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돌 던지기 감상

대상작품: 악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작가: 인룡, 작품정보)
리뷰어: 종이, 7시간전, 조회 5

‘악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은 상당히 재미있는 소설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랬습니다. 아마 주인공인 예키엔의 그칠 줄 모르는 신화적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읽어나갈 수 있는 분들이라면, 이 소설이 꽤 재미있을 겁니다. 요즘은 이런 소설이 별로 없기도 하고, 작가분의 꽤 좋은 필력과 세계관에 힘입어 소설은 매끄럽게 잘 달려나갑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매력적인 인물들과 신화. 이른바 ‘아케인펑크’ 라고 설명되고 있는 마법과 기술이 함께 달려나가고 있는 세계관까지. 이 소설을 읽는 것은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다만 동시에, 이 소설이 매우 취향을 타는 소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어떠한 구체적인 이야기의 시작과 끝맺음을 선호하시는 분이라면, 이 소설을 그다지 추천드리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아직’ 추천드리지 않는다는 것에 가깝긴 하지만요. 소설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므로, 이 시점에서는 그것에 대해서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탄탄히 갖춰친 세계관이라는 기반 위에서, 매력적인 인물들이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 소설을 매우 추천드립니다.


다만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작과 끝맺음을 선호하시는 분이라면 소설이 조금 불만족스러울 수 있습니다. 이는 소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 전개의 구조적인 방법 때문입니다. 이것이 나쁘다기보다는, 방법의 차이이고 그것이 취향이 갈릴 수 있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것 같네요.

이 소설에는 중심 이야기가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 소설을 적어도 2-41까지 읽으셨다면, 맞습니다. 물론 이야기가 있지요. 예키엔을 감시하는 탈란시아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이야기가 굴러가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에 가깝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예키엔에게는 뚜렷한 동기가 없으며, 그것은 탈란시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네, 물론 예키엔에게는 종교학자이자 기적술사라는 배경이 있고, 거기서 나오는 동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주인공의 동기는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소설은 마치 추리소설을 연상케 하는 구조를 취합니다. 예키엔과 탈란시아가 모종의 이유로 어딘가로 가고, 그곳에서 기적 혹은 신화 혹은 종교 혹은 무언가와 연관된 사건을 조사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연루된 다른 사람들이 등장하는 방식입니다. 이 속에서, 동기를 가진 인물은 오히려 주인공인 예키엔이나 탈란시아가 아니라, 새로이 등장한 인물들입니다. 1장을 읽으셨다면, 늑대인간 이야기에서 동기를 가진 인물이 누구였는지를 생각해보시면 될 것 같네요. 즉, 어떻게 보면 예키엔과 탈란시아는 일종의 셜록과 홈즈인 것이죠.

그런데, 추리소설은 그 장르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그러한 구조를 정당화 해 줍니다. 추리소설은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것이 서로 합의된 장르이니까요. 따라서 독자는 딱히 탐정의 동기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 않습니다. 작가가 제공하는 것은 그게 아니라, 잘 짜여진 범죄와 용의자, 알리바이와 트릭이니까요. 그러므로 추리소설에서 탐정에게 어떠한 동기도 없다고 불평하는 것은, 그다지 정당한 비판은 아닐 것입니다. ( 물론, 앞서 말한 셜록 홈즈 시리즈와는 다르게, 요즘 추리소설의 탐정들은 대부분 동기도 가지고 있긴 합니다. )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 아니므로, 추리 대신 다른 것을 제공합니다. 그게 바로 잘 짜여진 세계관과 신화, 그리고 인물들입니다. 이런 것으로 독자를 매혹할 수 있다는 게 참 놀라우면서도 정말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정말로, 예키엔이 하는 말에 빠져들어서 이야기를 읽어나가게 만드니까요.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소설이 가지는 구조적 특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는 마치 호수에 돌 던지기와 같습니다. 호수에 돌을 던지면 파문이 생기고, 그걸 지켜보는 건 꽤 즐겁습니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두 번째 돌을 던지면 첫 번째 돌과는 다른 파문이 생깁니다. 그걸 지켜보는 것도 즐거울 수 있죠. 세 번째 돌을 던지면, 또 파문이 생길 것이고 그것도 꽤 즐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전부 파문에 불과합니다. 그것들을 엮어 주는 것은 돌을 던졌다는 행위뿐이며, 파문은 다음 파문에 밀려 금방 사라집니다.

이 소설도 비슷하게, 반복적으로 사건을 등장시키고 –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조금씩 밝혀지는 세계관과 신화는 덤이고요. 하지만 그것이 반복된다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는, 저를 안타깝게 만듭니다. 이 돌을 호수에 던지지 않고, 한데 모아서 작은 돌탑을 쌓았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드니까요.

그렇지만, 호수 아래에 돌이 쌓이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언젠가는 사실 아주 정확한 조준으로 던져진 돌들이 쌓여, 호수 위로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으리라고도 저는 믿습니다. 그렇기에, ‘악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은 정말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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