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수많은 연예인, 가수, 엔터테이너는 우리나라의 공연 예술계, 더 나아가 문화 콘텐츠 산업계를 지탱하는 큰 축이다. 등장 초기 이들은 ‘대중 음악가’로 분류되곤 했다.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하는 그들은 다른 가수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돌은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산업’이 되었으며 ‘팬덤’이라는 소비층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최근의 아이돌은 다른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었다. 그들에게는 특수하고 개별적인 세계관이 부여되며 각각의 구성원은 해당 세계에서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들의 노래에는 하나의 주제가 있으며 팬덤은 마치 그들의 세계관 안에서 이루어지는 역할 게임에 몰입하듯 ‘덕질’할 수 있다.
기획사마다, 개별 아이돌 그룹마다 점차 아이돌 고유의 정체성이 두드러지는 이유는 소비자의 수요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팬덤이 아이돌의 흥망을 결정한다. 팬덤이 아이돌에게 흡수될수록, 그리고 아이돌과 팬이 쉽게 하나가 될수록 그들은 크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팬과 아이돌이 쉽게 융화되는 문화를 긍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아이돌’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소수의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우상화하거나 광신적으로 따르기도 한다. 아이돌에게 인생을 내건 것처럼 행동하는 ‘사생팬’이 있는가 하면, 특정 아이돌을 대놓고 싫어하는 ‘안티팬’도 있다. 팬덤 간의 불가피한 충돌과 싸움은 피할 수 없으며, 하나의 그룹 팬덤 안에서도 좋아하는 멤버의 차이에 따라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팬덤뿐 아니라 소속사 또한 자사의 아이돌을 필요 이상으로 감싸는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특정 아이돌의 잘못을 보도하는 기사를 삭제하라고 언론을 압박하거나 해당 기사의 댓글을 삭제, 조작하는 행위는 사실적인 정보를 원하는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혹자는 아이돌 산업이 말 그대로 하나의 우상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비판한다. 적당한 선을 지키며 이루어지는 문화 예술의 향유에서 소비자는 최대의 효과를 보지만, 아이돌을 무비판적으로 믿거나 따르는 행위는 결코 긍정적으로 용인될 수 없다.
해파랑 작가의 연작소설 《내 최애 아이돌의 수상한 고백》은 이렇게 거대해진, 그러나 내부에는 잔뜩 곪은 문제를 하나둘 안고 있는 아이돌 산업의 민낯을 다각도로 풀어낸 소설이다. 하나의 아이돌 그룹 리더를 중심에 두고 기획사 사장과 사생팬, 리더의 가족과 해당 그룹의 다른 멤버, 매니저와 팬클럽 회장, 택시 기사 등의 인물이 등장해 그에 대한 ‘고백’을 한다. 그 고백의 안에는 아이돌 산업의 실상과 팬들이 보지 못했던 리더의 숨겨진 본성, 그리고 미디어와 콘텐츠가 애써 가리고 숨겨온 충격적인 사건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내 최애 아이돌의 수상한 고백’이라는 제목처럼 당사자의 목소리를 포함한 주변인의 고백을 담은 이 소설에서 흥미롭게도 그들 모두의 입장은 오직 한 사람을 향해 있다. 아이돌, 그리고 그들의 존재에 질문을 던지는 열다섯 명의 고백에서 독자가 마주하는 것은 거시적인 아이돌 산업 그 자체이다. 그러나 그 안에는 미시적으로 여러 개인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그것은 이 소설을 의미 있게 만드는 또 하나의 중심 요소이다.
어느 날 내 최애가 사라졌다
“옛날이야기 중에 이런 얘기가 있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옹고집이라는 성질 더러운 인간이 하나 있었는데 하도 성질이 더러워서 그 동네에 사는 신통방통하다는 중이 자기한테 시주 안 주고 괴롭혔다는 이유로 동네 사람들을 대표해 옹고집을 혼내주겠다고 나섰다. 중은 지푸라기로 만든 허수아비에 신통력을 불어넣어 옹고집이랑 똑같이 생긴 가짜 옹고집을 만들어냈고 이 가짜 옹고집은 옹고집네 집으로 찾아가 자기가 진짜 옹고집이라고 주장했다.”
위의 인용처럼 이 장편은 고전 소설 ‘옹고집전’에서 보이는 일종의 복제인간 모티프를 따르고 있다. “성질 더러운” 옹고집의 버릇을 고치기 위해 스님 하나가 짚으로 복제인간을 만들어냈다는 이 유명한 이야기는 “성질 더러운” 아이돌을 더는 보고만 있을 수 없던 소속사 사장이 복제인간을 데려온 소설 속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 한 아이돌의 이미지는 소속 그룹과 회사의 존속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주목하는 사람은 비단 대중뿐이 아니다. 그들을 고용한 회사의 사장, 좋아하는 팬들, 그리고 방송 관계자들과 광고주들, 연예부 기자들은 아이돌의 생활에 관심이 많다. 그렇기에 사장은 소속사의 수장으로서 “성질 더러운” 리더를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리더는 단순히 성질이 더럽다는 말로 요약될 수 없다. 그는 크고 작은 범죄를 저질렀다. 충동적인 성향으로 인해 한차례 소속사에서 방출당하기도 했다. 그의 여동생은 그에게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 그의 주변인들은, 심지어 가족까지도 저마다의 고백에서 리더의 본성을 폭로한다. 리더의 아버지 말을 빌리자면 그는 어릴 때부터 “유달리 다른 애들에 비해 폭력적이고 (…) 입만 열면 거짓말에 도벽도 있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 도대체 어디서 배워온 건지 온갖 외설적인 짓을 하고 다녔다”. 때문에 리더의 주변인들은 모두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어딘지 모자라고 착한 복제인간의 등장을 반긴다.
소설에서 고백의 어조가 쓰일 때 가장 큰 효과는 전달력에서 나온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독자에게만 들려주듯 작중 인물들은 과감하게 속내를 털어놓는다. 리더에게서 피해를 당했거나 그의 잘못을 숨겨야 하는 위치에 서 있는 일인칭 시점의 화자들 담담히 저마다의 상황을 진술한다. 해파랑 작가의 문장은 고백의 어조에 특화되어 있다고 보아도 될 정도로 어렵지 않고 가볍지만, 깔끔하다. 짧은 분량 안에서 여러 인물의 개별 시점을 다룰 때는 필시 글이 지저분하고 산만해질 수 있다.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 작가는 모든 인물의 소설 속 위치를 분명하게 정한다. 그럼으로써 독자는 직관적으로 해당 인물을 이해하게 된다. 소제목에 인물의 역할을 명시함으로써 독자는 자신이 누군가의 고백을 들으리라는 것을 단시간 안에 충분히 숙지할 수 있다.
이렇게 잘 정돈된 문장이 전달하는 것은 개별 인물이 직면한 ‘상황’이다. 아이돌 한 명으로 인해 다층적인 위치에 놓이게 된 사람들은 얽히고설키며 아이돌 산업의 맨얼굴을 드러낸다. 그들의 고백은 ‘리더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현재 한국의 아이돌 산업이 얼마나 많은 진실을 숨기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인간을 재화로 바꾸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지,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다칠 수 있는지를 과감하게 진단한다. 그들의 진단은 현학적이거나 학문적인 분석, 수치로 말하는 통계가 아닌,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한 명의 아이돌이 사라진 것은 이 모든 이해관계가 다른 국면을 맞을 것임을 예고한다. 똑똑하고 뛰어나지만, 안하무인에 온갖 더러운 행동을 일삼던 아이돌 그룹 리더가 덜떨어지고 못나지만 착한 복제품이 되었다는 소식에 누군가는 쾌재를 불렀으며, 다른 이는 골머리를 앓았으리라.
‘나’의 수상한 고백
그렇다면 독자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지금 당신 앞에서 고백하는 ‘나’가 누구냐는 점이다. 소설 속 고백의 주체는 크게 다섯 가지로 나뉠 수 있다. 첫째로 그들은 아이돌 소속사 사람이다. 소속사의 사장이든 그룹의 매니저든 임원이든 리더가 연예계에서 퇴출당하면 밥줄이 끊기는 소속사 직원들은 그의 사생활을 모두 쉬쉬하며 덮어준다. 그러나 ‘복제인간’이라는 대안이 나오고부터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인다. 본체를 지하실에 가두고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잘 듣는, 온순한 복제인간을 아이돌 리더의 자리에 대신 세우는 데에 합의한다.
둘째로 소설 속 ‘나’는 아이돌의 팬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사람은 한 아이돌 그룹의 리더일 수 있고 들러리 멤버일 수도 있다. 그들은 사생이거나 팬클럽 회장이거나 돈을 잔뜩 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복제품을 만들려고 한 사람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아이돌의 팬’이라는 사실이다. 전술하였듯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아이돌을 좋아한다. 그리고 다른 아이돌을 싫어하기도 한다. 그들은 사생이나 악개라는 용어를 대표할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인물상이다. 소설의 곳곳에 배치된 이들은 팬덤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일반 독자가 이해하기에도 쉽게 보여준다. 리더의 사생팬은 그가 복제품이라는 것에 분노하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으며, 팬클럽 회장은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이 들러리라는 점에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그로 인해 슬퍼한다.
셋째로 ‘나’는 아이돌의 가족이다. 리더의 가족 네 명(아버지, 어머니, 여동생, 남동생)은 그의 폭력성에 오랫동안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였기에 그가 어딘가 조금 모자라고 착한 복제인간이 되어 돌아온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긴다. 어딘지 달라진 리더의 모습을 어색해하지만, 이내 그를 받아들인다. 그들은 리더의 어린 시절을 아는 유일한 고백자로 그의 실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알린다.
넷째로 ‘나’는 아이돌과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다. 그는 택시 기사이거나 복제인간 관련 취재를 하던 기자다. 그들은 자신이 목격한 믿기지 않는 사건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하거나 관망한다. 아이돌 산업과 전혀 관련 없는 이들이 모종의 이유로 그것을 경유하는 과정을 통해 이 소설은 어쩌면 누구도 아이돌 산업과 무관하지 않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나’는 아이돌 자신이다. 리더뿐 아니라 그를 돋보이게 하도록 넣은 ‘들러리’ 멤버, 그리고 복제인간까지 아이돌 당사자로 분류될 수 있다. 무슨 일이든 해도 용인되던 리더는 자신의 복제품이 나타나자 옹고집처럼 빠르게 본래의 위치에서 박탈되고 모든 지위와 재력을 빼앗긴다. 들러리 멤버는 한 명의 리더를 돋보이게 만들려는 목적으로 세워진다. 그러나 복제품의 등장으로 리더의 자리를 노려볼 만한 기회를 잡는다. 무력하게 훈련된 복제품은 얼떨결에 완벽해야만 하는 자리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지만, 원본인 리더보다 더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며 스스로 리더의 자리를 꿰차게 된다. 리더가 복제품처럼 취급 당하는 결말부의 내용에서 ‘원본’과 ‘복제품’의 위치와 정의는 뒤바뀐다.
이렇게 다섯 가지로 분류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입장에서 아이돌 산업을 말한다. 독자는 넓은 스펙트럼의 인물 분포를 둘러보며 자신이 어디쯤 속해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돌 산업이 큰 일부를 차지하는 사회의 구성원임을 실감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에서 소속사의 힘이 세다고 해서, 일부 물의를 일으키는 팬들이 있다고 해서, 아이돌 한 명의 문란한 사생활이 잘 숨겨질 수 있다고 해서 마냥 아이돌 산업을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해파랑 작가는 이렇게 비관적으로 이야기를 끝내지 않기 위해서 복제인간이 원본의 자리를 차지하는 결말을 택했다. 일말의 순수함을, 완벽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됨을 원하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는 듯이.
우리의 사랑이 영원해야 하기에
철학자 한병철은 저서 『고통 없는 사회』에서 “좋아요는 우리 시대의 징표”라고 언급한 바 있다. “문화생산물은 갈수록 소비의 강제하에 놓이고 있”으며 그것들은 “소비될 수 있는”, “만족감을 주는” 형태를 지녀야 한다. 우리의 문화는 ‘좋아요’를 받기 위한 ‘인스타그램’에 적합해야 한다. 이러한 ‘좋아요’의 유행은 예술계에도 유효하며 대중뿐 아니라 일부 예술 산업 종사자들 또한 점점 “좋아요의 코르셋”에 예술을 끼워 넣고 있다.1 ‘좋아요’의 최전방에는 아이돌 산업이 존재한다. 분명 그들은 예술을 하지만 대중을 만족시켜야 한다. 그들의 이미지는 매끄러워야 하며 어떤 부정성도 용납되지 않는다. 회사가 만들어준 이미지, 대중이 원하는 잣대에서 아이돌이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 조금만 관점을 바꾸어 본다면 어떨까.
아이돌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그들은 스스로 상처를 받으며 남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아이돌’이라는 이미지 뒤에 숨은 인간이 있다는 걸 우리는 자각해야 한다. 그들에게도 매끄럽지 않은 모습이 있다는 걸, 때로는 왜곡될 수 없는 진심이 있다는 걸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완벽하지 않으며, 완벽할 필요도 없다. 다행히 지금은 관찰 예능을 비롯한 매체에 아이돌의 실생활이 노출되는 빈도가 잦아졌다. 우리 이제는 아이돌 산업을 조금만 ‘덜 매끈하게’ 바라보자. 이 덜컹거림은 아이돌 산업을 교란하는 방해물이 아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회피했던 아이돌 산업의 민낯을 직면하는 모든 행위다.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열다섯 개 이상의, 수십, 수백 개의 시선이 교차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아이돌 산업을 얼마나 직시하고 있을까. 아이돌을 사랑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열의를 다해 아이돌을 지원하거나 설령 그들을 싫어하더라도. 저마다의 입장에서 ‘내 최애 아이돌의 수상한 고백’을 자세히 들어보자. 이런 시선의 변화는 아이돌을 넘어선 모든 이들에게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싫어하는 행위는 온전히 그들을 이해할 때만이 가능하다.
소설 속 열다섯 개의 시선에서 느껴지는 불편함과 왜곡된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편의를 위해 아이돌 산업의 ‘진실’을 마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 없을 때, 대상을 향한 왜곡은 심해진다. 그러니 우리의 사랑이 영원할 수 있도록, 아이돌과 그들의 팬과 대중과 모든 사람이 화합할 수 있도록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자. 덜컹거릴 때만이 완성되는 하나의 진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