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지 말고 기억하세요 공모(감상) 브릿G추천 공모채택

대상작품: 하류(下流) (작가: 권선율, 작품정보)
리뷰어: 냉동쌀, 22년 6월, 조회 40

우리는 저마다 기록을 합니다. 혹자는 자신만의 일기장에 하루하루를 기록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조금 올드한 감이 없잖아 있죠, 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감상 등을 남기거나 사회적 이슈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포스트합니다. 블로그나 싸이월드 등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있었는가 하면 유튜브에 브이로그를 올리는 사람들도 있군요.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원시인이 남긴 암각화도 어쩌면 사냥감의 특징을 기록하고 공부하는 용도였을지 모릅니다. 아무튼 인간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시대를 막론하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아카식 레코드라는 가상적인 개념이 있는데,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의 모든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고 하는 기록보관소입니다. 이러한 신화적인 개념은 오늘날 우리에게 아카이브라는 단어로 익숙하게 다가옵니다.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아카식 레코드가 아카이브의 어원이 되었거나 적어도 같은 어원을 두고 있다는 점은 확실할 것 같네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도서관’은 비록 미래의 정보까지 저장되어 있는 아카식 레코드는 아닐 테지만, 아카이브라는 개념에는 부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소설 속 세상은 자본도, 자원도 아닌 기록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두고 상류와 하류가 나뉘어집니다. 기록이 모이고 보관되는 도서관이 있는 상류와, 버려진 기억이 흘러 모이는 하류로 말이지요. 상류와 하류의 구체적인 생활상이 생생한 이미지로써 제시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 소설 속 사람들이 각각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렴풋하게 감을 잡을 수는 있을 듯 합니다. 당장 이름에서부터 어떠한 인상을 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높은 상류와 낮은 하류. 그 두 세계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두 주인공인 엘라와 윤은 상류와 하류를 오가는 인물입니다. 본래 하류 출신이었다가, 도서관을 동경하여 상류까지 올라가 그곳에서 일을 하고, 결국엔 하류로 돌아옵니다. 소설의 시작하면서 엘라는 상류를 쫓겨나듯 떠나게 되고, 하류에서 상류로 올라가는 과정은 회상을 통해서 제시됩니다. 이 회상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엘라와 윤이 그토록 동경하던 상류의 도서관을 떠나게 되는 것은, 도서관이 기록을 취합하고 저장하는 시스템에 대한 반기를 찾게되면서부터 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기록을 다루는 방법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을 낳게 되는데, 이러한 의문은 비단 작품 내에서만 적용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작품 속에서 기록의 주체는 도서관이고, 도서관은 어떤 기록을 저장하고 어떤 기록을 버릴 것인지 선택합니다. 저장된 기록은 도서관에 모여 보관될 것이고, 버려진 기록은 기록 결정이 되어 하류로 흘러가겠죠. 그러나 어떤 것이 저장될만한 기록이고, 어떤 것이 버려질만한 기록일까요? 그것을 가르는 기준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두 주인공은 도서관이라는 시스템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흔들리게 됩니다. 첫 번째는 윤이었고, 두 번째는 엘라였습니다.

애석하게도 두 주인공 모두 그 시스템을 바꾸는 데에는 실패합니다. 스포일러가 아닐까 여겨질 수 있지만, 이것은 소설 첫 장면에 드러나는 내용이니 굳이 스포일러 틀을 달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처음 엘라가 도서관으로부터 쫓겨나는 장면은 그다지 큰 울림을 주지 않지만, 엘라의 이야기를 모두 알게 된 이후 후반에 다시 한번 도서관을 떠나는 엘라를 보게 된다면 먹먹한 아쉬움이 가슴 속에 남게 됩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는 비단 기록만이 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기록으로만 모든 정보를 저장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요.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에 기록이 아닌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바로 기억입니다. 여기서부턴 스포일러 틀을 다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점을 염두해두고 본다면, 우리는 다시 한번 이 소설의 형식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소설은 엘라와 윤이 하류에서 살다가, 상류로 올라가서, 다시 하류로 내려가는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엘라가 상류를 떠나는 결말을 제일 앞으로 끌고 온 다음, 엘라와 윤의 과거를 설명하는 구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이 아주 새롭거나 혁신적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온 구성 방식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기억이라는 주제는 이 구성을 새롭게 재구조화합니다. 소설의 형식 자체가 소설이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가를 이미 알려주는 복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억은 수정되고, 왜곡되고, 덧씌워질 수 있는 것’이라는 표현이 작중에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엘라가 기억하고 있는 엘라와 윤이 하류에서 살다, 상류로 올라와, 도서관에서 쫓겨나 다시 하류로 돌아가는 기억은, 얼마나 많은 수정이 있었으며, 왜곡되고, 덧씌워졌을까요? 불확실한 기억의 저편에서 그것을 알 수 있는 건 엘라 스스로를 포함하여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불확실성 덕분에 우리는 더 섬세하고, 따뜻한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걸, 우리는 추억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많은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신나게 즐겨야 할 콘서트장에서도 한 손에는 스마트폰을 든 채 기록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아주 예전에 가수 ‘싸이’의 콘서트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들었던 말로 리뷰를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바로 이 리뷰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기록하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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