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는 ‘검은 양은 구원의 섬으로’의 4장 – 오래된 천문대(4) 까지 읽은 뒤 작성되는 리뷰입니다.)
‘검은 양은 구원의 섬으로’ 는 달려나가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을 맨 처음 읽고 든 생각은, 흔한 클리셰 중 하나인 ‘설명할 시간이 없어!’ 였습니다. 평범히 살아가고 있던 주인공이 갑자기 사건에 휘말립니다. 그리고 그런 주인공을 구하는 다른 존재가 갑자기 나타납니다. 그는 ‘설명할 시간이 없어! 살고 싶으면 날 따라와!’ 라고 말하며 주인공을 데려가고,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 소설이 그런 이야기라는 뜻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설명해 주는 편입니다. 다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방식은 그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설명할 시간이 없어!’ 라는 것은 대부분 거짓말입니다. 왜냐면 언제나, 설명할 시간은 있기 때문이죠. 설명할 시간이 없는 것은 그렇게 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이고,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 것은 설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말한 유명한 클리셰적인 이야기에서는 설명하는 것보다 주인공을 구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고, 나아가면 설명이 별로 필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소설의 이야기 전개도 그와 비슷합니다. ‘검은 양은 구원의 섬으로’는 굉장히 빠른 전개를 가진 소설입니다. 주인공이 시간을 돌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야기가 충분히 전개된다기보다는 필요한 부분을 빠르게 빠르게 짚고 넘어가는 것에 가깝습니다. 물론 전혀 설명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인물이나 사건, 지역에 대해 필요한 것들은 전부 설명됩니다.
그러나 이 소설의 전개를 읽어 나가면, 설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게 됩니다. 짐작하건대, 그것은 주인공의 동료를 모으는 것입니다. 이 소설은 각각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장은 주인공인 아이젤이 자신의 모험에 동참할 동료를 모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각 장에서 인물은 소개되며, 사건이 발생하고 결국 그 인물이 아이젤의 모험에 동참하게 되지만, 그것이 충분히 전개되는 수준은 아닙니다.
말하자면 이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이 아니고 모험 그 자체로 비춰집니다. 이는 인물이 매력적이지 않다거나, 별로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가진 인물들이 한데 모이는 과정 자체는 꽤 재미있었으니까요. 다만, 결국 그렇게 모인다 하더라도 이 이야기에서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고, 모험 그 자체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험은 마치 그리스/로마 신화의 이아손 원정대나, 반지의 제왕의 반지 원정대처럼 주어진 과업을 해결하는 원정대 구조에 타임 루프를 더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인물이 이 모험에 동참하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더 이상 인물이 모이지 않게 되었을 때가 이 소설의 진짜 시작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 자체는 꽤 흥미로웠기에, 저는 이 이야기의 시작을 기다리게 될 것 같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