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 이 리뷰는 스포일러가 강합니다.(글을 읽고 보시는 걸 권합니다.)
작품 소개입니다.
– 좀비가 된 아내를 돌보던 남자는 마침내 아내의 비밀을 알게 된다. –
그 비밀이란 건 무엇일까요?
꼭꼭 숨기다가 좀비가 되어서 결국 드러나 버린, 주인공이 알게 된 비밀.
좀비는 본능에 따라 움직입니다. 뭐 물론, 물고 뜯고 즐기는 본능이겠죠. 그리고 아내가 좀비가 되어서야, 돌보던 남자 즉 화자는 아내의 비밀을 알게 됩니다. 그 비밀이란 뭘까요?
당연히, 화자가 알면 안 되는 거겠죠.
그러니까 아내는 화자에게 비밀로 했겠죠.
등장인물은 화자와 아내, 그리고 준수로 추려집니다.
준수는 대학 때 친구인데, 화자는 그를 그다지 친구라기보다는 일종의 아는 놈, 그리고 자기 아내에게 집적대던 인간으로 기억합니다. 원체 잘 사귀고 있는 커플을 훼방 놓는 이는 항상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일종의 연적인 셈인데, 아내와 준수 단 둘이 술을 마시던 동아리 방을 급습하여 분노했을 때, 아내는 의미 모를 말을 합니다.
[본문중에서]
한 번은 준수가 영이를 동아리 방으로 불러낸 적이 있었다. 내가 그 얘기를 듣고 달려갔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 무렵이었다. 걷어차다시피 동아리 방문을 열어젖히자 서너 평 남짓한 방 안에는 준수와 영이, 둘뿐이었다. 방 한 켠에는 아직 물기도 마르지 않은 소주병들이 늘어서 있었다.
“둘이 지금 뭐 하는 거야?”
화를 삭이며 내가 물었을 때 준수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침 잘 왔다. 치킨 시켰는데 같이 먹을래?”
그제야 사태 파악이 된 건지, 영이는 내 눈치를 살피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가자.”
나는 단박에 영이의 손목을 잡아끌고 나왔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 불빛 위를 우리 두 사람의 그림자가 빠르게 지나갔다.
“난 몰랐어.”
화자는 모릅니다. 도대체 뭘 몰랐다는 건지. 준수의 속내인지, 내가 나타날 줄인지를.
이 부분에서 눈치가 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 수도 있습니다. 해가 저물 무렵까지, 단 둘이서, 소주병들이 늘어서 있고, 내 여자는 눈치를 살피며 불안해합니다. 몰랐다고 발뺌합니다.
당당하다면 이런 반응을 보일 리가 없겠죠.
그렇습니다. 화자의 아내는, 아내가 될 사람은 이미 결혼 전부터 양다리였던 겁니다.
준수는 그 날 이후 잠적합니다. 평범한 후배와 결혼했다는 소식도 들려요. 준수의 아내는 좀비가 되어 사라집니다. 준수가 격리시설에 신고했죠. 화자는 그런 그를 증오합니다. 자기 아내도 버리는 매몰찬 놈 하고.
하지만, 그들 본능에 따라가 보죠.
화자는 아내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사실, 이미 그녀가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이 정(애가 아닌)이라는 걸 눈치 채고 있다고 봤습니다. 동아리 방에서 일어난 위의 사건을 보고도 화자는 그냥 몰랐다, 그녀가 뭘 말하려는 건지 로 넘어갑니다. 그건 일종의 ‘관계를 잃고 싶지 않은’ 처사입니다. 엄청 오래 사귄 그들은 이미, 누가 뭐라 할 거 없이 밍숭 맹숭한 결혼식과 함께 부부가 됩니다. 퉁명스럽게, 혹은 우리 눈빛만 봐도 다 아는 사이 아니야 하며 지내오던 화자는, 아내가 좀비가 되어서부터 자신이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을 계속, 인지하려 합니다. 위 첫 문장 정정할게요. 화자는 아내를 사랑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녀를 격리시설에 안 보냈어. 적금도 깨고 해외에서 약도 샀다고. 그녀만 깨어나면 돼. 누구처럼 지 아내를 신고하고 죽게 놔두진 않았어.
누구? 준수요.
준수가 왜 자기 아내를 좀비가 되자마자 격리시설에 보냈을까요? 물론 그가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준수는 자신의 아내가 아닌, 화자의 아내를 사랑하니까요. 연락이 안 된다며 화자를 찾아옵니다. 그리고 서로 만나고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얼마나 사랑했으면! 물론 화자의 분노에 겁을 먹고 미안하다고 거짓말이라며 달아납니다. 웃겨요.
만약 화자의 아내가, 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평소의 아름다운 외모의 사람으로 있었다면 달아났을까요?
아니, 찾아가지도 않았겠죠. 그 둘은 화자 몰래 만나고 있었을 겁니다. 들킬 때까지.
준수는 그녀가 좀비가 되자, 결국은 달아나고 맙니다.
그리고 후회 하겠죠. 내가 그녀를 버렸어. 지켜주지 못 했어. 왜 이렇게 유추할 수 있냐고요? 원 남편과 같이 사는 집에까지, 그녀와 연락이 안 된다며 찾아왔다는 거 자체가, 준수라는 인간이 화자의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나타내 주고 있는 겁니다. 그럼요.
화자인 주인공은 어찌 될 까요? 꽃병에서의 복선으로, 그는 이미 아내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눈치 챕니다. 그래도 그는 꿋꿋하게 그녀를 보살피려 합니다. 참 웃기게도
[본문중에서]
“거짓말이지? 그냥 우연의 일치인 거지?”
내가 물었다. 좀비가 되어버린 아내는 대답이 없었다. 그래. 이제는 나도 영이를 이해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다. 먹고 소리 지르고 할퀴다가 잠이 드는 것. 그게 아내의 전부다. 나는 그녀를 도와 먹이고 달래고 대우면 그만이다. 늘 해왔던 대로 나는 그녀를 사랑하면 된다.
그대로 해왔던 대로 그녀를 사랑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조합니다.
정말 화자는 그녀를 사랑했을까요? 우리 예전에 좋았잖아.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닐까요? 이미 결혼 전부터, 화자는 내심, 눈치 채고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결국 결혼함으로서 화자는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에 그런 표현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이게 사랑일까요? 화자는 이게 사랑이라고 믿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럼 화자의 ‘아내’는요? 좀비가 되어서 물어뜯으려 하고 소리 지르려 하는 반 시체가 되었습니다. 뭐 해외에서 개발 중인 신약을 투여하면 사람으로 돌아올 수도 있겠네요. 그러고요? 그리고요? 준석이 찾아온 것과, 꽃병, 이 모든 것 들을 그녀는 어떻게 설명할까요? 그녀가 돌아와도 우스워 지네요.
결국 그녀는 이대로, 좀비가 되어 사라지는 게 나을 겁니다.
이 소설은 참으로 비극적인, 모두가 파멸하는 내용입니다.
결국, 본능에 따라 이들 모두는 괴로워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애정이든, 정이든, 시기든, 질투든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왜 작가님이 작품 분류에 호러도 스릴러도 기타 일반도 아닌, 오로지 로맨스에만 클릭했는지 이해가 가네요.
우울해지네요. 로맨스이나 전혀 로맨틱하지 않아요.
좀비같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닌, 정말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실적인 공포 소설입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