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르의 마지막 손님’을 아주 인상적으로 읽었었기에,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도 열심히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마침 신작도 진지하게 읽고 있던 때에 리뷰 의뢰를 주셨어요. 영광으로 알고 몇 자 적어보고자 합니다.
1.
개인적인 기준입니다. 저는 글을 읽을 때 작품을 ‘잘 씌어진 이야기’와 ‘재미있는 이야기’로 구분하곤 합니다. 잘 조형된 인물들이 정교하게 계획된 사건 속에서 치열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움직이는, 그것을 적합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해낸 미학적으로 완성된 이야기들은 언제나 박수를 자아냅니다. 하지만 저는, 적어도 그 작품이 장르 소설을 표방하고 있다면 무엇보다도 ‘재미’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재미를 잡아내는 능력이라는 것이 어쩌면 장르 작가들의 성패를 좌우하는 재능이 아닌가 생각하는 요즘입니다.
달바라기 작가님의 작품들은 전 무척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딱히 말초적인 재미를 위해 ‘노리고 힘을 준’ 듯 하지 않은데도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호기심을 계속 자극해나가서 글을 끝까지 읽게 만드시죠. 그리고 결말부의 ‘한 방’이 아주 유효합니다. 글을 쓰시기 시작하신지 얼마 되지 않으셨다고 하시는데, 저는 무척 ???? 중입니다. 부러운 재능을 가지신 분입니다.
2.
이야기는 새벽 2시 40분에 막 깨어나 우는 어린 아기를 달래는 ‘나’의 시점으로 시작됩니다. 끊임없이 깨고 울고 보채는 아이들 돌보며, 그 와중에 히스테릭한 아내의 눈치까지 보아야 하는 나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있습니다. 1인칭 시점을 따라가는 독자들은 아이와 아내의 짜증에 대한 반복적인 서술에 덩달아 지쳐가게 됩니다. 주인공을 유약하고 소심한 성격으로 묘사하신 덕에, 그 효과는 최고조에 이릅니다. 게다가 작가님 특유의 음울하고 끈적한 분위기는 독자의 피로를 더 부추기죠. 작가님은 그 사이사이에 무심하게 퍼즐 조각들은 숨겨 놓습니다.
깨진 토마토 화분, 빨간 머그컵, 고장 난 보행기, 이유식을 뒤집어 쓴 곰인형…
지친 우리들은 발에 채이는 단서들을 무심결에 흘려 넘깁니다. 그리고 그 퍼즐 조각들은 마지막에 이르러 서로 아귀를 착착 맞추어 생각지도 못한 그림으로 판을 뒤집어버리죠. 뭔가 이상하다- 라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사건의 전말이 드러나는 순간 감탄사를 뱉고 말았습니다.
특히나 주인공의 죄책감이 ‘남편을 죽여버렸다’는 단순 사건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는 점. 딸이 아닌 아기를 딸마냥 밤낮없이 직접 돌보아 보면서, 남편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하고 있었는지를 드디어 깨닫게 된 주인공의 후회가 죄책감의 근본이었다는 점이 무척 와 닿았습니다.
사실 서술자가 다른 사람임- 이라는 건 흔히 쓰이는 트릭이긴 합니다만, 이만큼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활용되기도 쉽지 않지 않나 싶었습니다. 재미난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3.
하지만 좋아하게 된 만큼 아쉬움도 보이게 되는 것이겠지요. 첫번째로, 작가님께서 이 작품을 ‘호러’로 생각하고 구상하셨다면 핀트가 조오오금 어긋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결말부로 드러난 상황 자체는 호러에 매우 적합하긴 합니다. 하지만 결말까지 가는 길에 독자가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 어디에도 오싹할 만한 부분이 없습니다. …물론 아기를 키워보신 분들은 여러 곳에서 아주매우몹시 히이이익!!하고 소름이 끼칠 것입니다만; 보통 대중에게 닿기는 쉽지 않은 일화들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건 아주 개인적인 취향입니다만… 아기에게 두려운 속성을 부여하기 위해 연출하신 것으로 보이는 ‘송곳니’는 좀 too much 였다고 할까요, 그러면서도 식상했다고 할까요. 아기 그 자체로도 충분히 공포와 불안을 불러일으킬 신체부위는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가 없는 잇몸이라거나, 드러난 대천문이라거나, 여러 번 접힌 허벅지살이라거나… 더 현실적으로 와닿는 묘사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두 번째로, 극적인 상황이 닥쳤을 때 그것을 보여주는 기술적인 부분이 조금 아쉽습니다. 영화나 드라마같은 영상 매체에 비유해보자면, 카메라는 일반적인 속도로 돌기도 하고 어느 순간 슬로 모션을 택하기도 하죠. 아니면 카메라는 보통 속도로 돌고 있는데 인물들이 움직이지 않고 장면이 순간에 고정되는 것으로 긴장을 높이기도 하구요. 글에서도 사건을 보여주는 문장과 연출에 ‘리듬’이 있을 것입니다.
반전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부분 즉, 동생이 문을 따고 들어오는 장면, ‘나’의 정체가 밝혀지는 장면, 동생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서 아기를 발견하는 장면, 그리고 가장 극적인 냉장고를 여는 장면 등에서 그 순간을 더더욱 극적으로 보이기 위한 연출들이 더 들어갔었으면 훨씬 더 긴장감이 넘쳤을텐데요. 마지막에 정보량이 한 번에 쏟아지다보니 그것을 처리하시는 데 치중하시느라 미처 신경을 못 쓰신 듯 싶습니다. 마지막에 이야기들이 와르르 한 번에 설명되면서 지금까지 쌓아 온 속도가 무너져내리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취향 저격이었던 이야기라, 아쉬움도 더 크게 다가 왔었네요.
간단히 쓴다는 것이 여쭙잖게 뻔한 이야기를 길게도 늘어놓고 말았습니다. 다 지우고 도망가고 싶지만 그럼 안되겠지요오…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부탁드립니다. 사실 ‘에일-르’때부터 팬이랍니다. ㅎㅎ 다름 작품들도 꼭꼭 챙겨보겠습니다. 작가님의 건필을 기원합니다!
덤. 새벽에 유축 모유 먹이려면 밤에 냉장실로 내려놓으면 좋을 것을요! 미리 녹혀 놓음 훨씬 빠르게 데울 수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