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G에 발들인 후 연배를 알고 놀란 분이 몇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BornWriter(영타인데다가 은근히 길기 때문에, 이후 뼈님으로 지칭하겠다. 본래 쓰는 닉도 자게에서 말씀하신 바 있다만 그 닉은 더욱 기니 더더욱 논외로 하고) 님이다. 문장이 깔끔하고, 기분좋게 음울하고, 의외로 철학적인 단편을 쓰시기에 그렇다. 그래서 뼈님의 단편들을 모두 읽어왔는데, 어느 날 이분이 연재를 시작하신 걸 보았다. 그 동안 파악한 분위기로 짐작하기에는 제목이 의외였다. [은사와 은사]. 날짜조차 5월 13일이다. 스승의 날 특집인가? 어쨌든 연재가 끝나거나 중간 완결이 나면 읽어보자- 그렇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오늘, 나는 완결된 지 한 달 된 이 글을 털게 되었다. 한 달이라니, 털기에 좋은 시점이다.
=====그리고 항상 난 스포고 뭐고 신경쓰지 않지
1. 제목을 읽고, 인트로를 본다.
제목은 스승인데, 인트로는 손님과 사냥꾼을 이야기한다. 손님을 사냥하는 사람들 말이다. 손님을 사냥하다니, 이 무슨 인육만두집 주인 같은 이야기인가? 하고 긴장할 필요는 없다. 이 손님은 사람이 아니기에. 사람이 아니라 해서 무조건 사냥하는 게 옳다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다루고 있지 않은가? 이세계에서 넘어온 괴이에 대한 것들- (브릿G에서도, 넘어오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라 하면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어쨌든, 손님은 사람을 살해한다. 흉험한 살인자를 손님이라고 최초로 칭한 사람은 좀 독특한 센스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이형의 살인자가 등장하고, 그들을 작살내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Guest hunter, 손님 사냥꾼이다. 가장 유명한 학살자, 아니 사냥꾼 알프레아 헉슬리의 이름은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그럼 이건 뛰어난 손님 사냥꾼을 키워낸 전설적인 스승에 대한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스크롤을 넘긴다.
미리 말해두자면, 잘못 짚었다.
2. 직진이 아니었다. 오른쪽으로 길을 틀어 런던으로 간다.
뭔가 어반 판타지적 이능이 넘치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 대해 묘사하는 음유시인적 글쟁이가 나올 것을 예상했는데, 몹시 현실적인 런던이 나를 반겼다. 무시무시한 현실이다. 한국 혼혈의 주인공이 런던의 한 대학에서 고군분투하던 이야기. 빈대생활하다 빈축을 사고, 노숙하다 평판을 깎아먹는 주인공을 가련하게 여긴 한 교수님이 주인공에게 방을 하나 내 준다. 은사로 모실 만하다. 다만 문제는, 교수님은 골드미스였고 주인공은 신체건강(?)한 사나이였다는 것. 우리는 모두 성인들이니 어떤 소문이 났을지는 충분히 취향대로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뭐, 소문은 오로지 소문으로만 남은 것은 아니었다. 어쨌거나 수위가 건전하긴 해도 육체의 교류가 있긴 했으니, 셰익스피어 교수가 어찌 생각했든 주인공의 마음은 그녀를 단순한 은사 그 이상으로 모시고 있었을 것이다.
이 은사님이 동강나서 죽었다.
교수의 죽음은 교수가 연구하던 아스테카 문명의 전설과 관련이 있었다. 은빛 뱀, Argenti Couatl, Plateada serpiente, 그리고 기괴한 소리가 들려오는 유적. 주인공은 교수의 유지를 따라 (알코올로 기억을 못하는 사이 조사를 결정하게 된) 유적으로 향하게 된다.
3. 직진하라, 멕시코로!
밝혀지지 않은 고대 문명의 탐구는 언제나 신비롭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신비로운 사원. 심지어 사람까지 죽었다. 길잡이 하나 없이 주인공이 사원으로 떠난다.
사각뿔도 아니고 삼각뿔 모양의 독특한 구조. 게다가 지하가 거대하게 비어있다. 현대 건축역학과 중력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듯한 지하의 거대 공동. 그 아래 계단으로 계단으로 주인공은 계속 내려간다. 바닥에서 핏자국을 발견한 주인공은, 그것뿐임에 허탈해하며 다시 마을로 돌아가려 하지만 곧 환영을 마주하게 된다.
사방에서 거대한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지만, 동굴의 풍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바윗덩이를 쌓아 만든 경기장이었다. 건장한 남자 열댓 명이 강철 보호구를 입고서 공을 찼고, 주변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선수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축구와 럭비를 적절하게 섞어놓은 듯한 스포츠였다.(1)
당황한 나머지 나는 뒷걸음질 쳤다. 그러자 경기장이 와르르 무너지고, 어둑한 하늘에서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바닥에 주저앉은 사람들은 빗줄기를 잊은 채 망국의 백성처럼 울부짖었다. 흰 피부의 군대는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아댔다. 죽음과 죽임이 넘쳐 평원은 핏빛이었다. 절규와 함성이 한 데 뒤섞여 불분명했다.(2)
(전략) 가공의 위협은 고개를 빳빳이 쳐든 채 나를 내려다보았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비단 두려움 때문만은 아니리라. 은빛 뱀은 혀를 날름거리다 말고 갑자기 아가리를 쩍 벌렸다. 그러더니 나를 집어삼킬 듯 맹렬하게 달려들었다.(3)
세 가지 시간의 레이어가 동시에 만나는 곳, 그곳이 사원이었다. 묘사된 사원의 신비 앞에서 투탕카멘의 저주를 읽는 연구원처럼, 나는 긴장했다.
4. 그는 구원받았으나, 나는 구원받지 못했다.
주인공은 뱀을 환영이라 여기고 피하지 않으려 했다. (피하면 함정장치에 빠지는 그런 구조이리라, 그렇게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인공을 새 등장인물이 구해준다. 그리고 나의 집중도는 새 등장인물의 탈출과 함께 같이 날아가버렸다. 머릿속에서 장르가 바뀌어버린 것이다.
재미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전까지의 긴장을 이 아가씨는 담보해주지 못했다. 차원에 대한 설명, 손님의 정체, 사냥꾼의 필요성- 해설이 필요한 시점임은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5화는 없어도 될 것 같은 화였다. 없는 편이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훨씬 깔끔하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게다가 너희들은 왜 꽁냥거리고 있느냐…? 지금 이 시점에서 그 꽁냥거림 옳다고 생각하는가?
직진에서 오른쪽, 그 상태로 직진, 그러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꺾었다. 꺾지 않는 게 더 매력적이었을 텐데. 다시 사원으로 돌아가 뱀을 작살낸다 해도, 그녀가 매력적이라 해도, 나는 이미 허탈해진 것이다.
5. 후일담은 깔끔했다.
환영의 정체 등등, 의문점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는 시원함이 있다. 하지만 마무리는 깔끔하지 않았다. 어쩐지 쓰다가 포기해버린 것 같은 모습으로 끝나는 이야기를 보면서 나는 안타까워했다. 이것은 사실, 아쉽다면 제이드 데커스티스 3부작과 동굴 속의 닻을 읽어보라는 뼈님의 술수일지도 모른다.
6. B모씨의 투덜거림을 덤으로 제시한다.
보통 이런 말씀은 속으로만 생각하고 드리지 않지만, 너덜너덜한 집중포화(?)를 원하셨으므로 감히 말씀드려본다.
1) 글씨체에 대한 의문
처음으로 글을 클릭하며, 음, 명조체를 쓰셨네- 했는데 중간 2, 3, 5편만 고딕체인 걸 알았다.
혹시 과거와 현재, 또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등을 다른 글씨체로 표현하신 건가? 하며 몇 번을 읽어보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통일하셨으면 좋겠다.
2) 외국어 사용의 찝찝함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단어이기 때문에 조금 더 신경쓰시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어하며 말씀드려본다. (내가 틀렸을 가능성이야 당연히 가득차고도 넘치지만! 내가 맞을 수도 있으니. 의견은 다양한 것이 좋은 것이다)
메소아메리카의 뱀은 코아틀, 즉 Coatl이다. u 빼시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라틴어로 은색을 이야기하려면 명사가 아닌 형용사일테니 argenteum coatl 쪽이 더 맞을 텐데 왜 아르젠티인가 고민했다는 사실은 뒷산으로 던지겠다. (왜냐면 나도 라틴어 공부가 한참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사어! 개구쟁이 일기의 토마가 미쳐버리려 했던 것이 너무 잘 이해되고! 이건 취미생활로 삼기에 너무 흉악하다!) …근데 그렇게 따지자면 에스빠뇰도 형용사가 뒤에 위치하니까 serpiente plateada일 것 같은데… 역시 더 알아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덤. 찾아봤는데 나후아틀로 은빛이란 단어는 발견되지 않았다 한다. 흰색은 이스탁(이즈탁)이고, 은 자체는 이스탁 테오퀴틀라틀, 빛나다는 토나라고. 그럼 이스탁코아틀이 제일 이름이 그나마 예쁜 듯하다. 이스탁테오퀴틀라틀코아틀 하면…. 정신이 코아틀해져버릴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이 드니; 어쩐지 아르젠티코아틀을 선택한 교수님을 이해할 듯도 하고?!;)
그리고 술! 멕시코라면 역시 에스빠뇰일텐데 그럼 까사도레스일 거다. z가 ㅈ 발음 나는 동네가 아니기 때문이다. 카자도레스가 언급될 때마다 저 발음 아닐 텐데… 아닐 텐데… 하고 위통을 겪은 사람이 여기 하나 있다.
하지만 메스티소 아저씨의 그 알아듣기 힘든 사투리는 아주 재미있었다. 정말로 아, 난 이거 한 번에 못 알아듣는다-라는 느낌!
3) 꽁냥은 다음 기회에
은근 로맨스 취향임이 널리 밝혀진(?) 사람에게 이런 말씀을 들으신다면, 이건 정말 생각해보실 문제가 맞을 거다. 꽁냥이 몰입을 방해하는 느낌이라면 적절한 타이밍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다음 편이나 다른 편, 아니면 후일담에 넣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다. 성적 긴장감은 원래 목숨이 걸려 있을 때 최고봉이라고 하지만 이 상황은 애매하다.
…여기까지 말한 이상 뭐라 더 말씀드려도 “하하하 괜찮습니다.” 뒤엔 ‘보네토 이 자식…!’이 될 텐데…(…) 나는 왜 리뷰를 하나 쓸 때마다 인맥을 잃는가 OTL
그래도 재미있게 잘 읽었다는 말씀을 드리면 가증스러워 보이려나… 하지만 정말 재미있게 잘 읽었다! 세 번 방향을 틀었을 뿐! 이 방향만 좀 부드럽게 조정한다면 더 많은 분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이 될 거라 본다.
……이왕 손보신다면, 저 교훈적인 제목도 재고해주셨으면 하는 소망도 있고. 스승의 날 학교에 찾아가는 내용이 기대되는 저 제목은 역시 이 글의 제일 큰 걸림돌인 듯하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뼈님께 석고대죄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