단 둘이라면.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키득거리며 기괴한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하고, 한 치 앞의 사물을 구별하기도 힘든 시커먼 어둠 속에서 은화는 모골이 송연해지는 느낌을 견디며 버틴다. 대체 이 남자의 정체는 무엇이며, 은화는 결국 날이 밝을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사라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된 것일까.
짧은 이야기였지만 매우 임팩트가 강한 작품이었다. 자연재해를 다루고 있는 수많은 작품들을 겪어 왔기에, 이런 설정으로 단편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뛰어난 묘사로 상황에 몰입도를 높여주어 단편으로도 충분히 공포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더 확장시켜 장편으로 만들어도 좋다고 생각이 들만큼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했다. 복잡한 설정과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한정된 공간과 상황에서 이렇게 공포감을 느끼게 할 수도 있구나 싶어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