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대 시대에는 다양한 직업들이 생겨나고 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의 변화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근데 우리는 실제로 그걸 체감하기가 어려우면서도 착실하게 적응하고 있습니다. 거의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스마트폰에서부터 비트코인, 그리고 AI에 기타 등등 무수한 것들이 우리의 삶과 접견하여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를 좀먹고 있기도 하죠. 어째뜬 그 속에서도 소외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본주의에 영원히 고통받는 드래곤 택시>는 그 소외된 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 중에서 용기사는, 기사도 문학에서 등장하는 영웅적인 인물들이 아닙니다. 예전에는 그렇게 살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그저 택시기사 1에 불과할뿐인 그런 존재입니다. 사실은 그보다도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방귀냄새가 너무 심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기피하는 그런 상황이니까요. 해결 방법은 고기를 먹이는 것 뿐이라는데 정작 돈이 없어서 건초만 먹이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렇기에 방귀 냄새는 점점 지독해지고 손님은 더더욱 꺼리게 되는 악순환만 반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구청 직원이 나와 실적을 올리기 위해 한 쪽은 불법 주차로 견인한다고 경고하거나, 또 한 쪽은 DPF라는 강철 팬티(!)를 입히려고 듭니다. 그게 방귀 정화 필터라나요. 황당하지만 주인공인 마그누스를 위해 김용용은 거절하지만 강제 집행이랍니다. 상황은 더더욱 환장해질 노릇이 됩니다.
그렇게 30분 후에 다시 오겠다는 구청 직원의 선언을 뒤로하고 김용용은 떠나려고하는 찰나, 이 대환장쇼를 끝까지 보고 싶어하는 한 마왕이 등장합니다. 다시 구청 직원들이 돌아오게 되고 이 둘은 또 대판 싸우기 시작합니다. 그걸 또 기자들이 촬영을 시작하고……, 끝내 시장이 중재한 끝에 사태는 끝나게 됩니다. 그리고 마왕은 이 사태에 만족했다는 듯 금화를 지불하고 용 택시를 타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됩니다.
소설 <자본주의에 영원히>는 그렇게 희극적으로 끝나지만, 이 소설이 판타지를 통해 함의하는 사회는 조금 쓸쓸합니다. 용기사는 로망스속의 그 의의를 잃고 어떻게든 ‘현대에 적응하려는 계층’을 표상한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원래의 존재 의미가 아닌 새로운 위치에 적응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겁니다. 그 것은 낯설고 생소한 위치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필요로 하는 일이니까요. 특히 택시 기사가 코로나 시대에 변두리로 밀려나고 있는 직업임을 상기해본다면 어쩐지 슬픔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삶에서도 나름의 살아가는 방법은 있을 겁니다. 용 조련학 교수나 용 공항처럼 어찌저찌 현대에 필요한 인재상이 되어 살아가는 삶도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절대 대다수의 삶은 그렇지 못하겠죠. 이런 상황 속에서 행정가들이 계층의 효과적인 적응을 위한 구조적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이 아닌 상황을 모면하려는 행동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어찌보면 슬픈 현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행정가가 저렇게 행동하지는 않을겁니다. 우리가 실제로 적응을 위한 해결책을 강구한다고 생각해볼 때의 막막함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조금은 유연하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테죠.
그러면서도 <자본주의에 영원히>는 현대 사회에 좀 더 다양한 요구들이 필요해졌음을 보여주는 면도 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한세기 전만해도 환경 오염이란 개념이 그렇게 대두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우리가 피부로 느끼고 당면한 과제인 점에서 예전과 같지 않습니다. 과거와는 다른 현대의 요구점과 맞지 않은, 그런 점들로 하여금 다양한 직업들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게 만들었을 겁니다. 그렇기에 용 택시가 이런 환경 오염의 원인 중 하나라는 이유로써 이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방식이 이전 직업들의 존립을 걸고 있는 상황에서 다소의 배려가 결여된 상황은 삶을 조금 팍팍하게 만든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렇기에 평범한 소시민인 우리들은 마왕이 전해준 금화 하나에 만족하며 살아갈 뿐이니, 그저 씁쓸할 뿐일지도 모르겠습니다.