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가득한 리뷰입니다. 먼저 작품을 읽고 리뷰를 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줄거리와 의견이 섞여 있어 일일이 스포일러 표시를 하지 못 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환향’은 살인범의 목숨을 피해자의 목숨을 맞바꾼다는 신선한 설정의 SF입니다. 초반에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한지에 대해 제시되지 않지만 뒤로 가면 서서히 드러나는데, 사람들이 ‘금의’라고 불리는 나노봇이 들어있는 주사를 맞으면 죽은 뒤에 살려낼 수 있고, 이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결정이 내려지면 금의를 활성화하여 살려내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걸 ‘환향’이라고 부르고요. 피해자가 환향하면 살인범은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살인 사건을 접하게 되면 피해자와 피해자의 가족과 친지들이 느낄 울분에 공감하여 저 죽일 놈을 죽여서 죽은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심정을 느끼게 되지요. 그걸 현실로 만든 소설입니다.
소설은 이렇게 뚜렷한 설정을 가지고 출발하고, 환향이라는 제도에 문제가 있어서 주인공과 주변인들이 그걸 해결하는 방향으로 달려가면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주인공 범수는 자신의 일에 과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으며 원칙대로 행동하고자 하는 성격이고, 마이실과 소하나는 환향 제도의 피해자로서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한이 있더라도 이 제도의 문제점을 밝히려고 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의 계획에 따르면 마이실은 자살을 조력하고 소하나는 훗날 선정관이 되어 자살자를 환향시킵니다. 따라서 범수와 마이실이 충돌을 일으켜야 할 것 같은데 소설에서 그러한 장면은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범수가 조사보호관이 되기 전에 마이실이 모든 일을 저질러놓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범수가 실질적으로 갈등하는 인물은 마이실이 아닌 소하나입니다. 소하나는 범수가 작성한 보고서를 참고해 누구를 환향시킬까를 결정하는 선정관이죠. 범수는 마이실과의 상담 후에 소하나에게 저의가 있음을 알게 되고 자신의 보고서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 할 거라는 의심에 빠집니다. 그렇지만 그걸 확인하거나 제재할 권한이 없고요. 그리고 마침내 소하나는 제도의 허점을 밝혀내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자신이 제도를 악용하여 만천하에 제도의 허점을 드러냅니다. 부모가 환향을 원치 않는 주세영이라는 자살자를 되살려낸 거죠. 이 소설에서 가장 흡인력이 높은 부분입니다. 소하나가 저지른 일을 보고 범수는 좌절과 분노를 느낍니다. 이후 범수는 자식의 환향에 실패한 반 회장과 차 씨 부부, 동생의 환향에 실패한 은우 등과 갈등(그들이 소하나를 납치해 해치려 하고 범수는 그걸 막으려 함)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소하나를 구하게 됩니다. 이후 환향 제도의 불합리성에 실망한 범수는 일을 그만두고 개인사무소를 차려서 사람들을 돕고자 하면서 이야기가 끝납니다.
참신한 소재와 사람의 목숨을 되살려낼 권리가 과연 사람에게 있는 것인가 하는 주제의식과 다양한 캐릭터들의 향연, 섬세한 심리묘사 등으로 인해 적사각 작가님의 장편 SF 창작의 저력을 보여준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과 의문점이 있어 그 점을 보완하면 더 좋은 작품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아쉬운 점을 말씀드려보자면, 먼저 사소한 것부터 말씀 드리겠습니다. 금의환향이라는 단어에 대해서입니다. 이 단어는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금의를 입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과연 소설 속에서 살인피해자가 살아 돌아오는 게 그 금의환향이라는 이미지와 잘 맞는지가 조금 의문이네요. 피해자가 어떤 성과를 이루고 그것에 대한 대가로 환향을 하는 게 아니니까요.
그 다음은 묘사의 밀도입니다. 제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지루함을 곳곳에서 느끼곤 했는데 그 부분이 어디인지를 몇 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화 국밥집에 대한 묘사 (장소의 묘사 및 국밥 주문하는 장면)
2화 카페에 대한 묘사 (장소의 묘사 및 커피 주문하는 장면)
4화 조부장과 드라이브 장면, 경무관 찾아가는 장면
5화 연계 수사과 실내 묘사 장면
7~8화 공항으로 가는 장면, 제주도로 내려가는 장면, 반 회장 만나는 장면
등등입니다. 범수가 일의 특성 상 여러 곳을 이동하게 되는데 범수가 머무르는 곳, 무엇을 어떻게 타고 이동하고, 누구를 만나서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가 과다하다 싶을 정도로 상세하게 묘사돼 있습니다. 사실 국밥집과 커피숍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냥 국밥집에서 국밥을 시켰다, 카페에서 카페를 시켰다 정도로 한 두 문장만 써도 됩니다. 독자들은 국밥집과 커피숍을 이미 많이 다녀봤으며 ‘휴리스틱’이라는 인지 과정을 통해 국밥을 시켜먹었다, 커피를 시켜 마셨다라는 문장 하나로 그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일시에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공항으로 가는 장면이나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내려가는 장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비행기를 타 보지 않은 독자도 간단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 매체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아왔으니까요. 따라서 각 장소와 이동에 관한 묘사는 그것이 플롯과 긴밀한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굳이 상세히 묘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독자에게 지루함을 안겨주기 때문입니다. 앞서 다른 분들 리뷰에서 마이실이 등장하기 전까지 회차가 너무 길다라는 의견이 많았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 묘사들 때문입니다. 제가 위에 언급한 회차를 살펴보시면 저 회차 중에서 실질적으로 플롯이 진행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범수가 환향 후보 보호자를 몇 명 만나 면담하고 경무관을 만나 이상한 요청을 받고 반다한 회장을 만나는 것, 이게 다인데 이게 무려 8회(전체 분량의 약1/7)에 걸쳐 진행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회차는 플롯 진행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장소나 이동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뿐 아니라 대사의 상당수도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들입니다. 국밥을 뭘 달라거나 커피를 뭘 달라거나 하는 대사들 말입니다. 저는 이 대사들을 보면서 국밥집 주인과 카페 주인이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가? 저 대사들 속에 무슨 중요한 의미가 숨겨져 있는 건가? 했는데 전혀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소설의 중후반으로 향할수록 이런 불필요한 밀도 높은 묘사는 줄어드는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소설 초반에 속도감 있는 진행을 원하신다면 저런 묘사들의 밀도를 확 낮추고 불필요한 대사는 제거하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지금 분량이 거의 1500매 가까이 되는데 요즘 출판 경향을 보면 단행본으로 내기에 너무 긴 분량이라 생각합니다. 전체 플롯에 비해서도 길다고 느껴집니다. 묘사의 밀도를 높이는 것은 플롯 상 주요한 부분에서만 해야지 소설의 모든 장면의 밀도를 높이면 분량이 쓸데없이 길어질뿐더러 독자는 지루함을 느끼게 됩니다. 밀도의 강약조절은 흡인력을 끌어올리는 주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을 말씀드리자면 범수라는 캐릭터입니다. 저는 사실 이 캐릭터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에서 가장 매력이 떨어지고 평면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도대체 범수는 왜 이렇게 이 일에 책임감을 지니고 있는 걸까요? 물론 어릴 때 소하나가 환향해서 소하나의 미소에 반했다는 언급이 스치듯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 하나만으로는 이 일에 저토록 매달리는 걸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우리는 보통 저렇게까지 일을 열심히 하지 않지 않나요. 특히 월급 생활자들은요. 조 부장이 엄청 다그치는 걸로 나오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범수 스스로 뭔가 일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생활에 대한 묘사가 없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집에 가서 쉬고 친구 만나고 이런 장면이 전혀 없어요. 그래서 사생활을 다 바쳐가며 일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근데 독자의 입장에서는 도대체 왜 범수가 그런 강박을 지니게 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범수가 느끼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이 잘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좀 더 범수의 강박감을 이해 가능하게 만들 장치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테면 신입 시절에 자신이 면담을 잘못했거나 보고서를 잘못 써서 충분히 환향할만한 사람이 환향을 못 하게 되어 그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거나, 아니면 진짜 완전 신입이어서 부장이 닦달하는 대로 순진하게 구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하는 것 같은 상황들 말입니다. 사실 이 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마이실입니다. 마이실이 사람들의 자살을 도와서 스스로 연쇄살인범처럼 보이게 만들어서 이 제도의 허점을 밝혀내려하는 점이 저는 충격이었습니다. 그 반전이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마이실이 중반에 죽어버리므로 이 모든 과정을 아우를 수 있는 주인공으로 범수를 선택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범수는 주인공보다는 관찰자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인 욕망이 무엇인지 느껴지지 않고 그저 사건이 벌어지는 대로 따라가기에 급급해 보입니다. 범수가 뭔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소하나를 대신해 칼을 맞을 때 말고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작가님이 작가의 말에서 언급하셨듯이 원래는 소하나가 비밀을 밝히는 부분에서 소설이 끝났지만 이후 덧붙인 스토리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제가 처음 버전의 소설을 읽었다면 도대체 범수는 하는 일이 뭔가, 왜 스토리에 질질 끌려 다니기만 하는 이 캐릭터가 주인공인가 하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버전에서도 독자가 범수에게 좀 더 매력을 느껴야 소설의 흡인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범수는 너무 착하고 모범적이기만 해서 큰 매력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차라리 소하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습니다만 거기까지는 주제넘은 참견 같아서 말을 줄이겠습니다.
그 다음에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낀 의문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이야기에서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돈을 내면(일시불인지 다달이 내는 건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금의라는 나노봇을 몸에 주입하고 나중에 혹시라도 살인을 당해 환향이 결정되면 나노봇을 통해 되살아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여기서 일단 드는 의문은, 왜 금의는 살인 당한 사람만 살려내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병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확률로 따지자면 사람이 죽을 확률은 병이나 사고가 살인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큰돈을 내고 금의를 주입하는 게 만에 하나 자기가 살인을 당할 경우, 그리고 선정기관이라는 좁은 문을 통과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그 낮은 가능성을 보고 한다는 점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고로 죽어도 되살아날 수 있고 병으로 죽어도 되살아날 수만 있다면 모든 국민이 큰돈을 내고 하는 게 이해가 될 것 같은데요. (여기서 보강해주시면 좋을 것 같은 설정은 금의가 모든 사람을 다 살릴 수 있는가? 단순히 노화로 죽은 사람도? 같은 의문입니다. 도대체 시신이 어느 정도 손상되어야 금의가 살릴 수 있는가, 하는 의문들이죠.)
앞선 의문에서 이어지는 의문은 정부는 그럼 왜 모든 피해자를 살려내지 않고 그 중에서 일부만 골라서 살려내는가 하는 점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환향에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옵니다. 일단 조사보호관들을 고용해야 하고 선정관도 고용해야 합니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임금이 적지 않을 거고 이들이 일하는 데에 필요한 차량과 사무실과 집기를 마련하는 비용도 있을 겁니다. 이동이 많은 직업이다 보니 차비나 유류비, 식사비, 커피 값 같은 돈도 많이 들 거고요. 또한 환향이 결정되기까지 피해자들의 시신을 잘 보존해야 하죠.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아마도 냉동 같은 것을 하는 모양입니다. 아니면 나노봇을 조금 활성화를 시키든가요. 그럼 시신을 보관하는 장소며 시신의 보존에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환향 후보를 선정하고 또 거기서 단 하나만을 골라서 환향시키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차라리 살인 피해자 전부를 즉각 환향시켜 버리면 조사보호관, 선정관, 시신 보관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전부 아낄 수 있지 않나요. 저는 왜 일부만 환향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댓글로 달기도 했는데 작가님은 정치적인 이유에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후 소설 전개에서 그 정치적 이유가 나올 거라 기대했는데 나오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일부만 환향시키는 이 문제가 등장인물들이 갈등하게 만든 인위적인 장치로만 보여서 작품에 몰입이 힘들었습니다. 저와 같은 의문을 가진 독자들은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간단한 방법이 있는데 저 사람들은 왜 그걸 내버려두고 자기들끼리 저렇게 지지고 볶고 있을까? 마치 그들만의 전쟁 같고 그들만의 잔치 같다, 이런 생각이요. 말하자면 독자가 소설 속의 세계에 확 몰입이 안 되는 거죠.
이와 연관해서 생기는 의문은 보호조사관의 업무입니다. 말 그대로 환향 후보의 보호자를 면담하고 조사하는 건데 재정 상태 조사는 모든 것이 전산화된 이 세상에서 간단히 끝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일은 보호자를 면담하여 그들의 심경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보호조사관이 하는 일이 그게 전부라고? 하는 의문이 듭니다. 환향 후보 보호자들의 심경을 왜 그렇게 오랫동안 관찰해야 하는 걸까요? 그 관찰하는 비용, 그 시간 동안 시신이 보관되는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말입니다. 이것은 마치 정부가 보호자들을 테스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너희가 얼마나 버티는지 한 번 보자, 끝까지 버티는 사람만 살려주겠다, 하는 것처럼요. 도대체 정부는 왜 국민들을 상대로 그런 비인간적인 일을 벌이는 걸까요. 그리고, 소설 내에서 거기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은 왜 아무도 없는 걸까요. 다들 선정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점만 문제 삼지 왜 정부가 이들을 고르고 골라서 환향시키느냐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어서 이상해 보입니다.
선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전제도 의문을 일으킵니다. 이 시대는 모든 것이 명문화되고 법치화된 사회입니다. 소설 속 시대도 마찬가지고요. 이재민들에게 지급되는 얼마 안 되는 지원금도 정부는 막 내어줄 수가 없고 그와 관련된 법에 근거해서 해야 합니다. 법에는 어느 것을 재난으로 인한 피해인지를 규정하고 있으며 그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얼마를 주어야 하는지를 세세하게 정해 놓았습니다. 관련된 법이 없으면 국회에서 급하게 법을 만들기도 하죠. 코로나 때도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할 때도 그랬고 이번 산불 피해 관련해서도 국회에서 추경 운운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을 되살려내는데, 거기다가 전부 살리는 것도 아니고 고르고 골라서 살려내는 문제에 관해 그 기준을 국민에게 공개하지 않는다는 게 애초에 말이 안 된다고 느껴집니다. 이것 또한 극 중 갈등을 일으키기 위해 작가가 만든 인위적인 장치처럼만 보이는 겁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선정 기준이 명확하지만 선정관들이 그걸 무시하거나 악용하고 있다는 설정으로 나가는 게 옳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전에 도대체 왜 환향자를 굳이 그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선정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부터 해결을 해야겠지요.
그 이유라는 것이 정말로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면 어떤 구체적인 정황인지가 소설 내에 명확히 제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읽어도 아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상황으로요. 이게 해결이 안 되면 범수가 결말에서 개인사무소를 차리는 일도 의문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도대체 범수는 개인사무소를 차려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 건가, 환향 후보를 도와주는 일이 생계에 도움이 되는가, 저렇게 바늘구멍 같은 환향을 하려고 과연 사람들이 범수에게 돈을 내고 와서 일을 부탁하겠는가, 도리어 돈 있는 사람들만 환향시키는 데에 일조하게 되지 않나, 하는 의문입니다. 솔직히 저는 범수가 개인 사무소를 차리면 어떤 구체적인 업무를 하게 되는지가 잘 와 닿지가 않습니다. 결국엔 보호자들 면담인데 그 면담이 환향자로 선정되는 데에 무슨 도움이 되는가 하는 점에서입니다. 간절히 바라세요, 그러면 환향이 될 수도 있답니다, 하고 희망고문하는 것 말고는 범수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아쉬운 점과 의문점을 길게 말씀드렸는데 크게 정리하자면 네 가지입니다. 첫째, 묘사의 밀도가 과도하게 높은 장면들이 많다. 둘째, 범수가 느끼는 강박감의 이유를 좀 더 보강했으면 좋겠다. 셋째, 피해자를 전부 다 환향시키지 않고 그 많은 비용을 들여서 환향자를 선정하는 정치적 이유가 명확히 제시되면 좋겠다. 넷째, 범수가 하는 일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와 닿지 않으므로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묘사해주면 좋겠다.
작가님께 쓴 소리만 잔뜩 드리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네요. 변명 같겠지만 소재와 주제의식에서 저는 이 작품이 빛을 볼 가능성이 충분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마이실을 중심으로 한 플롯도 그 누구도 생각지 못 할 이 소설의 설정에서만 나올 수 있는 반전이라 매력적이고요. 예를 들여 점토로 말을 만든다고 생각해 볼까요. 점토를 이리저리 빚어서 말을 만들어놓았을 때 첫 번째 사람은 누군가가 이게 도대체 뭐지? 하는 말을 만들 겁니다. 두 번째 사람은 누군가가 아, 말이네, 하고 지나가는 정도의 작품을 만들 겁니다. 세 번째 사람은 누군가가 우와 이거 진짜 멋진데, 우리 집에 갖다놓고 싶다, 라고 반응하는 말을 만들 겁니다. 저는 이 작품이 아직은 두 번째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세 번째 말을 원합니다. 세 번째 말을 만들려면 점토를 어디에 더 붙여야 하고 어디에서 떼어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에 애정이 크신 걸로 압니다. 이 작품을 다른 사람도 애정할 수 있는 세 번째 말로 만들려면 어떤 부분에는 점토를 충분히 더 붙이고 반대로 어떤 부분에서는 과감히 점토를 떼어내야 합니다. 물론 저도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잘 쓰고 있다고 자부하지 못 하지만 다른 사람 작품을 볼 때는 제 작품을 볼 때보다 점토를 어디에 붙여야 하고 어디에서 떼어내야 하는지가 그나마 좀 더 잘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리뷰를 드리는 거고요. 작품을 비난하거나 비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세 번째 말을 작가님께서 빚어내시면 좋겠다, 그 말을 우리 집에 가져다 놓고 싶다, 이런 생각에서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모쪼록 이해해주시고 더 좋은 작품 써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